칠레의 군사 정권이 끝나갈 무렵 영화감독인 카를로스 클라인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자신이 굳게 믿었던 영화의 힘을 의심하게 된다. 그 때 그는 러시아 감독인 빅토르 코사코프스키의 최신작인 <지구 반대편의 초상>의 촬영 현장에 동반할 기회를 얻는다. 남미의 파타고니아 고원에서, 바이칼 호수, 상하이를 넘나들며, 빅토르 코사코프스키 감독은 세상 반대편의 사람들, 공간들과 독특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카를로스 클라인은 이 야심 찬 영화의 제작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코사코프스키 감독의 다면적인 성격은 물론 그의 예술에 대한 믿음과 동기 등이 드러난다. 영화 만들기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가 하면, 러시아 여성 합창단원을 웃게 만들고 자신은 우는 행동,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격해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지는 등 코사코프스키 감독은 매 순간 솔직함과 열정으로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영화 없이도 살 수 있다면 영화를 만들지 마라”라는 평소의 소신을 그는 몸소 실천한다. 클라인은 이 러시아 감독의 기운 넘치는 행보를 말 없이 지켜 본다. 함께 여행을 하면서 생기는 두 사람 사이의 의견 차이와 갈등은 클라인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에 다시 불을 지핀다. 영화는 단순한 메이킹 필름을 넘어서, 영화 제작, 그리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사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또한 굉장히 유머러스한 시각으로 반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