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기일식을 따라가며 세 도시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슈퍼 8mm와 16mm 필름으로 담긴 흑백·컬러 영상은 시차를 따라 이동하는 일식의 궤적을 포착하며, 지리와 문화를 달리하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어둠의 순간을 명상적으로 보여준다. 케빈 제롬 에버슨의 고유한 영상 언어는 이 명상적 침묵을 연대와 기억, 목격의 행위로 전환시키며, 우주적 현상이 공동체적 의식과 경험을 형성하는 방식을 사유하게 한다. 빅 스크린에 단채널 영사 방식으로 제공된다.

영화는 필리핀 해변에 선 십대 소녀 시타가 어린 시절 익사할 뻔했던 기억을 어머니에게 고백하며 시작한다. 수영을 배우지 못한 어머니와 함께, 반은 인간, 반은 물고기인 형상으로 변한 이 둘은 과거를 되짚는다. 서필리핀해의 분쟁 해역을 배경으로, 영화는 어머니와 딸의 회상에 중국 점령과 자원 고갈로 삶이 흔들리는 어민들의 증언을 교차시킨다. 바닷 속 환경을 재현한 방 안에 단채널 모니터로 설치된다.

생태 변화, 지질학적 시간, 고대 의례를 세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명상적으로 엮는 실험 영화. 딱정벌레로 황폐해진 침엽수림, 고대 화산재에 보존된 나무 화석, 그리고 빛나는 미지의 생명체가 태양 주기를 따라 설계된 신석기 유적지에서 펼치는 퍼포먼스가 차례로 등장한다.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 진행되는 이 영화는 인간과 비인간, 기억됨과 잊혀짐, 삶과 소멸이 가지는 연약한 연속성을 보여준다. 모니터 3대를 나란히 붙인 3채널 설치로 제시된다.

이스라엘 경찰 기마대의 군중 통제용 말 ‘7’의 훈련 과정을 따라가는 세미 다큐멘터리. 2023년 이스라엘과 점령지인 서안 지역에서 촬영된 이 작품은 강도 높은 훈련 장면과 말이 토지 수탈에 동원된 아카이브 푸티지를 교차 편집한다. 영화는 유령 같은 말의 형상, 반복되는 도시의 움직임, 밀도 높은 사운드를 통해 대사나 인터뷰 없이도 국가 권력과 복종, 구조적 통제와 억압을 시각화한다. 몇 개의 롱테이크 숏으로 구성된 채널을 포함한 2채널 프로젝션 영사로 설치된다.

실험적 필름 에세이로, 밤의 정원 속에서 피어난 꽃들과 연쇄 범죄 현장이 교차하는 다리아의 세계를 따라간다. 이란 영화 속 아카이브 푸티지, 식물의 이미지, 최소한의 내레이션을 활용해 영화는 개인적 욕망, 가부장적 폭력, 그리고 생태적 비유를 병치한다. 이 작품은 기억과 젠더 폭력,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회복력을 시적으로 응시한다. 단채널 스크린 영사 방식으로 설치된다.

어린 시절의 환상으로 기억되던 창경궁은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동물의 고통과 일상의 풍경이 결합된 복합적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겹겹이 쌓인 이미지 위로 흐르는 리드미컬한 소리는 과거와 현재, 판타지와 트라우마 사이의 균열을 드러낸다. 필름과 아날로그 영사기를 조작해 창경궁에 스며든 감정의 흔적을 소환하는 이 영화는, 공적 역사와 자전적 경험, 장소의 물성이 어떻게 교차하고 상호작용하는지를 질문한다. 16mm 필름 루핑, 부패하는 나뭇잎을 관찰하기 위한 장치, 레퍼런스 아카이브 자료 등을 복합 설치한다.

1845년 여름,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숲에 들어가 잠시 머물기 위해 작은 집을 지었다. 그리고 이곳에 고독을 위한 의자 하나, 우정을 위한 의자 하나, 공동체를 위해 의자 하나를 놓았다. 18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의 집에 들어가 세 개의 탁자를 놓기 위한 그림자-숲을 짓는다. 필름, 슬라이드, OHP 등 다채로운 매체의 복합 설치 작품이다.

자신과 크기가 비슷해 기관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대상의 생명성을 느낀다. 농부들이 손으로 느끼는 씨앗은 각기 개별성을 지닌 생명체일 것이다. ‘씨앗을 받는다’는 짧은 문장은 어떤 시각에서는 길고 지난한 일의 반복이지만, 그 반복으로 점철된 누군가의 삶 안에서는 창조이고 몸이고 존재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씨앗을 확대 촬영한 <씨갑시1>의 스크린 영사, 농부들을 촬영한 <씨갑시2>의 모니터 영사로 제시되며, 토종씨앗을 보관하는 씨앗함, 씨앗의 보존 경로와 계보를 수록한 드로잉 등이 병행 설치된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고 몸의 감각과 지형의 틈에서 되살아날 수 있는가에 대한 영화. 제주의 동굴은 은폐된 과거의 저장소이자, 그 기억들이 다시 발화되는 매체로 작동한다. ‘방문자’는 그 속에서 몸을 낮추고 듣기를 시도하며, 인간 바깥의 시선으로 시간의 결을 더듬는다. 2채널 영상, 3채널 사운드를 병합하여 다채널로 설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