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의 독고노인 젱 (Zheng)의 일상. 영화는 젱의 초라한 세간살이와 오래된 라디오에서 나오는 흘러간 유행가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앙상하고 마모된 육체를 끌고 밥 먹고 씻고 움직인다. 사실 영화 속 사건은 그런 그의 움직임을 보는 게 전부다. 하지만 주름지고 앙상한 그의 육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이 듦’ 그 자체를 그대로 체감하게 한다.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의 일상 속에 흐르는 철 지난 유행가처럼, 마모된 육체 위로 지나간 삶이 풀려나온다. 부유하게 태어나서 중국 문화혁명을 거치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나 어느 날 무죄로 석방되고, 다시 반정부주의자로 낙인 찍혀 한평생 부유하다 결국 이렇게 빈민 노인타운에 들어와 살고 있는 그저 그런 노인. 그의 육신 위에 새겨진 이 삶의 파란만장한 굴곡은 이제 덤덤하다. 중국의 젊은 감독, 샨 주올롱의 첫 장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도저히 이십 대 젊은이의 시선이라 하기 힘들 만큼 섬세하고도 덤덤하다. 노인 젱의 방안을 조용히 훑어가는 시선이나 그의 세간살이를 응시하는 시선은 마치 80살 이상을 살아낸 노인의 시선 같다. 소소한 것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는 시선, 그러나 크게 동하지 않는 자세. 영화는 사건을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오브제 하나하나에 시선을 주면서 ‘나이 듦’을 감각하게 하면서 나를 성찰하게 한다. 그래서 아프다. (이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