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북동부 클란탄 주는 소가죽으로 인형을 사용하는 그림자극 ‘와양 쿨릿’의 오랜 전통을 간직해왔다. ‘달랑’이라고 부르는 와양 공연자만 300명이 넘었고 밤이면 밤마다 온 마을이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이들의 공연을 지켜봤다. 그러던 어느 날, 더 강력한 이슬람화를 주장하는 전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이 주정부를 장악하면서 와양은 철퇴를 맞는다. 사연인즉슨 (인도에서 온 이야기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를 주제로 하는) 전통적인 와양에는 반이슬람적인 요소가 많아 옛 이야기는 금지하며 새로운 이슬람식 서사를 도입한 와양만 허락한다는 것이다. <그림자 없는 세상>은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후 와양과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데서 시작한다. 달랑들은 무너져가는 무대를 수리하고 먼지 쌓인 인형을 꺼내 보지만 지난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기란 이제 불가능해 보인다. 다큐멘터리는 이런 상황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담는데 그치지 않는다. 중간 중간 삽입된 그림자극 장면으로 정부 관리와 달랑의 대화를 재현한다. 관객은 해학과 풍자미 가득한 그림자극의 고유한 매력을 경험한다. 또한 와양 금지에 깔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논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으며, 그들이 내세우는 ‘진짜’ 말레이시아적 정체성에 반하는 것인지 보여준다. 말레이시아 독립영화 제작의 중심인 다후앙 픽쳐스가 2011년 내놓은 이 작품을 통해 말레이시아 독립다큐멘터리의 현재 또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