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누녜스는 지난 반세기 동안 스페인을 움직여온 투쟁 역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독재에 항거하다 옥살이를 하고, 정권 과도기에 다양한 사회 운동을 주도했는가 하면, 이후 중앙 아메리카 개발 사업에 동참하기도 한 인물이다. 미수(米壽·88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된 그에게 남은 것은 중증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 받는 시한부 인생뿐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던 백발의 투사는 생애 마지막 투쟁을 준비한다. 그는 생이 다하는 순간 고결하게 죽음을 맞고 싶다. 생명 유지 장치는 죽음보다 두려운 고통의 시간을 늘려줄 뿐이다. 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은 미겔 누녜스를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 칭했다. <어느 혁명가의 죽음>은 바로 이 영웅의 생애 마지막을 담고 있다. 그는 프랑코 독재 정권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고 14년을 복역하면서, 고문을 견뎌냈고,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싸우며 생명이 위협받는 고비를 수 차례 넘겨 왔다. 험난한 일생 동안 세세한 부분까지 계획하고 관리해온 완벽주의자 미겔 누녜스의 의식은 마지막 순간까지 또렷하고, 일관성 있고, 신랄하기까지 하다. <어느 혁명가의 죽음>은 수 차례의 고문에도 쓰러지지 않았던 한 남자가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기까지의 생애 마지막에 대한 기록이자,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이상주의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