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미
1969년에 세워진 스카이 아파트는 오랫동안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돼 있었다. 언제 허물어질지 모를 이 콘크리트 건물을 보고 있는데, 불현듯 어릴 적 이가 흔들거릴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영화가 시작하면, 국민대 주변의 회색빛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서서히 회전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맞춰 눈, 코, 귀, 입에 대한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눈 하면 부드럽게 펼쳤다가 말려 들어가고…….” 차분한 목소리에 실린 이 내레이션은 마치 영화 속으로 침잠을 유도하는 주문처럼 들린다. 이 내레이션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빼앗겠다면, 관객은 이 영화가 요구하는 독특한 관람 방식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익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내레이션 속 화자는 가족사와 아파트를 줄기로 삼아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유년기의 사건들을 하나둘 이야기한다. 이때 관객의 눈은 멈춰 서 있거나 느리게 움직이는 카메라의 시선을 쫓아 철거 직전의 스카이아파트와 그 주변 경관을 무심히 바라다본다. 그 이유는 조심스레 내밀한 이야기를 건네는 내레이션이 관객의 감각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관객은 화면에 시선을 멍하니 고정한 채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레이션이 잠시 멈춰 서면, 관객의 눈은 그제야 화면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그렇게 표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마다 등장하는 피사체들의 황량한 모습은 마치 화자의 마음속 풍경을 조각해놓은 것 같기도 하다.
36분간의 짧은 러닝타임 끝에 당도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 마침내 스카이아파트가 헐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 서두를 장식했던 눈, 코, 귀, 입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다. 이제 주문에서 깨어날 시간이라는 것을 알리듯이 말이다. [박해천]
장윤미JANG Yunmi
콘크리트의 불안 (2017)
늙은 연꽃 (2015)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 (2014)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 (2012)
Contribution & Wolrd Sales Jang Yu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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