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역사>는 서울의 남산 밑자락을 지키고 있는 주인 없는 개 ‘백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감독은 백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떻게 여기에 자리를 잡게 된 건지 알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 백구의 역사를 수소문하는 감독에게 사람들은 약간의 관심을 보이지만 자초지종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별 볼 일 없는 노쇠한 개 한 마리를 좇는 카메라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목격한 백구의 모습을 애정 어린 목소리로 진술하는 사람도 있다. 건강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은, 그렇다고 뭔가 비상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닌 백구는 단순한 유기동물을 넘어 ‘이름 없이 떠나고 잊혀지는 것들’을 표상한다. 신문에 실리지 않는 존재, 뉴스가 될 수 없는 삶. 백구를 돌봐주던 슈퍼 아저씨는 가게를 접었고, 동네에는 편리하고 쾌적한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선다. 언제든 자신의 삶을 풀어낼 준비가 되어있는 구순의 노인은 귀가 먹어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일 뿐이고, 아름다움과 젊음을 되찾고자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칠순의 여성은 주책으로 비칠지 모른다는 사실에 미리미리 자신을 다독인다. 이렇게 감독은 자신의 13번째 이사와 15번째 이사 사이에 마주친 존재들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던 모래를 비로소 움켜쥐려는 듯이.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