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벤의 역사>는 ‘파인애플 벤치를 1학년은 이용할 수 없다’는 학생들끼리의 암묵적인 규칙의 시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처음 이 규칙은 2학년들이 1학년들을 기숙사에서 대면하는 자리에서 공지된다. 낯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싶어 하는 1학년들에게 이 규칙은 학교의 중요한 문화로 인식된다.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나자 이 규칙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이 증폭된다. 제작진은 1학년들에게만 적용되는 이 규칙이 부당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대체 이 규칙은 언제부터 왜 만들어진 규칙인 것인지, 학교에서 정해준 꼭 지켜야 하는 교칙도 아닌데 왜 모든 1학년들에게 규칙으로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상급생에 대한 예우’라고 추측되는 ‘1학년은 파벤을 이용할 수 없음’이라는 규칙을 단순히 적응해야 하는 학교의 문화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처해진 부당함을 직접 해소하기 위해 1학년들로 구성된 제작진은 이 불합리한 규칙의 시작점을 확인하고자 한다. 문화적 억압에 가까운 규칙을 마주하는 이들의 관점이 놀랍도록 날카롭고, 억압을 해소하기 위해 찾은 방법 또한 명쾌하면서 설득력이 있어서 끝까지 공감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규칙들은 아주 작은 이야기에서 시작된, 누군가의 단순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이런 규칙들이 ‘상급생’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혹은 ‘상급생’과 ‘하급생’을 구분하기 위한 방법으로 현재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들은 파벤의 역사를 알게 된 것에 그치지 않고, 교내 하급생에 대한 문화적 억압을 조장하는 부당한 규칙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직접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파벤의 역사’는 단순히 부당한 규칙을 바꾸는 과정이 아니라 사회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는 문화적 억압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특정 계층이 ‘권력 구조’를 만들어가는 방식과 ‘권력을 재생산’하는 방식을 작은 사회인 학교의 모습에 빗대어 꼬집은 아주 볼만한 작품이다. [경희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