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은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해다.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과 동시에 오랜 냉전체제가 붕괴되자 이데올로기는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해 여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은 반전, 반핵, 평화운동을 위해 모인 학생들로 북적였다. 이 영화는 축전 참가자들의 회고담과 후일담을 경청하고 기록을 수집하는데 충실하다. 평양에 대한 인상과 시민들의 환대에 대한 느낌, 북한이라는 국가가 지니고 있는 완벽함과 비정상적인 열광, 소박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과 증언이 한 축을 이룬다. 다른 축은 중년이 된 그들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삶의 면면을 기록한다. 20세기 끝 무렵에 사라진 분단의 역사, 민주화에 대한 투쟁은 평양에서 자각되거나 꽃을 피웠기에 농장, 거실, 직장, 길거리, 교실은 그들의 삶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장소가 된다. 9.11테러로부터 시작된 21세기의 지정학적 전쟁 이전의 세계를 채웠던 노래와 춤의 흥겨움, 국기와 색색의 깃발들의 행진, 활짝 웃는 얼굴과 평화라는 단어에 희망을 지닐 수 있었던 그 때를 단지 회고담에 가둬두지 않는 사진과 기록영상, 생생한 목소리가 이 영화의 힘이다. [박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