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순
'려행'은 북한에서 '여행'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남한에 위치한 여름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여성들. 그녀들은 북한을 탈출해 남한 사회에 정착한 난민 여성들이다. 남한 사회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남북한 어느 쪽에도 뿌리내릴 수 없는 갈등, 불안의 그림자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들 곁을 항상 따라다닌다. 그녀들의 산행은 남한 사람들이 힐링과 여가로 생각하는 산행이 아닌 삶과 죽음, 생존을 위해 꼭 넘어야 했던 여정이었다.
임흥순 감독의 <려행>은 그의 전작인 <위로공단>과 맞닿아 있다. <위로공단>이 압축적 산업화의 주역이자 동시에 희생자인 여성노동자를 주목한 것처럼, <려행>은 분단을 교란하며 이주한 적극적 주체이면서 동시에 분단구조 내 가장 취약한 이들로 북한 출신 여성을 주목한다. 그녀들은 여성이기에 북한을 떠나 국경을 넘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여성으로서의 수많은 한계와 고통을 경험하기도 했다. 최악의 식량난으로 알려진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체제의 주민 통제가 약화되자, 여성은 적극적인 이동 주체로 전환되었고 이들 중 몇몇은 국경을 넘어 한국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동은 매매혼, 인신매매, 폭력 등으로 점철된 험난한 과정이었고,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한국에서도 북한 출신이라는 편견과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려행>은 10명의 북한 출신 여성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북한에서의 삶, 국경을 넘기까지의 망설임과 두려움, 중국과 제3국을 거친 긴 이주의 과정, 그리고 한국에서의 힘겨운 일상 등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마음을 울리는 인터뷰 사이에 임흥순 감독 특유의 시적인 영상과 음악이 또 다른 서사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어느 곳에도 정박하지 못하고 여전히 부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북한 출신 여성의 계속되는 ‘려행’을 그리면서, 이 영화는 한반도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분단구조에서 여성의 위치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김성경]
임흥순Im Heung-soon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가족에 관한 비디오작품을 시작으로, 버려지고 지워진 개인사를 비디오, 사진, 설치 등으로 공적, 사회화시키는 작업들을 해왔다. 개인이 주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내사랑 지하>(2000), 등촌동 임대아파트에서 작업한 <꿈이 아니다>(2010) 등을 연출했다. 비념 (2012) 꿈이 아니다 (2010) 숙자 (2009)추억록 (2003) 내사랑 지하 (2000)
Contribution & World Sales 이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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