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족으로 분장한 아랍인들이 “우리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 영화 <아바타> 속 나비족과 같다”며 시위를 하는 장면이 <발렌티노의 유령> 중에 나온다. 이렇게 아랍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재현한 것을 빼고 영화는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서방 회화 작품 등에 비쳐진 아랍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성영화 <족장>에 등장하는 섹시한 남성의 상징 발렌티노의 모습을 시작으로 최근 영화들에서 악의 상징으로 표현된 것들까지 수많은 영화 속 아랍인들을 볼 수 있다. 감독 마이클 싱이 찾아낸 자료는 영화뿐 아니라 10세기 때의 회화, 독일의 카툰까지 방대하다. 그러나 이미지의 나열로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역사가, 저널리스트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의 역사, 이란혁명, 9.11까지,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재현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영웅으로서의 아랍인’, ‘공격자로서의 아랍인’ 등의 소제목을 단 친절한 챕터 구성은 입체적 이해를 돕는다. 마무리는 한 역사학자의 말을 빌려 한다. 주된 인터뷰이인 멜라니 맥알리스터는 아랍의 역사를 다시 알고자 하는 사람들, 자신이 미디어에 길들여져 있음을 아는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변화를 말하며 이제 미국이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재고할 때임을 강조한다. 폴 뉴먼 주연의 <영광의 탈출>의 배우들 이미지 때문에 이스라엘과 선을, 팔레스타인과 악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던 사람들이 ‘8억인과의 대화’라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강제된 이미지를 바꿔줄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아랍인들이 왜 화가나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는 한 인터뷰이의 비판대로 세상의 사건들에 ‘왜’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충실하게 이를 탐구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말들 사이에 수많은 영화 자료화면들이 흥미를 돋운다. 사회운동가이자 배우인 마이크 파렐의 목소리에 묻어있는 진정성은 ‘증오를 부르는 재현’의 문제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목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