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속의 한 사람이 이 나라에서 외국을 다니려면 여려 종류의 여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국가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한 나라여서 그렇다. 구소련 해체 이후 민족 문제와 자원 문제 등으로 발생한 1992년의 몰도바 내전 이후 미승인 국가로 탄생한 프리드네스트로비에 몰다비아 공화국을 두 명의 다큐멘터리스트가 찾는다.

<포트리스>라는 제목 자체에 감독이 주목하는 것이 담겨져 있지만, 감독은 뒤로 숨은 채 담담하게 이 나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 사람들은 2011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과 삶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표현한다. 혹자는 20년간 장기 집권한 이고르 스미르노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반체제 인사는 독재 정치를 비판한다. 정치 뉴스를 보다가 게임을 하는 젊은이, 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일 자체가 고달프다는 여성 등이 영화 속에서 목소리를 낸다. 말의 내용만큼 그들이 화면에 드러나는 모습도 차이가 난다. 국가와 정부에 대한 충성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사람들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이야기하는데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인물들은 화면 속 동선의 바깥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카메라에 눈맞춤이 쉽지 않은 삶, 입술의 모양을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은 삶인 듯하다. 내레이션 없이 배열된 화면에 잡힌 모습들은 관객에게 더 많은 탐색을 하게 한다. 슬쩍 지나쳐가는 레닌의 동상이나, 자주 등장하는 텔레비전 방송내용에 반응하는 등장인물의 태도, 춤추는 사람들 뒤에 잡힌 군인들의 모습 등을 종합하면 이 나라의 20년의 역사가 응축된다. 많은 부분 관객이 직접 조합해내며 이 나라의 삶을 이해 해야 하는 <포트리스>는 낯선 나라의 이야기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라 더욱 흡인력 있다. 정전상황과 이를 전면에 내세운 정치, 그리고 강대국의 그늘 속에 ‘요새’로 존재하는 상황 등은 우리 현대사의 굴곡진 부분들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목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