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기에 <그 남자는 어떻게 사라졌나>는 아이티의 부두교 주술사와 변혁기 폴란드의 낯선 조우에 관한 영화다. 200년 전 아이티의 혁명 투쟁 때 유입된 폴란드인의 피를 떠올린 아몬 프레몬은 자신이 백인의 후예라고 생각하고, 영화는 그가 먼 타지에서 겪었던 영적인 체험, 폴란드와 아이티를 위한 최후의 의식, 그리고 의문스러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주술사가 실존 인물인지 의심하는 순간, 기록 영상과 아트하우스적인 접근의 결합으로 완성된 영화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 언젠가부터 언론 매체가 현상을 보도하는 방식은 현실의 조작 혹은 드라마화에 가깝다. 진실을 다루는 미디어가 그러할진대 하물며 영화가 수십 년 전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는 어떠할까. <그 남자는 어떻게 사라졌나>는 서구인의 눈에 비이성적이고 비현실적인 존재로 비치는 부두교 주술사의 눈으로 1980년대 초반의 폴란드 사회를 되돌아본다. 떨어져 있을 때 침울했던 폴란드인들이 다함께 뭉쳤던 시기. 영화는 과거를 바라보는 지금까지의 시선과 과거의 기억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역으로 무엇보다 신선한 시선 아래 폴란드의 가장 뜨거웠던 시간이 소환된다. 200년 전 아이티인을 도와 프랑스군을 몰아내는 데 힘을 주었던 폴란드, 민주와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불타올랐던 1980년대의 폴란드. 영화는 그 시기의 폴란드를 단지 추억하기 전에 영예로운 시간이 과연 존재했는지 다시 한 번 스스로 물어보기를 원한다. 시간은 이미 흘러가버렸으며, 부두교 주술사 또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함께했기에 아름다웠던 시간의 열망과 열기도 시간과 함께 흩어졌는가. 그것은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았던 환영에 불과한 게 아닐까. <그 남자는 어떻게 사라졌나>가 다른 질문의 방식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영화다. (이용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