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모잠비크 해변의 그랑지 호텔.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거대규모로 호화롭게 설립된 이 호텔은 오늘날은 폐허가 된 채 부랑자들의 거주지가 되어 있다. 영화는 거대한 호텔의 허름한 외관을 길게 찍은 트레킹 샷 위에 과거 그랑지 호텔의 화려함을 논하는 목소리가 흐르면서 시작한다. 그랑지 호텔의 과거와 현재는 과거를 담은 사운드와 현재를 보여주는 이미지를 통해 공존과 동시에 충돌된다. 이 같은 대조는 영화 도처에 드러난다. 과거의 부와 현재의 가난, 화려한 기억과 폐허속 일상, 호텔안의 몽타쥬와 호텔밖의 롱테이크를 통해 한 공간이 담보하는 다양한 대조적 면모를 시청각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랑지 호텔의 과거와 현재는 8년째 그랑지 호텔의 장기 거주자로 살고 있는 모이제를 통해 물리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과거 그랑지 호텔의 단골 투숙객이던 아버지를 둔 모이제. 그는 아버지가 묵었던 과거 그 방을 현재 시점에서 다시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만.난.다. 만나지 말아야 했을까? 그랑지 호텔은 더 이상 식민 시대의 과대망상의 산물도 아니고, 역사와 기억의 흔적도 아닌 2,500여명의 부랑자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간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