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하노이 롱비엔의 한 철교다. 철교는 강을 가로지르고 그 주변으로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삶의 풍경이 연출된다. 네 명의 하노이 닥 랩 Hanoi DOCLAB 감독들은 각각 철교 경비원의 하루를 따라가며 밤과 낮의 철교풍경을 담기도 하고, 강가에서 벌거벗고 목욕하는 남자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하노이에서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연을 고향의 부모에게 전해주기를 바라는 여인을 만나기도 한다. 이 작은 편린들을 통해 우리는 디지털 카메라가 불쑥 하노이 보통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방문했을 때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카메라의 등장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만난 것에 열광하며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카메라를 통해 촉발되는 상황을 그대로 영화로 담아내는 방식의 영화 만들기는, 1960년대 동시녹음이 가능한 경량 카메라의 개발과 함께 등장한 시네마 베리떼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2007년 결성이후 다큐멘터리제작 워크샵과 상영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하노이 닥랩의 작품들이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미학이기도하다. 동남아시아지역은 서구와는 달리 개인이 영상을 제작한 경험이 일천하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매체의 보급과 함께 비로소 시작된 동남아시아의 독립 다큐멘터리는 주로 집단제작방식으로 적극적인 실험을 진행중인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노이 닥랩의 활동에 주목하는 이유다. (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