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매우 낯선 이름인 ‘시라’는 아랍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서사시로 대부분의 서사시가 그렇듯 영웅을 둘러싼 전쟁과 평화,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시라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이집트의 시인 압델 라흐만 압누디는 시라에 비하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책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40년간이나 헌신했지만 아직도 시라를 다 수집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이 증명하듯 시라는 500만개 이상의 시구로 이루어진 방대한 구전 서사시이다. 2003년 유네스코에 의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며 마침내 그 문화적 중요성을 인정받았지만 불행하게도 시라는 현재 거의 사라졌으며 오직 이집트에서만 음악의 형태로 남아 명백을 유지하고 있다. 이집트의 현존하는 마지막 시라 시인인 사예드 다위는 문맹이지만 시라의 수많은 구절을 전부 암기하고 있다. 손자인 라마단에게 시라를 전수하고 있는 그는, 손자도 자신과 같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시라를 지켜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라마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현대에 전통적 방식의 시라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중가요와 드라마에 영향을 받은 그는 시라의 현대적인 해석에 더 관심이 많다. 평생을 시라에 바쳐온 80살의 사예드를 통해 사라져가는 시라의 전통을 소개하는 <시라–초승달의 노래>는 더 나아가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현대 사회 속에서 전통적 가치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항상 영웅을 갈망하는가? 그 대답 또한 영화 속에 있다.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라의 노래는 화려한 엔터테인먼트가 줄 수 없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값진 지혜를 들려준다. (정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