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이브라힘은 20여 년간 이스라엘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했다. 그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는데 이스라엘 사회에 완전히 편입된 것도 아니다. 이브라힘은 여전히 당국으로부터 신분증을 받지 못하고 있고 가족들의 생존 토대는 불안정하다. 잠시 친정을 다녀온 이브라힘의 아내 유스라는 이브라힘의 배신행위를 응징하려는 친척들에게 어린 딸을 잃을뻔 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내에게 이브라힘은 분노하고 몇 달간 가족들로부터 격리되는 조치를 당한다. 사는게 사는게 아닌 이들 가족의 모습은 기묘한 비극성을 띤다. 나이에 비해 늙어보이는, 꾸부정하게 할머니처럼 걷는 유스라는 집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 이들 부부의 아들들은 차례로 감옥을 들락거린다. 이스라엘 경찰은 이브라힘의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대를 이어 스파이 활동을 할 것을 종용한다. 그걸 거부하면 다시 죄목을 만들어 아들들을 감옥에 집어넣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가로부터 배척당한채 오직 도구로만 쓰이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정작 이브라힘 본인은 당당하다. 그로 인해 가족들이 고통 받고 있지만 여느 권위적인 가부장처럼 행동한다. 그런 가운데 아이들은 또 다른 불행의 행로를 겪는다. <부역자와 그의 가족들>은 일체의 감상적인 기운 없이 불행을 일상적으로 생활화한 주인공 일가족을 담는다. 사실에 복무하는 그 스타일의 무표정이 역설적으로 강한 기운의 화면을 만들어 낸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