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음을 하는 듯한 조용한 허밍이 눈 덮인 동토 위로 흐른다. 때로 절규를 하듯 흐르는 노래는 마치 동토에 유폐된, 혹은 그 속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을 위한 영가와도 같다. 그리고 얼음 보다도 더 차가울듯한 광활한 호수를 미끄러지는 카메라는 둔탁한 기계음을 울리는 선박 위로 올라가 있다. 곧이어 오래된 흑백필름에 나오는 듯한, 그러나 이 거대한 동력선의 엔진을 손수 조작하는 듯한 흑인 노동자가 뚫어지듯 카메라를 응시한다. 아마도 이 선박은 수 세기도 더 전에 ‘검은 대륙’에서 이 얼어붙은 트로이로 향했던 그 배이리라. 응시하는 시선은 마치 눈 덮인 산맥 너머, 떠나온 후로 다시 밟아보지 못한 그 검은 대륙을 찾아 더듬는 듯하다. ‘블랙 오디세이Black Odysseia’의 출발선이다. 그런데 모노톤의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응시와 보행은, 고향 이타카를 찾는 율리시즈의 것일 수도 있고, 그런 아버지를 찾아 나선 텔레마코스의 것 일수도 있다. 선대의 미망(未忘)과 후대의 갈망(渴望)이 이렇듯 의도적으로 착종된 것은 조상의 뿌리를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는 후손의 짙은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영화전반에 걸쳐 삽입되는 눈보라와 거센 파도가 난파된 선조들의 시련을 암시하듯, 되돌아갈 여정 또한 험난할 수밖에 없음은 분명 하다. 따라서 무채색의 대지를 걷는 남자들의 선명한 외투 색깔은,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를 그 낯선 땅에서 끝까지 국외자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그리하여 어쩌면 이 얼어붙은 땅에서 홀로이 살아있음을 고집스럽게 선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석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