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기억>은 부모 세대의 기억상실에 대한 용서와 위로이자 그 상실의 틈을 매워줄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찾아 나선 사려 깊은 탐색기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직후 감독의 가족은 미전역에 흩어져있던 11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과 함께 임시 수용소에 강제 억류된다. 하지만 이 일은 가족의 기억에서도 미국의 공식적 역사에서도 잊혀진, 그래서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처럼 되어버린다. 이 기억의 파편을 붙잡기 위해 그녀는 기록된 역사와 기록되지 못한 기억 그리고 이미지의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한다. 예컨대 진주만 공격이 카메라에 기록된 이미지이자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확고부동한 ‘역사’라면, 일본계 미국인들이 억류됐던 수용소는 기록조차 금지되어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의 ‘공백’이다. 할리우드 영화, 국무부의 선전영화 같은 공식적 역사를 대변하는 필름 이미지에서 수용소가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을 때, <역사와 기억>은 비디오 이미지를 통해 그 공식적 역사-이미지에 도전한다. 그것은 일인칭 내레이션과 마음속에만 남아있는 이미지를 나침반 삼아 그 이미지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여정이지만 그렇기에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 1980~90년대 ‘정체성의 정치학’에 기반한 주관적 다큐멘터리 제작이 정점을 이루던 시기의 수작으로 역사와 이미지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박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