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루트’는 베트남 전쟁기간에 만들어져서 호치민 군대의 이동 및 보급로 사용되었던 길이다. 고산지대 밀림지역에 만들어져서 비행기로 확인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미군이 네이팜탄과 고엽제를 대량 투하 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봉쇄할 수 없었다는 것, 그리하여 베트남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 등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통일의 상징’이자 ‘민족 해방을 위한 저항과 희생의 상징’인 이 길은, 베트남인들에게 신화의 공간이자 국가적 기억의 공간이다. 하지만 <호치민 루트>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그런 공적 기억의 재확인 또는 기념이 아니다. 영화는 호치민 루트를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누구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는다. 대부분의 대답 속에서 확인되는 것은, 자부심과 다양한 사적 기억의 형태로 남아있는 전쟁의 외상과 상처의 공존이다. 호치민 루트의 개척에 참여했던 한 여성에게 ‘전후 보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촬영 팀은 지역 경찰에게 체포 된다. 전투원으로 참여한 한 남성의 대답을 통해, 많은 고엽제 피해자들이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한편에는 행사 준비인 듯 군대식 제식 훈련을 하는 어린이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다. 여전히 미래 세대에 전승되고 있지만 또한 약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공적 기억, 그와 함께 사적 기억 속의 다양한 상처 또한 서서히 잊혀져갈 슬픈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변성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