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잔해에서부터 아프리카 세우타 지역에 새롭게 세워진 장벽까지, <벽을 따라서>는 제목 그대로 벽을 따라가며 유럽을 보여주는 로드 무비이다. 유럽을 관통하며 감독은 세계 각지에서 유럽으로 이민 온 사람들을 만나고, 활기와 관용으로 새로운 유럽 사회 형성에 기여하고 있는 이주민들의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는다. 베를린 장벽에서는 파키스탄 이민자가 기념품을 팔며 가족을 독일로 데려오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고, 벨기에에선 이제는 은퇴한 광부가 더 나은 삶과 일자리를 찾아 사르데냐를 떠나온 기억을 더듬는다. 프랑스 마르세유에 사는 세네갈 이민자는 ‘유럽 최악의 슬럼가’인 지역에 인접한 곳에 부자들을 위해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들어선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영화가 인터뷰하는 사람들은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련을 겪어왔던 사람들로, 목숨을 걸고, 때론 불확실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는 고국에 가족을 두고 떠나왔다. 영화는 다양한 국경을 넘나들며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 오랜 이민자 배척 전통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유럽사회는 이민자들의 다양성으로 풍성해진 다문화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럽과 이주민들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으로 찬사를 보내고, 때론 냉소를 표하기도 한다. 또, 이주민들의 일상을 생생히 들여다봄으로써 이들의 고난에 인간성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