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현장기록] 아픈 몸을 살다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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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 일시 : 9.25.(월) 상영 후
  • 장소 : 메가박스 백석 8관
  • 강연자 : 김영옥(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 메이(『아픈 몸을 살다』역자)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 살롱 김영옥입니다. 저희 연구소에서는 인간의 나이에 따라 문화적으로 해석, 지각되는 것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제 옆에는 『아픈 몸을 살다』의 역자이신 메이님입니다. 이 영화를 그 전에는 수차례 작은 컴퓨터 스크린으로만 봤다가, 오늘 큰 화면에 제대로 된 사운드를 결합하여 보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등장인물들에게 동일시되기도 하고, 이런저런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1.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병

김영옥 영화에서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만성질환이 어떻게 사람의 정체성과 삶을 변화시키는가에 대해 사람들은 주목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상당히 ‘거리두기’가 힘들고, 개입해서 봐야 하는 영화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Arthur W. Frank의 『아픈 몸을 살다』를 번역한 메이님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앓고 있는 증상과 유사한 병을 오랜 시간 겪어 왔다. 그래서 이 토크에 저희 두 사람이 서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저는 이 영화를 2가지 관점에서 보았다. 첫 번째 ‘아픈 사람의 관점’이었고, 두 번째는 ‘페미니스트의 관점’이었다. 영화에서 임상, 면역시스템을 연구하는 단계에서 “우리 잠깐 페미니스트가 되어 봅시다”라고 말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를 젠더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작정하고 본 것은 아니고, 영화를 보다 보면 여성들의 병이라고 부를 정도로 젠더 특수성이 있는 병들이 있다. 이 병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병을 겪어온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것과 틀림없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 중간쯤에 명시적으로 ‘히스테리아’를 언급했다. 세기 말에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증상은 있는데 원인이 없는 병을 앓았는데, 이것을 사회는 ‘히스테리아’라고 불렀다. ‘히스테리아’는 영화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낙인’같은 것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여성에게 등장하는 증상들이기 때문에 상당히 사소하게 여겼고, 특히 남성들이 바라본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긴밀하게 관련되었다고 간주되어 왔었다. 영화에서는 그 부분을 언급하고 있진 않다. 어떤 병으로 인정받으려면 그 병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있어야 되고, 사회적 인정이 있어야 그 병을 제대로 밝혀내는데 예산이 들어간다. 이후에 환자로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병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병이 경험이 될 수 있다. 이 영화는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아픈 몸으로 살면서도 여러 가지 환경을 계속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보여준다. 저도 회복 소사이어티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단순히 면역체계 문제로 병을 앓고 있다. 메이님은 훨씬 더 이분들과 더 동일시되었을 것 같다. 메이님도 주인공들과 비슷한 증상을 오랜 시간 경험해왔다. 그래서 더 깊숙하게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보게 되셨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말씀 부탁드린다.

메이 영화를 큰 화면으로 보니 이렇게 가슴이 아픈 영화인가 했다. 영화에서 남편에 의해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내가 그렇게 아프던가?”하며 자신의 위치를 재설정하게 된다고 했다. 저도 가끔 외출을 하게 될 때마다 건강한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느낀다. 저는 현재 만성통증과 빛과 소리에 예민해지는 증상, 언어능력 저하 등을 겪었고 지금은 나름의 밸런스를 지켜나가며 기능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상태다. 세상의 일부가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2. 보이지 않는 병을 보이게 하기

김영옥 처음에 이 영화에 대해 DMZ국제다큐영화제로부터 강의 제의를 받았을 때, 매우 난처했다. 왜냐하면 저도 면역 체계 붕괴 때문에 이런저런 증상을 갖고 살지만, 주인공들의 인생이 너무나 절실하고 진정성으로 넘쳐서 섣불리 말을 하면 그저 은유차원으로 미끄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병, 고통에도 정도가 있는데 그런 것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영화 속 제시카를 봐봐. 정신과 마음과 상상력을 최대로 가동시켜서 잘 살고 있지 않은가”라던지, 오히려 건강한 몸으로 세상을 활보하는 것이 제대로 활보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냐고 말하면 하루하루를 지구를 들어 올리는 힘으로 버티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맞지 않는 말일 것 같았다. 우리가 질병을 은유로 사용할 때, 만나게 되는 인권차원의 질문들이 있지 않나.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질병은 은유로 사용되면 안 된다. 그런데 너무나 흔히 질병이 은유로 사용되고, 여러 다른 인식론에 오류들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우리로 하여금 개입해서 발언하게 만든다고 생각이 들었다. 메이님께서 책 제목을 『아픈 몸을 살다』로 정하신 이유와, 이 제목과 ‘아픈 몸으로 사는 것’과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다.

메이  ‘아픈 몸으로 살다’와 ‘아픈 몸을 살다’ 중, 후자를 출판사 사장님께서 정하셨다는 이유 외에 제가 지지한 이유가 있다. 몸이 바깥에 있는 무엇으로 느껴진다면, 병을 겪는 사람은 무언가를 통과해가고 있다는 몸의 느낌이 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아프게 된 몸은 계속 변화해가는 몸을 따라가고, 그 하루하루를 연장해갈 때 어딘가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것은 회복일 수도 있고, 아프지만 행복을 느낄 수도 있는 지점, 그 과정을 말하기 위해서 ‘아픈 몸을 살다’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다.

3.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서 세상 안에 내놓는다는 것

김영옥 ‘아픈 몸을 살다’에서 우리가 방점을 찍게 되는 것은 이야기가 된 아픈 몸, 경험인 것 같다. 영화에서도 “나의 이야기는 승리나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떤 질환이 있으면 질환을 고치거나 더 악화되거나 둘 중에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의료시스템이나 사회는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분들은 이 몸을 살아내면서 나의 삶을 스스로 구성하고, 누군가에게 삶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가시화되고, 보이지 않은 채 사라지지 않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서 아픈 몸으로 사는 삶의 목격자가 된다고 하는 것, 목격자가 됨으로써 질병을 앓고 있는 나 개인의 경계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야기 공동체를 만든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줄 수 있나.

메이 이 영화를 보면,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시적, 비가시적인 키워드를 중심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아픈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말은 중요하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증상도 보이지 않고 이 병을 앓는 사람들은 집에 다 있다. 이런 병을 앓게 되었을 때 특히나 가시화하고 정신병이라고 오해를 받는 등의 낙인에 대항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외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런 개인의 경험을 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 감독에게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앞부분에서는 “이것을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하고 질문을 하다가 이것은 새 삶이라고 대답한다. 그 몇 년의 시간 동안 자기 이야기를 만들고 찍으면서 시간을 건너온 것이다. 결국은 방에만 갇혀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이 살기 위한 이야기와 가시화하는 이야기가 겹치게 되는 것이다.

4. 가시화하고 연결하는 테크놀로지

김영옥 이 영화가 국경을 넘어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의 발달 덕분이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가두지 않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적인 이야기로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지이기도 했다. ‘히스테리아’라고 하는 것은 세기말의 여성들에게 빈번하게 발생했던 증상들이다. 그때는 기술도 없었고, 나 외에도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짐작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픈 몸의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 불가능했다. 그 당시에는 뇌 신경과학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뇌 사진을 찍어보는 일도 가능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까 여성들의 성적 욕망과 결부되어서 여성들의 스트레스 혹은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사소한 질병으로 간주되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 과학의 힘도 중요하고 과학과 기술이 가져온 기능들을 제대로 잘 활용해서 뭔가를 잘못 인식되어오던 것을 제대로 공적 장으로 불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분배의 정의 문제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가시적이 되기 쉬운 병이다. 거리에 나오게 되면 아프지 않아 보이니까 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다니지 못할 정도면 안에만 있으니 비가시적이 된다. 따라서 영화의 끝부분에선 ‘DEDICATED TO MISSING’, 그냥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말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평등, 질병을 둘러싼 정의의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지 않을까 싶다.

5. 정치적 사건인 아픈 몸

메이 질병을 둘러싼 정의는 앓고 있는 사람은 사라지게 하는 잘못된 이야기라는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낙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픈 몸을 살다』에는 암환자에 대한 낙인을 비판하는 내용이 나오고, ‘은유로서의 질병’에서도 등장한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사회적 낙인에 대항하는 방식인 것이다. 또, 질병 자체가 사회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이 더 아픈 것은 더 상식이라고도 본다. 예를 들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라던지, 최근에 세월호 생존자 학생들, 성 소수자들의 정신건강 문제 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질병이지 않나. 이런 것들은 없앨 수 있는 고통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몸의 고통이지만.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함께 해결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김영옥 만성질환 같은 병을 오래 앓을 때, 얼마만큼의 의료시스템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누가 돌볼 것에 대한 문제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다 어느 정도 자원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자원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은 이 병을 갖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메이 한국은 가족밖에 없는 것 같다. 자원이 없는 사람이 이런 병을 앓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가끔 신문기사에 말라 비틀어진 시체로 발견된 중년의 여성 등의 기사들이 가끔 나오지 않나. 우울증이었다고 하는데 저는 이런 병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나 한다. 제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사건은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었다. 모든 모순이 다 모여있는 문제더라. 원래 그 집안의 아버지가 암으로 죽고, 그 병원비 때문에 두 딸이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직을 못했다. 큰 딸은 당뇨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다. 어머니의 식당 일이 유일한 생계였으나 팔을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자 온 가족이 함께 자살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둘째 딸은 습작생이 아니라 데뷔를 했던 만화작가였는데, 1년간 번 돈이 15만원이었다. 가난한 예술가의 문제도 걸려있었다. 이 세 모녀가 구청에 지원신청을 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모순들로 굉장히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김영옥 영화에서 아픈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10번 넘게 병원비, 의사들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몇 년 동안 여기저기 적임자라고 생각되는 의사나 병원을 찾아다니려면 그만큼의 자원이 있어야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르는 것이다. 송파 세 모녀의 큰 딸이 어떤 병을 앓았다는 것인지, 보통 사람들이 내리는 진단들만 받을 뿐, 제대로 의료지원을 받지 못해서 그렇게 얼버무린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괜히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병이 있다고 진단받는 것이 얼마나 권력의 문제인가를 새삼스럽게 확인시켜주는 영화이기도 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병을 앓기 때문에 힘든 인생을 살기도 하고, 환자라고 하는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 받지 못해서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영화였다.

아픈 이야기를 하면 반응이 양극으로 갈라지는 것 같다.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렇게 아파 본 적이 없어 공감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남아계신 분들은 뭔가 접속이 된 분들이 아닐까 싶다. 지금부터는 관객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관객 1 저도 고통을 거의 4년 정도 앓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을 갱년기 증상이라고 누구나 다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정신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놀라왔다. 또한 아까 환자가 왜 병을 확진 해 주었을 때 기뻐서 울었던 것이 자기가 정신병이 아니라기보다는 이게 무슨 병이라는게 확실해져서 기뻐서라고 생각했다. 저는 사실 아직 이 병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겨우 인지한 상황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며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메이 계속 이 몸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받아드리는 것이 쉽지 않다. 영화에서처럼, 남들은 잘하고 있는 일을 하지 못하는 그 상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고 시간이 걸리지만 자신만의 속도에 맞추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혼자 분노했다가 또 체념했다가 100만 번쯤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고, 이 미친 과정을 응원한다.

김영옥 두통이 심해서 의사를 찾아갔으나 의사가 갱년기 증상이라 말해버릴 때, 굉장히 좌절하게 된다. 이런 증상이 있다고 할 때, 의사는 나를 이해해주려고 시도하지 않고 갱년기라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때, 의료시스템은 정말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만성피로증후군도 그렇고, 이 병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성별이 이 병들에 주어지는 관심, 이 병들을 연구하는데 주어지는 예산, 그리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간주하는 문화적인 가치시스템이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갱년기도 많은 여성들이 정말 심각하게 앓고 있는 질병인데, 질병이라고 의료계가 확인하긴 했으나 이것을 더 섬세하게 다루는 태도가 필요하다. 각각 갱년기를 겪는 양상이 너무나도 다른데 일괄되게 갱년기라고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접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병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계속 호소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목소리를 내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관객 2  영화 에서 주인공인 제니퍼가 자신과 똑같거나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분들과 인터넷으로 소통을 하면서 만남을 가지지 않나.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하다.

김영옥 환우 모임들이 활성화되어 있다. 정보를 활발히 주고받고, 격려한다.

메이 질병 당사자들과 가족들이 모여 기부 등을 하는 것은 미국 문화의 일부이기도 해서 한국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나 하는 차이를 느끼게 되지 않나. CDC(질병관리센터)에서 기금을 요청하는 움직임도 미국에는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다. 사실 이 병이 이름이 지어지고 가시화되기 시작한지 오래된 병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네이버카페가 있지만 숫자가 상당히 많고 오래되지 않았다. 7-8년된 것 같다. 주로 유행하는 치료법, 약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 정서적인 지지를 나눈다 던지의 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옥 전세계적으로 환우들의 액티비즘이 있었던 사례는 유방암을 앓고 있었던 사람들의 시위와 집회다. 유방암은 주로 여성들이 앓게 되는 병이라서 유방암에 대한 지원이 굉장히 적었다. 남성들이 앓는 병들은 선진적으로 연구가 되었고 치료방법부터 다양하게 개발이 되었는데 자궁암과 유방암은 지원이 적었다. 유방암을 공적인 의제라고 만들라는 운동을 페미니스트들이 해서 ‘유방암의 날’ 제정 등의 그런 사례를 언급할 수 있다. 여성들의 생리통 또한 개인에 따라 차이도 심하고, 아주 심한 경우에는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인데 공적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 생리통뿐만 아니라 생리대가 상당히 인체에 해로운 요소들을 품고 있는데 전혀 제재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알린 단체들에게 압박들이 들어오고 있다. 제약회사는 자본이다. 이 자본이 국가보고시스템과 결탁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봐야 한다, 남성분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질병을 앓는데 있어서도 특혜를 누리는 것 같다. 메이님의 생각은 어떠한가?

메이 돌봄의 문제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최근에 암에 걸렸을 때 남자 환자들은 아내에게서 돌봄을 받는 경우가 90%이상인데, 여성의 경우는 1/3일이라는 통계를 봤다. 같은 질병이라도 성별에 따라서 얼마나 다르게 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옥 주인공 브레아씨는 남편이 굉장히 헌신적으로 돌보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저 남편이 대학교수이고 한데 얼마나 실질적인 돌봄을 아내에게 해줄 수 있었을까 싶다. 아마도 장면엔 등장하지 않지만 제3의 노동력을 고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플 때 환자의 성별이 누구인가에 따라 돌봄의 풍경이 바뀌지 않나? 요즘 인지장애증이 있는 부모세대를 돌보는 자식세대의 경험을 싣고 있는데 주로 며느리, 딸들이 그 일을 감당한다. 아픈 것과 돌보는 것이 젠더의 문제라는 것에 우리가 계속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메이 마지막으로, 질병을 둘러싼 어떤 사회문화적인 권력에 힘을 모아야 하는 너무나 많은 이유들이 있다. 이 영화에서 한 사람이 정말 힘내기 어려운 병이지 않나. 그 사람이 힘을 내서 어떻게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참 좋았고, 이렇게 오늘 하루 살아있기로 선택하는 이유를 찾는 건 아픈 사람뿐 아니라 아프지 않은 모든 몸들에게도 참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영옥 “Every inch in my life”라는 말을 한다. 내 인생의 모든 인치가 나에게는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것이다. 피폐한 휴먼드라마의 가사는 아닌 것 같다. 우리들 인생의 정말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인지되려면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픈 것도 사적인 문제가 아니고, 공적인 문제이며 함께 이것을 이해하려고 하고 통증조차도 공유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으면 앞으로 100세대가 된다고 하는데 미래에 어떻게 살아낼지 걱정이 되지 않나. 영화에선 노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진 않지만, 이 통증을 갖고 산다고 하는 것을 결코 우리가 사적인 문제로 이해하지 말고 공적인 문제로 이해하자고 말씀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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