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지원시사회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감독과의 대화

2016.12.28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봉지원시사회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감독과의 대화


  • 일시: 2016.12.22(목) 19:30
  • 장소: 인디스페이스
  • 진행: 이화정 기자
  • 참석: 임정하 감독, 전일우 감독, 메카닉 윤학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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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이하 ‘이‘): 안녕하세요 지금부터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렇게 자리에 나와 주신 소감부터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임정하 감독(이하 ‘임’): 먼저, 이렇게 상영회에 와주신 관객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은 촬영할 때부터 7년 정도가 되었네요.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개봉을 앞두고 있다니 아직도 어리둥절하네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 모든 게 다 꿈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 아직은 좀 실감이 안 나네요. ^^

: 전일우 감독님도 오늘 이 자리가 꿈같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심정이 어떠신가요?

전일우 감독(이하 ‘전’): 일단 윤혁이에게 축하를 하고 싶습니다. 파리에 갔다 와서 빠른 시간 내에 영화를 만들자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그 다음 해에 안 좋은 일이 생기게 되어서 여차저차 시간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 친구가 폼 잡기 좋아하는 친구라 살아있을 때 영화가 나왔으면 참 좋았겠네요. 아마 하늘나라에서 주변 사람들 불러 놓고 폼 잡고 있을 것 같네요ㅎㅎ 어쨌든 그 친구에게 축하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또 같이 라이딩을 해주셨는데, 개봉을 하시는데 심정이 남다를실 것 같거든요.

윤학병 메카닉(이하 ‘윤’): 저죠?ㅎㅎ

: 네!!^^

: 모르겠네요. 지금도 그냥 감사하기만 합니다. 남들 하기 좋은 말로 무엇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그냥이라고 답할 수 있는 ‘그냥’이 저한테는 지금의 심정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냥 감사드리고, 전 감독님께서 우리 윤혁이가 일찍 영화를 봤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하셨는데, 병실에서 전 감독님과 함께 윤혁이가 가편 본을 보았습니다. 영화 편집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그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빌어서 전 감독님에게 감사의 말씀 드리고요. 그리고 윤혁이가 아마도 지금도 하하 호호하고 있을거에요. 그래서 저도 즐겁고 안깨기만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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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오늘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영화에 나오지 않은 윤혁 군의 더 많은 캐릭터가 들어나지 않을까라는 말을 시작에 앞서서 하게 되는데요.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윤혁 군이 어떤 것을 결심을 하고 실행을 할 때 과감하게 결단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그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초반에 감독님들과 함께 어떻게 합류를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 2009년 초반에 제가 모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윤혁이가 기획서를 만들어서 기업들을 돌아다니던 때였습니다. 그것을 모 기자가 도와준다고 하셔서 조금한 기사를 냈고, 저도 그 당시 자전거 관련 다큐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윤혁 군의 기획이 눈에 띄어서 진행을 하고자 했는데,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예산이 깎이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겉보기에는 멀쩡하잖아요. 육종이라는 것이 그렇거든요. 장기에 침입해서 문제를 일으키기까지에는 사람이 멀쩡해요. 그러니까 처음 인사할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정확한 사정을 알게 되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못한다. 말기 암인데 문제가 생기면 당신이 책임을 질 것인가? 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을 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제가 방송국을 나왔어요. 그런데 아는 PD가 제가 도와줄 수 있는 분이 있을지 한 번 알아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 엄홍길 대장님이 히말라야 학교를 지어주고 있었는데, 그것을 펀딩을 하기 위해서 기업인들을 데리고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오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 후배 피디가 그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곳에 갔다가 이 다큐를 지원해주실 영화에도 나오는 이종훈이라는 회장과 함께 돌아오게 됩니다. 세팅은 어렵지 않았어요. 윤혁이와 함께하는 팀들이 있었고, 이 전에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제일 문제는 의사님들이었습니다. 두 달을 뺄 수 있는 의사님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죠. 그리고 의사를 안 데리고 갈 수도 없는 게 가다가 사고가 나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지죠. 도덕적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윤혁이가 워낙 너무나 가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쨌든 이뤄내야겠다. 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에는 아는 PD 친인척 중에 의사 분이 계셔서 6월 30일에 출발을 하게 되었는데, 윤혁이는 가기 직전까지도 믿지 못했죠.

: 초반 세팅이 어떻게 보면 준비 과정은 힘들었지만 의기투합한 이후에는 일사천리라는 말을 써도 되겠죠? 그렇게 된 것 같긴 한데, 직접 가시는 마음은 또 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전문직으로 따라가시는 분도 계시긴 하지만 같이 라이딩을 해주고, 정신적 지주로서 갈등과 목적이 남달랐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초반에 갈 때의 마음, 그리고 같은 팀을 보았을 때 이 팀이 과연 근 50일의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를 예측했을 때 어떤 두려움이나 걱정이 있으셨나요?

: 일단은 영화가 아직 개봉이 되지 않아서 영화 뒤에 숨겨있는 관객들이 모르는 부분은 아마 시간이 지나서 이야기 할 이야기가 있을 거라 생각을 하고요. 저는 원래 부모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그 당시 못 간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윤혁이도 혼자 해보겠다고 해서 놔두고 어느 순간 다 됐다고 기뻐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윤혁이와 같이 얘기를 하는데 그 때 많이 울더라고요. 책임질 사람이 없어서 모두가 안한다 하더라. 나는 괜찮은데 형님이 없어져서 그렇다. 이것은 오로지 내 책임보다도 다 형 탓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제가 찾아가서 허락을 받겠다. 하더라고요. 제 친 누님이 암으로 21살에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가길 원하지 않으셨죠. 제가 부모님을 계속 모시고 살았으니까요. 제가 없으면 불안하신거죠. 그런데 윤혁이가 계속 저희 집에 찾아와서 형님 안가시면 저 못갑니다. 라고 얘기를 하시자 어머니가 윤혁이 손을 꼭 잡고 다녀오라고 해서 일이 성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전 감독님께서 애를 써서 일사천리로 진행을 하게 되었는데, 진행 과정을 보았을 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 대화를 하고 있는 자리로 잘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 욕심이 과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저희 팀들이 전부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 모인 거거든요. 서로 적이었죠. ㅎㅎ 저는 윤혁이를 지켜야하는 사람이고, 전 감독님은 감독으로서 좋은 그림과 뜻을 나타내고자하는 것을 원하고, 의사들은 윤혁이가 편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죠.

: 이제 드디어 뒷 이야기를 폭로하시네요 ㅎㅎ

: 그랬다가 이런 말들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구심점이 되는 윤혁으로 인해서 사람이 다 변하더라고요. 마지막 날에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 그리고 달성된 목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죽음 앞에 당당한 사람 없습니다. 제가 윤혁이에게 세 번을 물었어요. 너 가면 죽을 수도 있다. 갈래? 네.. 저 갑니다 이렇게 세 번을 물었을 때 세 번을 다 전 죽더라도 가겠습니다. 라고 해서 결국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인데, 한 사람의 진솔한 삶이 한 사람으로 국한되지 않고 어떤 이에게는 위안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감동이 되는 그런 자리가 될 수 있다면 정말 가난하게 살더라도 마음은 부자가 될 것 같습니다.

: 49일간의 여정이라는 것이 길면 긴 기간이고, 제가 생각할 때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든다는 것에 있어서는 긴 기간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소재를 찾아야하고, 어떤 장면을 만들어야하는 감독님의 입장에서는 욕심도 날 테고 촬영을 할 때도 고충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찍어온 영상들을 굉장히 오랜 시간 편집을 하셨어요. 기술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린 거라기보다 핵심을 찾는데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셨을 것 같은데, 그 핵심이 다다르기까지 고민한 지점이 무엇이었을까를 고심하게 되는 영화더라고요. 보통 이런 영화들을 보면 눈물을 흘릴 것 같은데 편집을 하시면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집을 하실 때 감독님께서 가져가신 방향성이 다른 영화의 접근 방법과는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감독님께 그 부분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 보통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인데, 요새는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보기가 힘들죠. 오히려 연예인 프로그램들이 차라리 다큐멘터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손을 댈 수가 없죠. 계속 움직이잖아요. 쉽게 말하면 모든 카메라맨이나 스 텝들이 순발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사고 나지 마라… 한 사람 팔 부러진 것으로 끝내자…입니다. 연출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질문 하신 거에 답하자고 한다면 이 영화의 연출은 스탭이 발을 빼고 제 3자의 위치에서 본 것이 아니라 같이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전체적인 정서가 우리가 일부러 그런 슬픔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연출 방법이나 편집 방향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프로젝트에 임하는 10명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빼는 게 더 중요한 작업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감정이 폭발하는 감정의 지점은 윤혁 군이 밤에 라이딩을 하다가 소리 지르는 장면,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서 언급하는 장면 말고는 의도적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억누르는 흔적들이 보이거든요. 그래서 편집에서 주관 점을 두신 것이나 어려웠던 부분이 어떤 부분이었나요?

: 애초에 이것을 영화로 하겠다고 생각을 한 것은 윤혁씨의 캐릭터였습니다. 윤혁씨가 기존의 일반적인 암환자였다면 저는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단히 밝고 농담도 굉장히 잘하고요. 그것이 매력적이었고요. 이 친구가 농담을 많이 하는데, 누가 진지한 말을 하면 다 농담으로 받거든요. 저는 그것이 좀 시큰했어요. 그래서 이게 뭘까? 이런 느낌이 들어서 이 느낌을 계속 가져갔던 것 같고, 기존의 투병 영화하고 다른 지점에서 출발을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윤혁이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하자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촬영하기가 어려워서 빠진 자료들이 있긴 했는데, 그 때마다 나래이션을 하자는 것에 이슈가 집중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윤혁과 관객들이 연결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말을 넣지 않아도 눈짓 표정을 교차하면 분명히 관객들과 소통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설명을 하는 부분을 최대한 배제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감정도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고 담담하게 진행을 했고, 편집에 있어서도 다이나믹하게 컷을 짧게 자른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음악에 있어서도 감독님께 요청 드린 것이 정서가 중립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 사실 이 레이스, 뚜르 드 프랑스 축제가 열릴 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하고 싶어 하고 그 과정의 어려움을 담은 영화들이 나왔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 직접 참여를 하셨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의 변화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윤혁 군을 중심으로 같이 떠났던 11명의 분들께 생겨났던 변화가 무엇이었을지 되새겨 보았을 때 이것 하나만은 내가 간직하고 앞으로 살아나가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다. 라는 것이 있으면 말씀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이런 말씀을 드릴 때 제가 좀 조심스럽습니다. 예를 들어서 봐서 재미있는 것이 있고, 직접 참여해서 좋은 것이 있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저희에게 재미있었던 일들을 보여드렸을 때 관객 분들이 보기에는 재미가 없을 것 같은 우려가 있습니다. 변화라고 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변화하게 된 계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윤혁이었습니다. 의심, 편견에 대한 것들이 무너지면서 신뢰로 바뀌게 되었죠.

: 변화가 굉장히 많았죠. 제일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우리 팀 중에서 충식이 아실거에요. 빨래하고 운전하던 친구요. 그 친구가 코골이가 굉장히 심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충식이가 도망갔습니다. 이남규씨가 하도 코를 골아서… 앞에 전개되었던 사람들의 정신적인 갈등, 봉합되지 않은 상처,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마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해변에 모여드는 잔잔한 파도처럼 사람 마음도 잔잔해지더라고요.

: 감독님과 출연을 하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요. 지금부터는 관객 분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손 들어주시면 마이크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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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1: 네 영화 잘 봤습니다. 초반부에 암스트롱이 나오는데 그 때는 스캔들이 안 터졌겠지만 지금은 영웅의 이미지가 아니잖아요. 그 분량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고민은 없으셨는지요?

: 영화를 마무리하면서 제일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 중에 하나가 랜스이긴 해요. 주변에서 스캔들 터지고 나서 많이들 걱정해주셨거든요. 분명이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이 장면을 빼야하나? 라는 고민들을 했었는데요. 저는 명백하게 윤혁이가 자전거를 타게 된 계기는 랜스 때문입니다. 항암치료가 굉장히 힘들어서 무기력한 상태가 계속 되는데, 무기력한 상태에서 랜드가 윤혁에게 무언가를 던져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비록 이 사람이 그런 스캔들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지만 윤혁에게 꿈을 꾸게 했고, 불가능한 도전을 하게 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넣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만약 윤혁이가 살아있을 때 그 스캔들을 들었더라면 뭐라고 말을 했을까? 라는 것입니다. 그 친구는 직격탄을 날렸을 수도 있는데 저는 항상 모든 일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넣기로 하였습니다.

관객2: 네 영화 잘 봤고요. 같이 가셨던 형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첫 장면에 팔이 먼저 부러지시잖아요. 그 당시에 같이 타고 싶으셨던 심정이 표정에 많이 표현이 되는데, 심정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 네 옆에 전감독이 짧게 하랍니다. 제가 누구를 버리고 간 적이 없거든요. 나머지가 희생이 되더라도 다 같이 가야한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는데, 생전 처음으로 제일 귀한 분을 버리고 갔단 말이에요. 그렇게 절박했어요. 윤혁이를 혼자 보낼 수 없었으니까요. 근데 첫 날 그런 사고가 있었잖아요. 원인은 바퀴에 카메라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전감독이 자전거에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왔는데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사고가 났죠. 저는 반드시 사고가 날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지만 지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자전거에 살이 걸리는 것이 끝가지 밀렸으면 될 텐데 마지막 두 개를 못 떨어뜨려서 그것에 걸려서 낙차 사고가 난 것인데, 우리나라 말에 좋은 말이 있잖아요. 액땜이라는 것. 그래서 정감독에게 정말 감사해요. 정감독이 주장하는 것이 그것이죠. 여기서 10명을 데리고 속초만 가더라도 별 사고가 다 나요. 찰과상이나 스크래치는 일상이거든요. 5천키로를 뛰었어요. 잘못 들어간 길까지 합치면 5천키로를 육박합니다. 그 시간동안 아이들이 스크래치 하나 없었어요. 감사하죠. 정 감독님 고맙습니다. ㅎㅎ

: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받아보겠습니다.

관객3: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딱히 힘든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혹시 걷는 것 보다 자전거 타는 것이 더 힘든가요? 궁금해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 여기서 로드 하시는 분들 계시면 손 들어보시겠어요? 많으시네요. 프로티지가 있는데 보통 15프로를 되는 것을 계속 엉덩이를 들고 계속 달리면 보통은 사람이 내릴 수밖에 없는데 윤혁이는 내리지도 못하고 참 욕하면서 올라가게 되는 것인데, 보통은 걷게 되요.

: 웬만한 근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걷기도 힘들죠. 내리고 나면 못 올라갑니다. 화면에서는 카메라 각도가 있어서 경사도가 현실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그것이 궁금하시다면 일단 대관령으로 한 번 자전거타고 올라가 보십쇼. 그러면 금방 알게 되실 겁니다.

: 윤혁 군이 초반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가겠다. 암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일반 사람처럼 행복할 수 있다는 목적에서 이런 레이스가 가능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청년의 꿈에서 병이라는 것을 지워버릴 정도로 의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라이딩만큼이나 같이 동행을 하신 분들께도 많은 기억들이 남을 텐데요. 윤혁 군을 위해 마련한 자리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을 들으면서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웃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러분을 대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쁩니다. 가끔은 윤혁은 떠났지만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가끔은요. 하지만 그 아이도 보고 있으면 알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손짓 하나로 다 통합니다. 그런 것들이 하늘에서도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목소리가 들린다면 혹은 못 듣는 곳에 있을지라도 그 아이는 다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스럽고 감사드립니다.

: 저는 같은 관객의 입장으로 말씀을 드리면, 외람되지만 꿈이라고 했을 때 꿈은 멋있게 이루어져야 하잖아요. 저는 윤혁이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같이 했는데 구질구질하고 정신없었던 현장이었어요. 근데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지금 혹은 이 삶이 어떤 꿈을 이루기 위한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비루한 현실이라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고, 이 친구가 폼 잡기를 좋아합니다. 주변에 말씀 많이 해 주셔서 폼 좀 잡을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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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개봉을 앞두고 얼떨떨하기만 한데요. 직접 윤혁씨를 만나보고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참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 친구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이 되고 공감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아마 윤혁군은 계속 기억해주고 폼 난다. 라고 말해주는 것을 반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대로 많은 분들에게 소개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늦게까지 이렇게 함께 자리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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