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박물관, 장소 다큐멘터리

2017.10.16

기억의 박물관, 장소 다큐멘터리:
‘공간’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콘크리트의 불안>, <집의 시간들>, <일> 세 편으로 본 공간을 기억하는 방법

도상희 시민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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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이렇게 따뜻하고 개성 있는 느낌일수도 있구나, 둔촌주공아파트를 담은 사진집을 넘겨보며 생각했다. ‘아파트’를 단어 자체로만 놓고 보면 차갑고 딱딱한데, 그것은 ‘나의’ 아파트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는 하얗고 똑같이 구획된 네모난 건물일 뿐이지만 ‘나의’ 집인 아파트는 그 안에 동생과 함께 타고 놀았던 기린 미끄럼틀이나, 임시로 켜졌던 전등이 너무 예뻐서 정전이 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어린 시절의 추억도 품고 있다. 하나의 장소는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 각자에게 다르게 기억되며, 그 수만큼의 정체성을 지닌다.[1] 그 각별한 기억을 담은 <집의 시간들>(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의 라야(김지은) 감독이 ‘둔촌주공아파트X가정방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담아냈던 아파트 사진들도 그렇기에 각별하고 다정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는 ‘공간’ 자체가 주인공인 장소 다큐멘터리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감독 각자가 기억하는 어떤 공간을 보여주는 국내 작품 <콘크리트의 불안>( Anxiety of Concrete , 2017), <집의 시간들>(Long Farewell , 2017), <일>(The Work , 2016)을 소개하고자 한다. 각 다큐멘터리들은 차례대로 (스카이 아파트에)살았던 사람, (둔촌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 마지막으로 그곳(실제로 두 장소인 것은 아니다)을 부수었던 사람의 시선을 담고 있다. 2017년의 서울이란 도시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장소에서 머무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자신이 이사를 가지 않더라도 경관을 바꾸고 투자를 통해 이익을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써 집은 끝없이 허물어지고 새로 지어진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기억 할 수 있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장소는 ‘재개발’이란 이름 아래 점점 사라져간다.

이에 2000년대 이전까지 장소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은 대부분 재개발의 부당함에 집중했으며, 재개발로 인해 장소 상실이 발생한 철거민들의 투쟁을 고발하는 작품들이 많았다.[2] 하지만 최근 다큐멘터리에서 장소는 투쟁의 배경이 아닌 ‘비어 있는 이미지’ 자체로 주인공이다. 즉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장소에 대한 상실감이나 장소 내부의 기억을 불러내는 것이다. 장소와 관련된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감정에 호소하고 사건을 고발하는 성격에서 벗어나, 장소를 조용하고 담담하게 관찰하여 장소의 본질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3]

철거업체 용역으로 재개발지역의 집을 부수던 인물의 발화 <일>의 주인공은 해당 인물이자 동시에 여전히 철거의 잔해가 남아있는 상도4동이라는 특정 장소이다. 관객은 부서진 아파트의 잔해 혹은 “(살던 사람을)아무리 끌어내려도 자기 집이라며 자기도 하더라.”는 독백을 철거민의 투쟁의 흔적으로서보다는 소중한 ‘집’의 본질로서 고민하게 된다.

이미 철거된 스카이아파트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 <콘크리트의 불안>이나 철거를 앞둔 둔촌주공아파트 열 세가구의 애틋한 추억 <집의 시간들> 두 다큐멘터리는 ‘아파트’라는 장소의 본질을 고찰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기억의 재현을 위한 최적의 매체이기도 하다.
정릉 스카이아파트[4]와 둔촌동 둔촌주공아파트[5] 각각의 거주민들이 자신의 소중했던 장소를 사진, 소리수집, 인터뷰수집 등으로 기억하기 위한 움직임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다큐멘터리야말로 ‘장소’를 기록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는 이형관에 따르면 타 매체와 구별되는 다큐멘터리의 세 가지 특성[6]때문인데, 첫 번째는 다큐멘터리의 리얼리즘이다. 다큐멘터리에 나타난 장소는 촬영과 관계없이 발생한 세계이며, 이는 관객이 묘사되고 연출된 장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장소 자체를 진짜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특성은 정보 전달력이다. 움직이는 사진의 기록인 다큐멘터리는 그림이나 글, 또는 배우가 재현하는 픽션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객관적이다. 세 번째 특성은 다큐멘터리의 영화적 효과이다. 다큐멘터리는 영화의 한 종류로 주체를 촬영한 사진의 연속으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영화는 끝없이 변화하는 장소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연출할 수 있고, 인간이 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경험과 장소가 가진 정체성을 다른 어떤 매체보다 풍성하게 재현할 수 있다. 즉 다큐멘터리는 ‘장소’를 다른 어느 매체보다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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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다큐멘터리로서의 특징인 리얼리즘, 정보 전달력, 영화적 효과를 잘 갖추고 있는 세 다큐멘터리 모두 해당 장소에 대한 기억을 세밀하게 보존하는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장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콘크리트의 불안>( Anxiety of Concrete , 2017)

<콘크리트의 불안>에서 감독은 아파트 붐 초기에 건설된 제1세대 콘크리트 아파트인 스카이아파트에 작별을 고한다. 그곳에서 배냇니를 모두 갈았던 감독은 1969년 건설 당시의 날림공사라는 시대적 문제를 안고 흔들리던 아파트를 보다가, 어린 시절 흔들리던 이를 생각해낸다. 이후 카메라는 한 칸 한 칸의 방이 아닌 스카이아파트의 전반적인 외부 전경을 담담하게 담아내며, 그 위에 가족 구성원들의 ‘이’를 중심으로 한 서사로서 나레이션이 구성된다.

이때 감독의 과거 회상은 그 자체로도 기록이지만 일부 관객들에게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촉매다. 부모님의 맞벌이와 그에 따른 부부싸움, 혼자 남겨진 아이들끼리의 놀이터 풍경 등 2000년대 초기의 아파트 생활상은 감독 한 명만의 특수한 기억을 넘어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들로써 ‘아파트 키드’로 명명되는 이들 공통의 추억이 된다. 관객은 건설 당시에는 부의 상징이자 가족의 따스한 보금자리였던 스카이아파트가 끝내 허물어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각자의 의미를 얻어갈 것이다.

<집의 시간들>(Long Farewell , 2017)

<집의 시간들>에서 또한 주인공은 나레이션의 주체가 아니라 공간인 둔촌주공아파트 자체다. <콘크리트의 불안>에서 한명의 화자가 공간을 추억했다면, 여기서는 재개발을 앞두고 천천히 집과 작별을 준비하는 열 세가구가 화자로서 목소리만 등장한다. 이들은 “집은(경제적 의미의 부동산이 아니라)가족이라고 봐요.”, “저한테 이 집은 요양원 같은 느낌? 거실에서 빛이 들고 고요한데 새소리 나고, 고양이는 자고 있고… 그 순간을 정말 좋아했어요.”, “떠나면서 아쉬운 건 나무, 새소리, 햇빛. 아파트지만 숲속에 살고 있는 이런 느낌의 아파트는 다시는 생기지 못할 것 같아요.” 등 집에 얽힌 추억과 재개발에 따른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이때 감독은 녹물이 나오거나 집에 따라 외풍이 심하거나 환기가 안 될 때도 있다는 등의 문제점도 편집 없이 드러냄으로서 완벽한 공간은 아니었으나 그것들마저도 소중한 아파트에 대한 기억으로서 기록해두는 사려 깊음을 보인다.
감독은 “제가 떠난 다음에 여길 추억할 시간이(재개발로 사라지면) 없을 거라는 거. 그게 아쉬워요.” 라는 한 주민의 말에 대한 위로라는 듯, 원경과 근경을 꼼꼼하게 기록해낸다. 예를 들어 201호 베란다는 오후 4시 즈음의 빛의 각도에, 2동의 상수리나무는 1동 6층에서 바라보아야 가장 아름답다는 식으로 장소를 잘 알고(실제로 자신이 살고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은 더 자주, 구석구석 보니까 어떤 표정을 지을 때 가장 아름다운지 잘 알게 되듯 말이다.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다큐멘터리는 곧 재개발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시 공간을 살려낼 것이다.

<일>(The Work , 2016)

<일>에는 폐허가 된 상도4동의 재개발 준비지가 담겼다. 앞서 두 작품과 달리 아파트 등의 특정 건물에 대한 기록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은 사람들이 가진 공간의 추억을 부수는, 재건축 용역 노동자로서 일했던 인물의 독백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공간에 대한 의미를 곱씹게 한다. <콘크리트의 불안>과 <집의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기억해 두기위한 기록이라면, <일>은 이미 사라진 공간을 사라지게 도왔던 이의 기억으로서 장소 다큐멘터리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는 이미 볼품없이 부서져 버린 집의 잔해들과 한때 한 가정을 따뜻하게 보듬었던 벽의 구멍, 용역들이 옮기던 한 가정의 결혼 기념사진, 냉장고 등을 보여준다. 그 위로 “사람들이 (그래도 자기 집이라고) 아무리 끌어내려도 끝없이 다시 기어 올라가. 남은 이불 쪼가리 같은걸 덮고 자고.”와 같은 그의 독백이 얹히면서 관객들은 ‘집’ 그리고 재건축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상도4동의 주거단지 그리고 스카이아파트는 경제 혹은 안정상의 문제로 이미 허물어졌다. 둔촌주공아파트 또한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장소를 담은 다큐멘터리들이 무언가를 새로 짓거나, 사라짐을 막는 역할을 할 수는 없겠지만 장소 다큐멘터리란 그런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하는것은 아니다. 소개한 세 작품은 공간을 추억하고자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장소에 얽힌 아픔을 교훈 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억의 박물관으로 남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1] 이안 나이른(Ian Nairn)은 ‘장소 정체성은 장소에 있는 사람 수만큼 많으며 고유한 주소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Ian Nairn, The American Land scape (New York: Random House), 1965, p.78.

[주2] 이형관은 자신의 석사학위논문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도시 장소 상실과 기억의 재생산」에서 해당 영화가 김동원의 <상계동 올림픽>(1988), <행당동 사람들>(1994), 김성환의 <동강은 흐른다>(1999), 정일건의 <대추리 전쟁>(2009) 등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3] 이승민,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로운 경향,” pp.54-55.

[주4] 스카이아파트는 건설당시의 날림으로 인해 2008년 위험시설로 지정된 이후 2016년 철거되었다. 스카이아파트는 정릉 청년예술가들의 마을 역사기록 프로젝트인 <굿바이 스카이 아파트> 전시회(16년 11월 25일~12월 1일)에서 사진, 영상, 건축기록, 인터뷰로 기억되었다.

[주5]둔촌주공아파트의 재개발 논의는 1999년부터 있어왔다. 주민들 중 주로 2030 아파트 키즈를 중심으로 2013년부터 사진집 출간, 소리수집, 인터뷰 등의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임준하는 자신의 석사논문 「아파트 키즈의 아파트 단지에 대한 장소애착과 기억 – 둔촌 주공아파트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는 아파트 단지의 내부자들(insider)이 아파트 단지를 일종의 기념비, 기억의 환기력을 지니는 ‘기억의 장소(lieu de mémoire)’로 재구성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공적영역에서 작성된 아파트 담론에 대항하여 불완전한 기억에 기반을 두고 재건축을 앞둔 평범하고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에 장소로서의 아우라(aura)를 부여한다.” 고 평가했다.

[주6] 이형관,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도시 장소 상실과 기억의 재생산」,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 지역시스템공학부 생태조경학 전공 석사학위 논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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