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현장기록] 2017 페미니즘, 정치세력화와 횡단의 정치

2017.10.16

[강의 현장기록] 2017 페미니즘, 정치세력화와 횡단의 정치

  • 일시 : 9.23.(토)
  • 장소 : 메가박스 파주 1관
  • 강연자 : 손희정 문화평론가, 이혁상 다큐멘터리 감독 (연분홍치마 소속)
  • 정리 : 도상희 (시민에디터)

손희정 페미니스트라는 검색어가 1위로 올라간 것은 잘 아시는 것처럼 18세 김군이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요.’ 이러면서 IS에 조인하기 위해 터키로 가면서, 페미니즘이 뭐길래 싫다고 하지? 하면서 검색어에 올라간 정도로, 어떻게 보면 그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없었던 단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지금 이런 어떤 다큐초이스 준비를 하고 오기 전에 생긴 가장 페미니즘 안에서의 충격적인 사건이랄까 핫한 상황이란 것은 잘 아시는 것처럼 9월 20일에 젠더폭력이라는 단어가 네이버 검색어 1위에 올라가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정부가 탄생을 하고, 이 정부가 되게 중요하게 가지고 가고 있는 의제 중의 하나가 젠더폭력 방지법을 만드는 것이고, 그런데 이 젠더폭력 방지법을 만든다라고 하면서 간담회같은 걸 하는 자리였던 것 같은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와서 그렇게 이야기를 한거죠. “트랜스 젠더는 뭔지 아는데, 젠더 폭력은 무엇이냐.” 하면서 젠더폭력이 검색어 1위에 올라갔고, 페미니스트가 검색어 1위에 올라간지 1년 6개월 정도가 흘러서 젠더폭력이 다시 검색어 1위로 올라갔을 때, 어떻게 보면 지난 6개월간 리부트 됐다라고 했던 페미니즘이, 이제 당면하고 있는 어떤, 뛰어넘어야 하는 벽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젠더폭력이라는 검색어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의식 안에서 작품 세 개를 골라서 <폴리티컬 애니멀>(Political animals , 2016), <아웃-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Out: Smashing Homophobia Project, 2007), <파리 이즈 버닝>(Paris Is Burning, 1990) 세 작품을 상영하고, 젠더라는 단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부분이 있어요. 실제로 젠더가 뭔지 대한민국이 전반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때에, 여성폭력이라든지 성폭력 이런 식으로 이름붙이지 않고 왜 젠더폭력이라고 이름 붙였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젠더폭력이라고 하면서 다양한 젠더를 아울러 갈 의지가 있었던 것도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작년에 여성가족부에서 성평등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성소수자와 함께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양성평등이라고 고쳐야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정말로 젠더는 여성과 남성 두 개, 본질적인 것 이렇게 규정해버린 역사가 있는데, 왜 이걸 지금 정부에 와서는 젠더폭력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이 미묘한 조어가 탄생한 순간부터 젠더폭력 검색어 1위는 너무 정해진 수순이 아니었을까? 이런 고민들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오늘 그런 이야기들을 좀 나눠볼 수 있을거라고 기대를 한 부분도 있구요. 그러면서 <파리 이즈 버닝>이 제일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작품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퀴어 시네마의 고전이기도 해서 이것 끝에 대담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이혁상 저는 현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고요. 성적 소수 문화 인권 모임 연대 연분홍치마라는 단체에서 같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연분홍치마는 2003년도에 결성이 되어서 지금까지 9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LGBT인권운동과 다양한 사회참여를 하고 있는 단체이구요, 그중에 유일한 게이감독으로써 이전에 게이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Miracle On Jongno Street, 2010)이나 기타 작품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오늘 <파리 이즈 버닝>은 저게 나왔을 때 한국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라고 이야기가 되어서 당시에는 자막이나 번역도 없이 지직거리는 화면으로 본 기억이 나요. 굉장히 낯설었던 다큐멘터리로서만 기억이 나는데, 당시에는 제가 게이로써 스스로를 정체화 하지 못했던 시기이도 했고, 좀 두렵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볼’(부문별로 여성의 복장을 하고 워킹을 하는 행사) 문화라는 것이. 그런데 이제 저도 나이가 들고 스스로를 게이로써 정체화 하면서 제가 루폴의 ‘드랙 레이스’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있거든요. 루폴은 미국을 대표하는 어떤 드랙퀸이신 분인데, 그분이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실 이 ‘볼’ 문화를 티비에 이식을 해서 소개를 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드랙 레이스의 애청자로서 오랜만에 <파리 이즈 버닝>을 보니까, 역사적 흐름과 드랙퀸 문화, 게이 문화의 어떤 흐름들이 좀 보여서. 또 변한 것도 있고, 여전한 것도 있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었던 것 같구요. 개인적으로 저는 마돈나의 보그라는 노래가 이제 보깅댄스를, 서브컬쳐에 있던 이 보그 춤을 사실 오버그라운드로 소개한 음악이었거든요. 그때는 몰랐고, <파리 이즈 버닝>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앞에 나와서 이렇게(다리와 손가락를 꼬고) 앉아 있어야 하는건가? 싶기도 하고요. (웃음) 재미있게 다시 봤던 것 같습니다.

손희정 저도 되게 오랜만에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이 작품을 골라서 다시 보는데 제가 생각했었던 그 작품이 아니라더라구요. 굉장히 혼란스럽고, 저 사람은 저기에서 뭘 하고 있고 뭘 흉내내는지 알 수 없었던 게 제가 십 몇년 전에 이 작품을 봤을 때의 느낌이었는데, 지금 보니까 굉장히 익숙한 광경들이기도 하구요. 페미니스트로서 이 작품을 봤을 때의 느낌은, 젠더라고 하는 것이, 더 복잡한 논의들이 있기는 하지만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사회적으로 규정되어서 만들어지는 어떤 성, 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수행에 의해서. 그러니까 내 자궁과 함께 내 여성성이라고 하는 게 딸려오는 게 아니라, 학습과 수행과 연습과 눈치보기와 그런 문화적 맥락 안에서 만들어지는가를 잘 보여주는 지점이 첫 번째로 있었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로는, 다시 보시면서도 혼란스러운 부분들이 여전히 있을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사람은 게이인거냐, 트랜스젠더 인거냐, 드랙퀸인거냐, 크로스 드레서인 거냐,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엇인거냐 하는 혼란을 우리한테 주는 작업이기도 한데, 제가 요번에 보면서 느꼈었던 것은 이 이성애 중심 사회라고 하는, 성별 이원제라고 하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언어 안에서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우리한테 익숙한 언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존재를 포착하는 일에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라는 것을 되게 잘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하게 된 질문은 뭐였냐면, 사실 이때까지 드랙퀸이나 이런 퍼포먼스를 보면서 페미니스트 내부에서도 논쟁들이 많았고, 생물학적 남성-이란 표현도 어색하긴 하지만-남성으로 지정된 사람들이 여성성을 수행함으로써, 공연을 함으로써 오히려 여성성을 강화하거나 희화화 한다는 비판들이 쭉 있어왔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제가 들었던 생각은 누군가가 여성성을 수행함으로써 그것을 폄하하거나 혹은 규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보편적 인간으로써 남성성이라고 하는 것을 규정하는건 아닐까. 그래서 드랙‘킹’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거나, 아니면 그것들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 드랙퀸을 비판하는 것만큼 비판이 있지 않았던 부분들이 있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이혁상 감독님을 모신 이유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게이 페미니스트랑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고, 두 번째는 제가 그래서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시대가 열렸는데, 이건 기쁜 일일수도 있지만 이게 열릴 때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 두 개가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소수자는 나중에’ 와 ‘군대 내 동성애에 반대합니다’ 라고 하는 아주 적극적인 혐오와 차별과 배제의 표현을 바탕으로 등장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보면서 도대체 페미니즘 운동은 이 페미니스트 대통령 시대에 어떤 의제를 가져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퀴어 작품들을 선택을 했었던 건데요. <폴리티컬 애니멀즈> 같은 경우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제도적 차원 안에서 성 소수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고, <아웃-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같은 경우는 10대 레즈비언들이 이반검열이라는 제도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학생인권조례 라든지 차별금지법 같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골랐고, <파리 이즈 버닝>은 이 복잡한 논의들 안에서 젠더란 무엇이냐, 게이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냐 이런 부분들이 궁금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골랐다면, 그때의 제가 <아웃-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를 고른 또 다른 이유는, 이 퀴어 다큐멘터리의 자장 안에서 여성 영상집단 ‘움’이라고 하는 단체에 주목을 하고 싶은 것이 컸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하나 빠지는 단체가 있었던 거예요. 네, ‘연분홍 치마’는 한국 퀴어다큐멘터리 그리고 영화사 안에서 도저히 빼고 갈 수 없는 단체인데 그럼 이 단체는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같이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까 했을 때 아, 그럼 이혁상이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연분홍치마 같은 경우 작품이 어떤 작품들이 있었죠?

이혁상 네, 일단 이렇게 좋은 자리에, 좋지만 저로써는 어려운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있는 자리가 제가 있어야 할 곳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참석을 하게 되거든요. 특히나 이런 여성주의,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제가 공부를 게을리 해서 잘못 말씀드리는 부분이 생기면 어쩌나 마음이 콩닥콩닥하는 그런 부분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제가 뭘 음식을 먹을 때도 흘리더라구요. 사레도 들리고. 그래서 의사인 친구한테 정말 나이게 들어서 내가 이런 증상이 생기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친구가 당연하지, 입 주위와 목 근육이 노화하면서 그런거라고 하더라구요. 이게 음식물뿐만 아니라 제 마음속의 어떤 생물학적인 남성, 소위 한남 개저씨의 욕망들도 자꾸 훅 나올 때가 있어서..

손희정 그건 무슨 근육이 약해져서 그런 걸까요?

이혁상 마음의 근육이.. 마음과 어떤 양심의 근육? (웃음) 그래서 여러 고민을 하면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 저희 연분홍 치마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다큐는 9편인데 그중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함께 만들었던 작품은 첫 번째가 <3xFTM>(2008)이라고 피메일 투 메일(FTM), 그러니까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세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이고 김일란 감독이 연출을 했었구요. 그 작품 이후에 <레즈비언 정치도전기>(The Time Of Our Lives, 2009)라는 작품이 있었어요. 당시에 진보신당에서 레즈비언으로써 처음 커밍아웃을 한 국회의원 후보가 있었습니다. 정치 1번지라고 이야기되는 종로구에서 출마를 했었구요. 그분의 선거운동 캠프에 관한 다큐멘터리였어요. 이 두 다큐멘터리를 저희가 당시 있었던 진보신당에서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변경을 위해서 여러 활동을 했었고 그때 저희 연분홍치마가 단체 차원에서 함께 결합을 하면서 저희는 이제 다큐멘터리로써 그것을 좀 의미화하자 라고 해서 결합을 했었고, 그때 친해졌던 최현숙 후보와 또 이제 두 번째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구요. 그게 이제 트랜스젠더와 레즈비언 다큐멘터리 두 편을 만들고 나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또 삼세판의 강박이 있잖아요?(웃음) 그래서 삼부작으로 완결을 하자는 내부적인 논의가 있었는데, 고민들을 하다가 다들 저를 쳐다보게 되는.. 이제 우리 레즈비언 하고 트랜스젠더 했으니까 우리 안에 바이섹슈얼은 없는 것 같고 아직.. 그렇다면 남아있는 게이가 삼부작을 완성을 해라 라고 해서..(웃음) 이제 제 게이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한 종로의 기적이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삼부작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성소수자 인권 관련해서 네 번째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연분홍 치마의 변규리 감독과 넝쿨 감독이 성소수자 부모 모임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성수수자인 부모님들이 거의 성소수자 운동의 전선에서 온갖 혐오와 폭력을 받아 안으시면서 싸우고 계시거든요. 그 분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손희정 연분홍치마의 경우 사회적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은 용산참사를 담은 <두 개의 문>(2 Doors, 2011)인데, <두 개의 문>을 다룰 때에도 우리는 페미니스트이고,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이 용산문제를 다뤘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제가 아는 가장 강한 페미니스트? 강성페미들이 모여있는 단체이기도 한데요. 이제 본격적으로 여쭈어보고 싶은 건 이런 것들입니다. 게이로 정체화를 했고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 다큐멘터리스트로 정체화를 하고 계신 거잖아요. 이 게이 정체성과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어떻게 만나고, 작업할 때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가 궁금하거든요.

이혁상 저는 사실 아침에 상영했던 <폴리티컬 애니멀즈>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물론 왜 유색인종 레즈비언들은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하지만 아 남자들이 없어서 좋다,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어쨌든 다큐에서 여성운동과 퀴어운동이 어떻게 결합하고 더 에너지를 크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저에게 있어서는 약간 그랬던 경험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스스로 게이 정체성을 오랫동안 혼란스러워 하면서 사실 제가 좀 다르다는 것은 중학생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스스로 ‘게이’라고 정체화 한 것은 한 10여년 지난 대학교 2,3학년때 였던 것 같아요. 그 사이에 이제 어떤 나의 특별함과 취향이나 선호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들이 당시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왜냐면 한국에서 동성애라는 담론, 섹슈얼리티 ,성정치 이런 것들이 그 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제가 제 다름을 좀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는 여성주의 밖에 없었어요. 저에게는. 모든 게이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요.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90년대 초반에 있었던 페미니즘 운동이나 이런 것들의 수혜자인 게이로써 제 스스로를 게이로써 정체화 하는것에 큰 영향을 받았었거든요. 내가 가지고 있는 차이가 당연히 차별받아서는 안되는 것이고,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다른 차이와 차별에 대해 민감한 감수성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틀거리였던 기억이 있어요. 그 공부를 하면서 제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는 경험을 얻었었는데, 그게 꽤나 강렬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제 쭉 지나오면서 공부를 더 하고, 페미니즘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끼리 또 세미나를 같이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지금의 연분홍 치마 사람들이었구요. 저에게는 그런 개인적인 정체화의 흐름과 페미니즘이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 스스로를 생물학적으론 남성이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많이 아시겠지만, 남성이 페니미스트라고 할 때 사실 설마, 니가? 하는 의심의 눈도 있고 저정도 라도 자각한게 어디냐, 하면서 칭찬해 주시는 경우도 많았어요. 저는 그런것들이 오히려 불편하기도 했었는데. 저는 왜냐면 게이로써 저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페미니즘을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좀 여러 가지 고민들이 있었지만 아무튼 그런 과정속에서 의도치 않게 여러 활동가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오히려 입을 잠그고 있죠. 왜냐면 사실 워낙에 페미니즘이 이 현재의 상황속에서 페미니스트라는 것도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정의되고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또 엄격해진 조건들 속에서 생물학적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좀 어떤 두려움이 없잖은데. 어떤 면에서는 편하게 이야기하자면. 남성들이 자신의 기득권의 위치를 스스로 조용히 인식하고, 나의 행동들이 얼마나 남성중심적인가 하면서 입을 다무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그나마 우리 한국남성에게 바랄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요즘은 많이 들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발언이나 의견 발표는 제 옆에 있는 김이란 감독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많구요. 그렇습니다.

손희정 들으면서 저한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개의 문>이 개봉을 했을 때 페미니스트 상영회 같은걸 조직을 했었어요. 왜냐면 당시 두 감독이 <두 개의 문>이 용산참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고, 사실 그냥 봤을때는 젠더중립적인 작업처럼 보여요. 그러니까 여성 남성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관점과 무관해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김일란 감독이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이건 페미니스트 감독으로서 만든 작업이고 페미니즘적인 관점이 들어가 있는 작업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많은 관객들이 이게 도대체 페미니즘과 무슨 상관이냐, 하고 질문을 했을 때 김일란 감독이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이 작업을 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가 용산 참사 재판 과정에 들어갔는데, 과정에서 거기 투입되었었던 전투 경찰들의 증언 같은 것을 들을 때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전투경찰은 바로 가해자로 연결이 되고, 이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없었는데, 사실 김일란 감독은 만약에 우리가 이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무슨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고 사건의 진실에 어떻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했을 때, 우리에게 익숙한 관점과 익숙한 시선에서 어떤 상황을 보는 게 아니라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고 관점을 바꿔서 바라보려고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정확하게 자신이 페미니스트로써 살아왔기에 되어있던 훈련들 안에서, 덕분에 라고 이야기를 했었던 거죠.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크게 남아있어서, 우리가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성적 차이를 구성하고 그 차이를 둘러싸고 형성되어 있는 비정의와 싸우는 것, 이 페미니즘이라고 이야기를 할 때에도 사실은 성적 차이라고 하는 것을 넘어서는 다양한 차이들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계기였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이 페미니즘이어야 하는 이유는, 성적 차이가 구성되는 방식, 그게 차별로 치환되는 방식이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차이를 만들고 차별하는 그 방식이 되게 원형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이(성적) 차별과 싸우는 것이 다른 차별과 싸우는 것에 중요한 모델이 된다는 문제의식을 같이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페미니즘이 그런 의미에서 보편적인 운동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컨대 <종로의 기적>은 종로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게이 커뮤니티를 그리고 계시고, ‘친구사이’라고 하는 게이 인권 단체 운동을 주목하시는 거잖아요. 그 작업을 하실 때, 페미니스트 관점이라는 것이 혹시..(도움이 되었는지)? 누가 누구의 전범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같이 맞물리면서 확장되어가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듣고 싶은 거거든요.

이혁상 <종로의 기적>을 만들게 된 것은 사실 저의 자발적인 기획이라기보다는 조직의 부름을 받고서 ‘친구사이’와 일종의 연대성 사업으로 진행하게 되었었는데요. 이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종로의 기적> 시작한 게 한 10년전쯤 이니까, 굉장히 도전을 받는 문제인 것 같아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게이 커뮤니티가 기본적으로 어느정도는 여성성에 대한 혐오와 일종의 공포를 전제하고 있는 커뮤니티이고, 그런 사람들이 많고 자신의 소수자라는-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어쩌면 특권적인 위치라고 할 수 도 있을 위치를 이용해서 여성혐오를 전시하는 일도 많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종로의 기적>은 다양한 게이들의 삶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그 안에서 보여지는 여러 가지 여성성의 전유. 이런 것들에 대해서 초반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자면 친구사이가 매년마다 여우주연상 시상식을 하거든요. 지금은 바뀌었지만 여우주연상은 그 해 가장 열심히 활동한 친구사이의 게이 회원에게 주는 상인데요. 그런데 시상할 때 정말 미인대회처럼 망토와 왕관과 여왕봉을 전년도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나와서 수여하는거죠. 행진도 하고. 사실 저는 그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생각이 많았어요. 이것이 어떻게 보면 정말 희화화일 수도 있고, 이것이 게이 문화에서의 여성성의 전유로써 자신의 억눌렸던 여성성에 대한 긍정으로도 표현될 수 있겠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이 왔다갔다 했었죠. 그런데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게이로써 또 페미니스트로써 생각했단 것은 저도 역시나 어렸을 때 ‘여자 같다’는 놀림을 굉장히 많이 받았었고, 늘 저의 유년기의 기억들은 제가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부정하고, 폭력적인 상황까지도 맞게 되는 일들이 많았는데, 게이 커뮤니티에 오니까 대부분이 저랑 비슷한 경험들을 겪었더라구요. 그러니까 이 여성성이라는 것이 아픈 기억을 주기도 했지만 저희에게는-이것도 일종의 수행이겠지만-게이들의 본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일단은 영화속에 넣자는 쪽으로 결정을 하게 됐었어요.

우리들이 흔히 게이들의 여성성이라는 것이 왜 있으면 안 되는가? 물론 남성성, 여성성 이런 구분에 대한 논쟁은 잠시 놓고서, 사실 게이들이 스스로가 여성스러움을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것은 ‘여성성이 안 좋다’는 전제를 하고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그건 어쩌면 반대로 게이커뮤니티 내에서 레즈비언 부치(butch)들은 굉장히 남성적이고 과격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놀리는 것처럼, 여성 내부의 남성성에 대한 옳지 않음에 대한 전제이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관객에게 판단을 맡기자 하는 생각에서 그 부분(여우주연상 수상)을 넣고 진행을 했었거든요. 게이들이 게이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자기혐오가 굉장히 강하잖아요. 게이들의 스테레오타입은 말씀드린 거지만 남자답지 못하다, 여성스럽다는 것도 분명히 포함되고. 많은 영화 속에서 재현되는 어떤 게이의 이미지 중 하나는 역시나 여성스러운 그런 모습들.. 어떻게 보면 과장된 것처럼 보이는 여성적 제스츄어들도 있고요. 우리가 그런 게이 스테레오타입의 재현을 보고 늘 이야기해요. 왜 남자다운 게이들도 있는데 저런 것만 재현하느냐. 저는 그런 이야기가 그 안에 여성혐오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이들은 저런 스테레오 타입을 가지면 안되나? 실제로 그런 게이들이 많은 게 사실인데, 왜 저런 스테레오 타입에 우리는 부끄러워 하고, 홍석천이 커밍아웃 하면 아니 왜 장동건 같은 애가 아니라 홍석천이 게이였던 거야 하고, 좀 더 잘생기고 남자다운 그런 캐릭터가 커밍아웃 했어야지(그래야 편견이 깨지지)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그런 것들에 대한 제 나름의 소심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쩌면 여우주연상이 벌어지고 있던 현장이 볼(?) 같은 그런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 고민들은 지금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게이커뮤니티 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는 ‘일틱하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일반인 스럽다, 헤태로(?) 즉, 남자 같다는 뜻이에요. 자신의 게이다움이 드러나는 남자들과 같이 연애를 하거나 다니기 싫다는 거죠. 그런 게이다움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은 바로 남자답지 못한 모습인거고요. 아마 이 이야기는 게이 역사에서도 계속 논쟁이 되어갈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나 이 여혐의 시대에 그런 것에 반응하는 게이들의 모습을 볼 때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저는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손희정 들어오기 전에 둘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떤 입장차이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 질문을 이제 드릴건데, 게이 내부의 여성혐오를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당연히 질문하게 되는데, 페미니즘 내부의 게이나 트랜스젠더 혐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하죠. 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입장을 계속 밝혀왔기 때문에 이건 한국 남성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게이라는 어떤 특수성을 가지고 와서 여혐을 하기 때문에 나쁘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똥꼬충이라는 표현을 쓰는 방식으로 혐오의 언어를 생산하는 것은, 저는 정확하게 소수자에 대한 혐오라고 생각하는 입장으로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데요, 이혁상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혁상 일단 페미니스트들의 게이혐오, 트랜스젠더 혐오에 대해서, TRF라고 하나요? 그런 ‘자궁이 없으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의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일단은. 오히려 저는 게이를 ‘똥꼬충’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사실 게이 스스로도 그렇게 이야기들을 하니까, 물론 기분 나쁘지만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제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단순히 그들이 그 전에 성별이 생물학적인 남성이었다는 이유로, 혹은 여성이었다가 남성으로 트랜스한 분들에겐 더욱 가혹한 어떤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겠죠. 저는 그런 제 트랜스젠더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그건 너무 이해하기 힘든 태도였던 것 같아요. TRF라고 이야기되는 그런 페미니즘은.. 제가 생각하고 알고 있었던, 게이라는 나를 거둬준 페미니즘은 제가 자궁이 있건 없건 그 차이, 기존의 남성성과는 다른 특별함을 모두 포용하고 존중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자궁의 유무로 페미니스트다 아니다를 나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남성중심 사회와 여성혐오의 시대 속에서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렇게까지 할까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페미니즘의 가치를 다양성의 존중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면은, 그런 페미니즘이라면 저는 좀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게이들은 이제 똥꼬충이나 이런 혐오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는, 아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농담처럼 ‘게이들은 그래도 싸.’ 하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런 맥락은 계속 말씀 드렸던 게이 내부에서의 여성 혐오나 특히나 타인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게이들의 모습을 저는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뭐랄까 그런 모습에 지친게 좀 있어요. 그리고 저는 게이커뮤니티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몸 담았던게 이제 20여년이 넘었으니까, 커뮤니티의 흐름을 쭉 봐왔다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데이팅 어플이 등장하면서부터 커뮤니티가 파편화되기 시작한건 몇 년 되었고, 굉장히 개인 중심의 문화들이 너무나도 일반화 됐고, 오히려 그런 가시화 운동, 인권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더더욱 못느끼게 되는 상황이 온 것 같고요. 기본적으로 게이 커뮤니티가 이상하게 굉장히 경쟁적이고 차별적으로 변해왔다는 생각이 좀 있어요. 그건 사실, 저는 이 <파리 이즈 버닝>을 다시 보면서도 느꼈던 부분인데 사실 저건(‘볼’문화) 엄청난 ‘계급’이잖아요. 그것이 자본이 아니라 미모나, 리얼리즘이라고 표현되는 진짜다움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 등의 재능으로 굉장히 계급화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걸 통해서 경쟁적인 상황들이 만들어지고, ‘리딩’ 이나 ‘쉐이드’라고 이야기되는 드랙퀸들의 모습을 저는 사실 무서워하거든요. 그런 말싸움이나 풍자를 보면..

손희정 어떤 힙합문화에 나오는 그런 말싸움 같은…

이혁상 네. 그런걸 너무 못 참는데 누군가는 저런 것들을 게이가 살아남기 위한 어떤 생존의 방법이나, 전략이다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파리 이즈 버닝>과 같이 의미화하는데.. 저는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개인적으로 받아오기도 했고 저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사실 저렇게 뭔가 ‘리딩’이나 ‘쉐이드’를 어떤 게이문화나 드랙퀸문화 나름의 생존 전략이자, 우리들의 해소의 방법이다, 또 루폴의 ‘드랙 레이스’도 저걸 아예 한 코너로 만들기도 했거든요.

손희정 쉽게 말해서 힙합배틀에서 막 욕하다가 자 이제 칭찬시간, 하면 또 막 칭찬하는…

이혁상 네. 그런 느낌이죠. ‘리딩’과 ‘쉐이드’를 날리다가 또 막 우리는 시스터다 하면서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런게 과연 사랑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게이문화 내부의 경쟁적인, 외모나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경쟁하는 구도, 그게 어떻게 보면 우리가 결국 수컷이기 때문에 그런건가 하는 생각도 해보구요. 그런 어떤 경쟁과 차별이 게이 커뮤니티에는 더 더욱 만연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물론 페미니스트의 입에서 똥꼬충이라는 말이 나온것에 대해서는 일베가 같은 말을 하는것과는 다른 의미로 저에겐 다가오지만, 한편으로는 그럴만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우리가 과연 똥꼬충이란 말을 듣고서 화를 내는 것이 게이들로써 온당할까? 게이 내부의 여러 가지 차별.. 특히나 요즘 같은 경우에는 다문화가정이라고 하죠, 그 자녀들 중에서 게이들이 종로나 이런쪽에 나타나고 있는데요. 하지만 당연히 차별받죠. 왜 여기와서 놀지? 이런 움직임도 있고…

손희정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요. 소수자성이라고 하는 것이 어쨌거나 정치적인 올바름이나 추구해야 할 당위와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어딜가나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 데이팅 어플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롭거든요. 테크놀로지 덕분에 안전하고 쉽게 누군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환경이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변화를 견인할 필요가 없어지는 상황, 그래서 파편화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파편화되는 삶의 조건들을 만들어 낸 것과 마찬가지로 사실은 게이커뮤니티나 페미니스트 커뮤니티나, 여러 소수자들의 커뮤니티가 전반적으로 사실은 연대나 단합, 공동체를 상상하는 방식이기 보다는 나의 안전함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 건 어떤 커뮤니티만의 특징 이라기보다는 지금 2010년대 신자유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운동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려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랬을 때 <파리 이즈 버닝>을 보면 사실 저는.. 안 좋은 지점들을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사실 한편으로는 이 ‘볼’ 문화라는 게 살아있던 시절, 90년대 초중반 까지이고 나중에는 지금에 와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흡수되어버린 거잖아요. 그런데 예전에 그 안에는 커뮤니티가 있었다는 거에요. 그런 생각은 들거든요. 그 차이 같은 것들을 좀 보면서 파편화된 관계들을 어떻게 정치 세력화 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좀 있는 것 같거든요.

이혁상 저는 게이커뮤니티 내에서의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사실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대한 동경이나 기대가 커지는 경향들이 있어요. (웃음) 왜냐하면 사실 이번에 손희정 평론가님께서 선택하신 세편의 영화 중에 앞서 보셨던 <폴리티컬 애니멀즈>와 <아웃-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저는 인상적이었던 게 서로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장면들이 있는데, 저는 그 장면이 <폴리티컬 애니멀즈>에서는 약간 촛불도 켜놓고 뽀샤시한 화면에서 약간 오글거리기도 하고.. 했는데. 저는 어떤 그런 대화의 정치,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레즈비언들의 그런 문화나 서로간의 상호작용이 되게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손희정 방금 감독님 이야기 들으면서 뜨끔한게, 레즈비언 작품들 고를때는 국회의원, 세대간의 연대와 돌봄 이런것들을 골라놓고, 딱 게이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게이컬쳐를 보여줄 때는 막 경쟁적인 ‘볼’…(웃음) 한국에서도 그런 식의 아름다운 게이커뮤니티를 보여주는 영화가 개봉을 해서 인기를 끌었었어요. <위켄즈> 있잖아요. <종로의 기적>도 사실 그랬고. 그 다큐멘터리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꼭 레즈비언 문화라서 그런 것일까요?

이혁상 아마도 그건 제가, 여성주의라고 하는 것이 제 비빌 언덕이라고 생각을 해서 그런걸 수도 있어요. 여성운동의 연장선상에서의 레즈비언들의 활동에 대한 동경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어디선가 나왔던 대사인데, 어떤 시스템이나 규칙을 만든 것에 대한 농담이었는데 ‘그거 누가 만들었어?’ ‘레즈비언들이 만들었어.’ ‘어 그럼 제대로 작동할거야.’ 이런 대사가 나오거든요. (웃음) 저는 그말이 너무 재미있기도 하고 뭐랄까 정말 맞는 말이다 싶은…

손희정 시스젠더 남성들의 레즈비언쉽에 대한 환타지가 <아가씨>(The Handmaiden, 2016)라는 작품을 경유해서 상업영화로 진출했죠. 레즈비언들의 사랑은 너무 평등할거라는 환상이.. 심지어 섹스도 이렇게 데칼코마니처럼 하는…(웃음)

이혁상 아가씨까지 가지 않더라도, <폴리티컬 애니멀즈>에 나오는 그 언니들만으로도 너무 가서 막 기대고 싶은 생각이 들고요.. 확실히 투쟁의 경험이나 싸움의 전략에 있어서는 레즈비언 활동가들의 경험이나 전투력이 훨씬 뛰어난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이건 저희 용산 참사 다큐멘터리 2개 <두 개의 문> 하고 <공동정범>을 만들 때에도 내부적으로 몰래 몰래 이야기를 한 것이기도 한데, 사실 뭐랄까 용산참사 진상규명 운동을 유가족 어머님들이 굉장히 오랫동안 이끌어오신 것에 대해서, 만일 유가족들이 아버지였으면 8년 동안 이렇게 해온걸 그분들이 해올 수 있었을까? 그런 이야기들을 저희들끼리 한 적이 있어요. 그에 관련한 연구나 보도자료도 뉴스화 되기는 했지만 배우자 중에 남편이 아팠을 때와 부인이 아팠을 때에 서로 간호하는 기간과 정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잖아요. 남편이 중간에 도망을 가거나 바람을 펴서 버려두고 가는 비율이 더 많았다는 그런 이야기도 하는데… 사실 이 투쟁의 현장에서 물론 어떤 투쟁 다큐 속에서 할매들이나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더 정형화되는가에 대한 문제도 생각을 해봐야 하긴 하겠지만, 그런 다큐멘터리들 속에서도 여성 투쟁가들의 모습이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저는 또 한번 이 한국남자들의 유약함 등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거죠.

손희정 사실은 그런 고민이 들기도 하는데요. 성주의 싸드배치 반대투쟁이라든지 밀양의 송전탑 반대 투쟁같은 곳에서 여성들, 특히나 할머니들-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서 꼭 ‘할머니’들이라고 부르는데-할머니들이 어떻게 싸우는가를 보면 정말로 배려하고 배푸는 마음으로 투쟁이 유지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저는 이건 늘 생각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이유 그 자체 때문에 아니라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계속 경험할 수 밖에 없었던 주변적 위치가 투쟁을 지속하게 하는 힘으로 연결되게 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구요. 그랬을 때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레즈비언 인권운동 하시는 분 중에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하는 데에 매우 오래 걸리거나 원치 않는 분들도 계시고, 혹시 그런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페미니스트 모먼트』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사실은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도 아주 평화롭게 화해할 수 있는 정체성이 아니기 때문에 게이와 페미니스트도 되게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어쨌든 최초에 제가 언급을 했던 것처럼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시대가 ‘나중에’와 ‘반대합니다’로 시작이 되었는데요. 게이 인권 활동가로서의 정체성도 가지고 계신 것이고, 성소수자 당사자의 정체성 안에서도 이 상황을 어떻게 경험하셨고 어떤 대응들을 해 오셨는지 듣고싶어요.

이혁상 당시에 방송이 되는 걸 우연히 봤어요. 홍준표 대표가 했던 질문에 당시의 문 후보가 말려들었죠. “저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라는 그 표현이 제 귀에 들렸던 순간 일단 응?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을까 싶었어요. 이후에 활동가들이 치밀한 준비 끝에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앞에서 기습 시위를 했었는데요. 시위 이후의 반응들, 문대통령 지지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활동가들이 굉장히 낙담했었고요. 그게 저희들에게 있어서는 이명박근혜 시대의 상황보다 어쩌면 더 가혹해질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의를 다졌던 때였던 것 같아요. 이제는 대법관 후보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동성애를 가지고 찬반의 입장을 묻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물론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그만큼 우리가 가시화되었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떤 반작용이고, 이것이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더 나은 세상에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잘 모르겠어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 왜냐하면 우리들은 너무 힘이 없거든요. 성소수자 내부에서도 문재인들 지지하는 측은 그런 행동들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했고요. 실제로 얼마 전에 모 일간지에서-경향신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이 문제에 대해서 기사를 냈더라고요. 동성애 찬반이 대법관 선출에 있어서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시점이 되었고, 왜 보수세력들은 동성애를 이용하는가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는데, 마무리 되는 한 교수님의 인터뷰에서 “그런 ‘부차적인’ 문제보다는 당면한 개혁과 과제들이 시급…” 이런 이야기가..

손희정 해일 몰려오는데 무지개 깃발 줍고 있느냐…

이혁상 여전히 그런 기사에도 그런 발언이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거죠. 어떻게 결론이 나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싸워야죠.

손희정 저한테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그 장면에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뭐였냐면,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홍준표가 던진걸 문재인 대통령이 말려들었다기 보다는, 사실 안 말려들었던 문제라고요. 그러니까 홍준표는 반대합니까? 했을 때 아니요, 하기를 기대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진짜 반대합니까?’ 세 번이나 물어보거든요. 만약 반대 안한다고 이야기하면 그때부터 보수표는 떨어지게 되어있으니까… 그런데 그 전략이 실패하고 나서 홍준표 캠프에서 내세웠던게 ‘동성애에 반대하는 확실한 후보 홍준표’였다는게 저한텐 충격적이었어요.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우리가 어떤 미래로 나아갈 거냐가 공약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를 차별할 것인가가 공략이라는 게. 그게 너무나 잘 먹혔고 결과적으로 홍준표가 20몇 퍼센트나 표를 받게 되었던 거죠.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인 것 같은데요. 질문 있으신가요?


관객 현 정부의 어떤 보수성에 대해서 저도 많이 의아했어요. 장관의 성비를 어떻게 정하겠다는 행정적인 부분에서는 바꾸려는 게 많이 있지만 그래도 페미니스트 정부라고 할 수가 있을지 의견 여쭙고 싶습니다.

손희정 탁현민… 너무 큰 문제인데요 사실은. 제가 젠더폭력 방지법에 대한 이야기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을 했는데. 젠더폭력 방지법은 젠더폭력이라는 미묘한 조어때문에도 난관에 부딪히긴 했지만 이것을 예컨대 여성폭력 방지법이나 성폭력 방지법 이라고 이야기 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효과를 거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있거든요. 아주 쉬운 예로 탁현민이 중학교때 어떻게 같은 반 학생을 윤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썼고, 이게 문제가 되니까 실제로 한게 아니라 픽션이야 하고 이야기를 했지만 실제로 10대 남성들이 저지르는 성폭력의 많은 부분이 윤간이나 집단 강간의 형태로 벌어지고, 이것은 실은 탁현민이 사람들에게 팔려고 했던 그 판타지와 픽션에 기반한 폭력인 거잖아요. 10대 남성들에게 성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도전이고 모험이고, 이뤄내야지 드디어 남자가 될 수 있는 관문일 때에 여성의 성이란 늘 트로피가 되어버리고 정복해야 할 것이 되니까. 여성은 그렇게 전인적인 인간이라기보다 성기화 되고. 그 판타지 때문에 10대 남성의 성범죄들이 일어나고 이게 젠더폭력 방지법이란게 만들어 지는데 여러 가지… 남성들의 몰카나 데이트 폭력의 문제라든지 이런 식의 폭력으로도 연결되어있는 부분이 있는데. 탁현민을 해결하지 않고 이 법만 만든다라고 한다면 이런 범죄를 가능하는 ‘문화’는 손대지 않겠다는 강력한 싸인 인거죠. 그럴 수 있다, 반성하지 않았느냐, 혹은 탁현민의 말랑말랑한 뇌를 칭찬하면서 탁현민이 더 좋은 일들을 할 것이다, 그런데 저의 고민은 뭐가 있냐면 그 ‘말랑말랑함’ 이라는 표현인데요. 어떤 리버럴한 남성들이 유연한 사고방식과 태도로 창조적인 어떤 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때에, 그 유연함이 표현되는 많은 부분이 성적 자유로움 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 탁현민 시대에 마광수 선생이 다시 신화가 되는것에 대한 공포가 있어요. 물론 표현의 자유를 명백하게 국가에 의해 탄압받아서 고생하신 것은 맞고, 그것 때문에 교수 사회 안에서 차별받고 배척당한 경험들도 분명히 있지만. 마광수 선생의 그 유연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건 너무 여성혐오적이고, 이 여성혐오적이라는 게 자유로운 성이라는 것과 등치되었던 맥락들이 있는 거잖아요. 저는 탁현민 사건과 마광수를 둘러싼 재평가나 이상한 열광, 같은 것들이 사실 분리가 안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야기가 좀 길어지긴 했는데요. 그래서 저는 젠더폭력 방지법은 이름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너무 중요하고 꼭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이게 단순한 엄벌주의로는 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기도 하고요. 그런 여러 맥락들 사이에서 탁현민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젠더폭력 방지법이라는 게 잘 만들어졌을 때에도 이게 실질적인(문화적인) 효력을 발휘할 때 까지 우리는 또 굉장히 지난한 싸움을 해야할거다, 하는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페미니즘은 팀플 내지는 분업이라고 하는 다른 페미니스트가 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는데, 페미니즘은 투 트랙 정도가 아니라, 원헌드레드(100) 트랙 정도로 되게 세분화 되어서 여러 차원에서 다방면으로 처리되어야 할 때에, 문재인 대통령이 어쨌든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게 된 여러 가지 맥락들이 있을텐데 이것 자체를 페미니즘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거든요. 남녀동수 내각 하겠다고 이야기했고, 위안부 문제 해결-이걸 젠더 폭력이라는 이해 안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이건 이것대로 평가를 하고 추종해가는 세력들이 있되,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욕 해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중에’ 사건 때에, 페미니즘 대통령을 선언하는 자리에 가서 활동가들이 나는 여성이고 레즈비언인데 나의 인권을 반으로 나누시겠다는 겁니까? 하는 씬을 연출하고.. 그럴 때에 문대통령 지지자들은 ‘나중에’라고 말하는 거 정치공학이고, 사회적 합의를 위해 너희가 노력을 해야지 와서 방해하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데. 저는 어떻게 생각하냐면. 거기에 가서 그런 씬을 만드는 게 바로 인권 운동하는 진영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올리기 위한 싸움인거죠. 그런 광경과 기회를 만들어줬으면, 문재인 대통령은 모르는 척 그 기회를 쓸 수도 있었다는 거예요. 변명할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안했다는 거죠. 민주정부를 만들 때에 활동가, 정치인, 평론가… 들이 할 수 있는 분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활동가는 슬로건 적힌 종이 펼치고, 정치인은 받아 안고, 평론가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포비아들이 설치면 누군가는 키보드 배틀을 뜨고… 이런 게 펼쳐져야 되는데 그 장을 받아 안지 못했다는 건 민주 대통령으로 자격이 없었다, 혹은 무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페미니즘 정부라고 평가는 하고 싶고요. 남녀동수 내각만 해도 놀라운 일일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외에 펼쳐지는 퇴행들 있잖아요. 김정숙 여사가 분홍색 홈드레스를 입고 잘 다녀오세요 하고-뭐 그게 옆에 있는 비서관에게 인사한거라고 해석되기도 하지만-그런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공고화하는, 퇴행적 이미지가 있다고 보거든요. 그렇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친 여자가 가족도 없이 혼자서, 거울방을 만들어서 혼밥을 한다… 그런 싱글 여성이라고 하는 정체성이 마녀사냥 당하게 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고요. 이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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