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현장기록]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독일의 평화정치

2017.09.26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독일의 평화정치

  • 일시 : 9월 24일(일) 14:30 <시간이 알려주는 것들> 상영후
  • 장소 : 메가박스 파주출판도시 1관
  • 게스트 : 이동기(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1. 1989/90년 평화혁명과 독일통일

독일현대사회를 공부하는 강릉원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동기라고 합니다. 영화 평론가나 전문가가 아닌 역사가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독일통일, 동독인의 삶 현재 동독의 상황, 그리고 특히 3명의 주인공 ‘스벤’, ‘이사벨’, ‘옌’의 삶이 가지고 있는 맥락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동독지역에서 8년 반을 살았습니다. 독일에 보통 유학을 가면 서독지역으로 많이 가는데, 저는 통일문제를 공부하기 위해서 ‘예나’라는 동독 도시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따라서 비교적 동독의 상황, 독일의 통일에 대해서 맥락이나 상황에 대해 전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강연을 맡게 되었습니다.

먼저, 영화에서 1989년도 11-12월 ‘라이프치히’의 상황이 잠시 나왔습니다. 민주혁명이 발생했죠. 지난해 겨울에 우리도 경험했던 촛불시위의 원형이 이때 나온 것이죠. 촛불을 통해서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혁명이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동독 주민들이 생각했던 촛불혁명, 민주혁명 또는 평화혁명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은 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영화 전체에서도 중요한 포인트 같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영화에서도 두 세 차례 그 내용이 나왔는데, 먼저 민주주의적 덕목, 갱신된 덕목, 제대로 된 덕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독을 민주주의로 갱신하려면 통일을 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어느 정도 동독을 건설한 후에 통일문제를 상의하자는 것이 그 당시 사람들의 기대였습니다. 이것은 1989년 동유럽 전체 상황과도 연결이 되는데, 공산주의를 반대했던 그 당시 동유럽 주민들의 열망은 의회와 선거로 공산당을 대신하고, 더 많은 자유, 복리, 안전, 사회적 결속, 평화 등 상당히 복합적이고 더 많은 기대의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인민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동독 공산주의자들이 얘기하는 “Volk Volk Volk! People! People! People!”, 그 의미에 대한 혁명적인 로고였던 것입니다. 그 아래 내용은 자유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연대의 가치도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스벤이 1990년대 초의 이야기를 하거나, 이사벨이 서독 사회, 통일 이후의 사회에 대해서 굉장히 반감을 가지는 것이죠. 애초에 기대했던 자유에 기초한 인간적 연대나, 내가 다른 사람을 아무런 대가 없이 돕고 다른 사람도 아무 대가 없이 나를 돕는 그런 사회가 확산되기를 기대했는데 그것이 기대에 못 미치고 좌절하면서 생존투쟁으로 내몰리는 과정이 나왔는데요. 그래서 인민은 바로 우리라고 했던 주장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9일에 무너지게 되는데 그 후로 두 달 정도는 비교적 서독으로 빠져나가는 동독 주민들의 숫자가 줄어듭니다. 오히려 동독에서도 새로운 대안적인 민주주의로 제대로 된 동독이 건설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어 서독으로 가는 것이 잠시 줄어듭니다. 한반도로 비유하자면, 북한 체제가 붕괴되면 북한 주민들이 남한으로 급격히 많이 들어올 것이고, 그런 상황을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으나, 그 지역에서 새로운 변화가 시도가 되면 또 다른 삶의 전망을 갖게 될 것이기에 예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989년 12월에 동독을 이탈하는 주민 숫자가 격감합니다. 1990년 1월 상황이 악화되면서 동독주민들 사이에서 혁명 안의 혁명이 발생했습니다. 민주혁명 안에 민족혁명이 발생해서 통일을 원하는 소비가 높아졌습니다. 특히 헬무트 콜이나 서독 정치가들이 악용한 측면이 있는데요. 헬무트 콜은 11월, 12월 상황에서 서독이 급속한 속도로 동독을 흡수통일하면 동독 경제는 완전히 붕괴할 것이고, 경제적인 파국이 초래될 것인데, 이는 한 세대 이상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원래의 계획대로 급속한 통일을 유예하고, 8-10년 시간을 두고 동독의 공산주의 체제와 서독의 체제가 잘 융합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잘 조정해가면서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그 당시 경제인들 또한 그와 생각이 같았고, 이는 현실적인 방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헬무트 콜은 인기가 떨어져있는 상황이었고, 동독 주민들의 잘 살아보고자 하는 열망을 활용해서 선거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영화의 앞부분에서 나온 것처럼 1990년 3월 18일 동독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자유선거에서 흡수통일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 결과, 급속한 흡수통일과 일방적 체제이식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후유증이 발생했습니다. 흡수통일의 예로 ‘동독의 신호등’이 있습니다. 동독의 신호등은 빨간색엔 여자아이, 초록색엔 중절모를 쓴 남성이 그려져 있어 보다 더 친근감 있고, 면의 크기가 커서 서독의 신호등보다 동독의 신호등이 교통사고를 방지하고 교통규칙을 더 잘 지킨다는 연구가 1986년 서독의 교통사회학자들에 의해서 발표가 되었는데요. 또한 1961년도에 동독이 이 신호등을 개발한 것이기에 그대로 둘 수도 있었으나 이러한 신호등도 흡수통일에 의해 서독 신호등으로 교체됩니다. 이것은 ‘체제이식의 과도함’이며 ‘흡수통일의 일방성’이죠. 또 다른 예는, 영화에서 군대를 감축하여 스벤이 실업자가 된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동독 군대가 35만명, 서독 군대가 65만명 정도 되는데 통일 독일은 총합 45만명으로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스벤과 같은 동독의 장교들은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서독 지역엔 사관학교, 참모본부 등이 있는 반면 동독 지역엔 악의적으로 군견훈련소를 설치했습니다. 이에 동독 군인과 주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독의 장교들은 복무기간, 연금이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흡수통일과 체제이식은 전방위적이고 과도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동독주민들이 2등 시민으로서의 열패감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2008년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도 “많은 영역에서 동서독 간 기회의 평등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아마도 40년이 걸릴 것”이라고 상황을 인정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통일이 종결된 것이라 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동서독이 대등하게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예를 들어, 소득차이가 심하며, 실업률 2배가 높고, 동독출신들이 서독에서 기회를 못 잡으나 서독 출신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기본법 72조 2항 ‘대등한 생활상태의 달성’에서 그 대등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많은 영역에서 동서독 간 통일은 특정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아니며 모색 과정일 뿐입니다.

2. 오스탈기와 동독정체성

동독지역은 급속한 흡수통일의 후유증으로 급격한 사회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이에 1990년대 중반부터 동독 전역에서 Osten(동독, 동쪽)과 Nostalgie(노스탤지어)의 조어인 ‘Ostalgie(오스탈기)’, ‘동독에 대한 향수’가 발생합니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동유럽, 러시아 전체가 과거에 대한 향수가 많이 일어납니다. 동유럽 지역에서 일어난 Ostalgie는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특정한 인물, 정책, 시기 등에 대한 향수입니다. 이는 정치적 정체성이고, 끊임없이 오용되는 요소가 담겨져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보편적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특정 독재자, 정책, 시기가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화된다면 민주주의 문화를 가로막는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Ostalgie는 그렇지 않습니다. 첫 번째 Ostalgie와는 달리 동독, 동남유럽의 Ostalgie는 삶의 경험에 기초하여 이뤄집니다. 특히 동독의 Ostalgie가 특별한 이유는 사라진 국가인 ‘동독’을 대신할 수 있는 특수한 물품에 대한 긍정적 기억이 창출됩니다. 생필품, 식료품, 기호품을 통해서 잃어버린 조국을 대신하면서 삶의 연속성을 느끼게 됩니다. 서독의 제품보다 더 낫다는 생각도 하면서, 자존감을 보장하고 과거의 기억을 끌어올립니다. 영화에서 스벤이 강조했던 인간적 연대를 다시 소환하는 것입니다. 문화적 결집이기도 하고 감정적 유대를 끌어올리기도 하는 것이죠. 즉 동독의 제품을 써야 서독인들에게 양심을 팔지 않은 동독인이라는 집단적인 연대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일종의 집단적 고집이며, 서독과의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스벤과 이사벨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동서독간의 고정이미지 또한 강합니다. 이질감이 배제와 차별로 작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Ossi(오씨), Bessi(베씨)가 만들어집니다. Ossi는 집단적 속성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반면, Bessi는 개인을 봅니다. Ossi는 동서독을 막론하고 Ossi입니다. 그러나 서독에선 Bessi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서독인들이 동독에 와서 특별한 행동을 할 때에만 개인으로서 Bessi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규정은 동독 사람들에 대한 배제의 본질주의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독인들은 이 구분의 긍정적 속성을 강조하여 Ossi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끄집어 내어, 동독인들은 더 가족, 평화, 소통지향적인 것으로 자신들의 삶을 규정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에 만날 때 마다 악수를 하는 문화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한, 탈의실 구분 없이 남녀가 함께 옷을 갈아입기도 합니다. 이것은 동독에만 남아있는 문화입니다. 이에 서독인들은 경계를 강화하고, 동독 정체성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3. 통일 후 ‘이행사회’

통일 전에는 오히려 동독 정체성이 없었습니다. 반면 서독에서는 고유한 정체성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정작 하나의 민족 정체성을 원했던 동독은 초기의 실망과 좌절로 Ostalgie, 서독인과의 경계의식을 통해 동독 정체성이 강화되게 됩니다. 이런 과정들을 ‘이행사회’라고 합니다. 통일 이후 동독은 이행중인 사회라는 것입니다. 체제나 제도는 서독식으로 이식이 되었지만, 일상과 의식에 있어서는 여전히 혼재된 상황인 것이죠.

통일사회로의 ‘이행’은 동서독이 불균형하게 경험하고 있어 모순과 혼재의 양면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행의 양상은 8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언어의 변화입니다. 서독의 언어가 유입이 되니, 동독의 언어 1000개가 사라지게 됩니다. 둘째, 새로운 언론을 통해 다원주의를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서독 언론에 소외되면서 동독 언론 재생과 대항 언론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 예로 ‘슈퍼’와 ‘일루’가 있습니다. 셋째, 서독마르크가 유입되면서 소비열풍이 붑니다. 1대1 화폐로 교환을 했기 때문인데요. 교환을 통해 물질적 풍요를 얻은 동독인들의 과도한 소비는 그들을 실업자로 만들었습니다. 넷째, 노동세계의 변화입니다. 흡수통일로 동독 지역의 탈산업화가 확산되었습니다. 실업률이 30-40%가량 오르기도 했습니다. 냉혹한 경쟁 속에서 생존 투쟁을 하며 실업과 노동규율이 변화하게 됩니다. 다섯째, 동독 독재 유산의 청산입니다. 영화에서 ‘옌’의 어머니는 동독 국가안전부의 비밀요원, ‘슈타지’였습니다. 동독은 공식 슈타지 직원이 약 9만명, 비공식 직원은 약 20만명입니다. 비공식 직원은 직업은 다르나 비공식적으로 슈타지 활동을 하는 이들입니다. ‘프락치’라고도 하죠. 1953년부터 비공식 직원이 생겼는데, 이 전체 숫자를 다 합치면 650만명입니다. 당시 동독의 인구는 약 2000만명이었는데, 70-80명 중에 1명은 비공식 직원인 것입니다. 동독인들 사이에선 이웃, 동료, 친척이 프락치여서 가졌던 충격과 고통이 널려 있습니다. 여섯째, 새로운 민족감정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1990년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통한 민족적 일체감을 확인하고, 이가 극에 달하여 1990년대 동독 지역에서 극우 민족주의가 등장하게 됩니다. 일곱, 동서독인들의 자아상과 타자상이 등장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일상세계와 생활문화의 차이가 부각되어 편견과 조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덟, 영화에서 보셨듯 ‘라이프치히’,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청년 하위문화가 탄생하게 됩니다. 독자적인 문화적 공간을 찾게 됩니다. 예술가와 밴드를 중심으로 클럽 문화와 테크노 음악을 통해 자유를 만끽하는 법을 익힙니다. 영화에서처럼 빈 집에 독자적으로 해방공간을 마련해서 노는 등, 과거 동독체제와의 거리를 확인할 뿐 아니라 새로운 통일 사회 속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감정과 문화공동체를 창출하는 것이죠.

4. 동독 3세대: 이사벨, 스벤, 애나

이 세 사람의 직업적 지위나 삶의 경제적 수준 등은 다 다릅니다. 그러나 이행사회의 요소들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벤은 실업, 이사벨은 서독에 가서 성공한 케이스이나 고독한 존재, 옌은 부모의 프락치 활동에 대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동독 3세대’라고 부릅니다. 1세대, 2세대, 서독의 동년배와는 다른 독특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청소년 시절인 1990년대 민주혁명, 체제공개, 새로운 통일 독일을 맞이한 이들이 겪은 독특한 경험을 통한 집단적 정체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1990년 당시 14-15살이었다는 것은 동독 공산주의체제에서 15년, 서독 자유주의 체제에서 25년을 살았던 것입니다. 25년이 더 긴 시간이지만, 먼저 경험했던 15년의 삶이 한 번에 무너져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되는 독특한 사회, 개인의 변화와 같이 맞물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가치나 규범이 완전히 붕괴한 상태입니다. 1세대, 2세대는 새로운 삶을 개척해 볼 수 있는 조건이 없지만, 3세대들은 개척해야만 합니다. 살기 위해서 또 다른 기회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동독을 건국한 것은 1세대입니다. 모든 건국세대들은 체제에 충성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세대가 우리 국가를 건설해봤다는 기억이 강렬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과시적 성과, 국제적 위상, 정치적 안정 등이 그들을 규정합니다. 따라서 동독 1세대는 오스탈기, 동독의 충성도가 가장 높은 세대입니다. 그 다음 2세대는 베를린 장벽 붕괴시절에 전환을 경험했고, 민주혁명과 통일을 주도했으나 이후 실업자로 전락한 세대입니다. 이 부모세대는 동독체제는 거부하지만,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에도 불편한 세대입니다. 2세대는 1세대와는 달리 동독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이 적습니다. 통일 전에는 번창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통일된 이후에 이들의 경험은 크게 유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보면 30-40대 박사 과정생들 또는 동독에서 성장했던 학자들과 서독에서 동년배들끼리 만나면 동독출신들이 월등히 떨어져요. 그래서 공정한 경쟁을 해서는 동독출신들이 안정적으로 직업을 차지하지 못하여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에 2세대는 열패감을 가장 심하게 받습니다. 3세대의 시선에서 보면 조부모들은 옛날 동독 건국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현 세대에 화해할 기미가 없고, 부모세대들은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청소년들(3세대)은 그들의 부모 역할을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스벤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족, 할아버지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일찍부터 가족, 가장의 역할을 해요. 집에 가면 학교에서 배운 것과 부모들의 이야기와 다른데, 부모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는 못하고 동독에 대한 향수만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1세대 2세대를 껴안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직업적인 전망도 찾아야 되는데 말이죠. 나이로 보면 1975-1985년생들의 청소년기에 결정되었던 경험과 가정 내에서의 역할은 다른 세대들과 다르다는 양상을 설명해드렸습니다.

사회과학자들이 이들을 동독 3세대라고 보았을 뿐만 아니라, 별도로 동독의 3세대는 자신들의삶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서로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2009-2010년도 독일통일 20주년을 맞이해 앞선 세대의 남성들이나 서독 출신들이 주도하는 ‘통일담론’에서 자시들의 경험이 빠진 상태에서 상투적인 논의나 편견만이 유포되는 것을 비판하며 동독 청소년으로서 ‘전환’을 경험했던 자신들(240만 명)의 삶에 목소리를 부여하자며 시민단체를 만들었습니다. ‘3세대 동독 Dirtte Generation Ostdeutschland’를 발간하였고, 버스 투어와 각종 소모임 행사 및 토론회를 주도했습니다. 이 단체에는 동독 거주 ‘3세대’만이 아니라 서독 지역 거주 동독 출신들도 참여했고요. 이것을 통해서 체제 전환을 겪는 모든 유럽인들에게 자신들이 경험했던 역사의 무게를 나눌 수 있는 공론장에 직접 뛰어들어 변화를 자극하는 것이죠.

일상세계, 경험문화, 기억문화(집단적 기억)에 있어서 독일 통일은 다양한 모순적인 요소들을 통해서 계속 논의를 합니다. 사실 독일 통일의 주역은 동독인들인데 통일 논의에 부각되지 못하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 실제 통일이라는 것은 체제의 이식뿐만이 아니라 통일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이 그 통일을 어떻게 자기화하고 해석하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아직 진행중인 것이죠. 왜냐하면 전환과 통일을 가장 강렬히 경험했던 3세대가 아직 자기 삶을 진행하는데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통일은 ‘진행’이자 ‘모색’이자, ‘과정’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5. 관객 Q&A

관객 1 동독의 군인들이 많이 배제가 되었고, 실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독일에서도 의원, 정부가 있을 것인데 동독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정치적 힘을 발휘를 못했나요? 예를 들자면, 탈산업화가 되었다면 충분히 동독에 있는 사람들 80%를 취업을 시킨다던지 충분히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 왜 못했는지 궁금합니다.

이동기 오스탈기나 동독 정체성은 정치적 정체성으로 직접 진화하거나 또는 특정 정치 정당의 귀속 또는 지지로 귀결되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Ostalgie를 공유해도, 이는 정치이야기가 아니거든요? 경상도, 전라도, 서울 사람처럼 출신으로서의 자아의식/경계의식입니다. 이는 사회통합을 방해하는 요소는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악용하고 오용할 수 있는 요지는 있죠. 현재 좌파정당인 ‘PDS’을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좌파 정당은 과거 동독 공산당의 후신정당이기 때문이죠. 정치적으로 분산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죠. 그러나 극우정치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정 정당에게 책임을 묻기 애매한 상황입니다. 주 정부나 주 의회는 초기에는 보수정당이 집권을 했으나, 지금은 일부 지역 같은 경우에는 좌파당이 주정부를 장악하고 있단 말이에요. 주정부에서 좌파정당이 20-25% 정도가 되고 사민당은 서독정당이기 때문에 굉장히 낮습니다. 다른 서독 주에서는 사민당이 대략 25-34% 정도의 지지율을 얻는데, 동독에서는 15-18% 밖에 안됩니다. 녹색당은 서독에서 15%, 남쪽 일부 지역에서는 6년째 34-36%로 1당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독지역에서는 녹색당이 서독정당이기 때문에 5% 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동독정당으로서 성격을 갖고 있는 좌파정당이 1당아니면 2당이고, 그런 측면에서 동독주민들에 대한 요구가 반영이 된다는 것이죠. 그런 변화가 주민들에게 정치적으로 반응되기 시작하는 것은 2005년, 최근이에요. 이전에는 압도적으로 서독중심의 정치가 이뤄졌죠. 앙겔라 메르켈이 동독출신, 여성 총리니까 동독출신자들이 많이 중앙정치에 기여했다는 것은 착시입니다. 지금도 동독지역의 많은 정치가들은 특히 사민당, 보수정당의 정치가들은 다 서독 출신들이다. 익히 언론을 통해 들어서 많이 아시겠지만 동독에서 네오나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네오나치들의 중심 지도자들은 전부 서독인들입니다. 영화에서 스벤도 좌파에서 극우정당 지지자가 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양상입니다.

관객 2 저는 직업상 탈북자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연결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남한에서 탈북자들은 암묵적으로 북한의 것을 지우기를 강요받거나 스스로 그렇게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아직은 통일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통일이 되었을 때 그들이 북한의 것을 지키려고 할지, 아니면 보기의 사례처럼 행동할지요? 현 남북한 상태 또는 남한 내의 탈북자에 대해서 유사점이나 차이점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동기 저도 평화통일 연구소에서 탈북자들을 접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말하기 조심스럽긴 해요. 제가 경험한 탈북자들은 김일성에 대해 쉽사리 비판하지 않고 김정일에 대해서는 비판을 합니다. 또 북한 사람들의 장점을(정이 많다/ 인간적 연대/ 사회적 결속)이야기합니다. 북한에 있을 적엔 반대했을 수 있는데 새로운 이질자들을 만나면서 자기 삶이 근본부터 다 부정되면, 그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면 그것이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그것이 안되니까 자기 자신의 삶을 존중 받지 못하게 되면 계속 스스로 경계를 하는 것이지요. 자존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집단적인 색깔을 보여야만 생존의 기회가 생길 수 있는 것이고, Ostalgie를 보면 동독 출신자들이 베를린 장벽 붕괴 전에 서독으로 많이 넘어갔는데 그때도 유사한 갈등은 있습니다. 그때 동독주민들의 상당수가 동독의 신호등이 좋았다는 등의 얘기는 안 하거든요. 그런데 뒤늦게 통일 이후에 집단적 배제를 경험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가치고 규범인 것입니다. 혼자서 갑자기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하는 것이죠. 본인들끼리 나누고, 고유한 방식으로 정치화한다고 할까요? 즉,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이 다른 삶과 부딪히면서, 이전엔 큰 의미가 없던 기억들이 발생하는 양상이 중요하기에 탈북자들에게서 이를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집단적으로 공유되면서 만들어지는 공유과정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 3 동독 사람들은 동독 사람들끼리만 결혼하나요? 영화에서 보니까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에 4세대는 어떻게 탄생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동기 동독은 현재 성비가 맞지 않습니다. 동독은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촬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독출신 여성들은 서독남자와 결혼하거나 서독에서 성공하는 케이스가 꽤 돼요. 동독의 남자들은 스벤처럼 대부분 실패하고 좌절하고 돌아와요. 동독남자는 동독여자랑 결혼하는 비율이 많다고 보시면 되고, 서독여자는 동독 남자들뿐만 아니라 서독남자들이나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은 꼭 굳이 동독 출신자들끼리 하지는 않으나 남녀의 차이는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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