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는 목소리 : 청소년 다큐멘터리의 힘

2017.09.19

고백하는 목소리 : 청소년 다큐멘터리의 힘

한동혁 시민에디터

 

공통된 범주를 가지고 있는 영화들을 한데 모아 어떤 경향을 파악하려 시도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종종 위험하기도 한 일이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고, 쓰는 이의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종종 배제되는 작품들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부족함을 안고 있다고 해도, 시도 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하며,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시대가 지금 보다 조금이나마 더 나아지는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며칠에 걸쳐 청소년 감독들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한 호흡으로 보았다. 대부분이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역대 청소년 경쟁작과 청소년다큐워크숍 수료작들이었지만, 이 영화들이 각종 청소년 영화제와 여성영화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등으로 뻗어나가 상영되는 지금의 현실을 생각했을 때, 적어도 2016년 이후 제작된 청소년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다큐멘터리를 관심 갖고 보기 시작한 2011년 이후 매년 꾸준히 영화제 및 상영회를 통해 청소년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개인적으론 4년간 양산전국청소년영상제 예선심사를 하면서 먼저 만났던 작품들도 있다. 두려운 시도이지만,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일련의 작품들을 떠올리며 청소년 다큐멘터리가 내게 남긴 인상들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청소년다큐제작워크숍 7기

발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사실. 9할 이상의 감독들이 나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대부분 화자는 감독 스스로가 담당한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감독들은 ‘나는 누구다’로 시작하는 목소리를 관객에게 들려주며, 영화를 만들고 있는 주체인 자신을 소개한다. 이 형식은 한국 독립다큐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상계동 올림픽>(1988, 김동원) 이후 기성 다큐멘터리 씬에서도 많은 감독들이 지금까지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론이지만, 그렇다고 감독 외의 인물들의 목소리가 나레이션으로 나오는 작품들, 혹은 일정한 거리감을 설정한 뒤 나레이션 없이 진행되는 작품들과 비교해서 더 많이 사용되는 형식은 아니다. 오히려 사적 다큐멘터리의 영역 밖에선 오히려 점점 그 사용이 희미해져가고 있는 방법론이다. 9할 이상의 영화들이 감독 스스로의 나레이션과 함께 진행되는 것은 오직 청소년 다큐멘터리에서만 발견 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이다. 말하자면, 청소년 다큐멘터리스트들과 기성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작업은 지금 현재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청소년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이 나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동시대의 기성 감독들의 작업들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라기보다는 그들 스스로에게 가장 편하고 정확한 방법을 직접 선택한 것이라는 것이다.

개별 감독들을 모두 인터뷰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이 형식을 선택했는지를 정확히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관람한 영화들이 남긴 공통적인 인상들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려고 한다. 내가 느끼기에 많은 나레이션들은, 촬영 과정에서 통제 혹은 예상을 벗어난 이미지를 우연히 얻게 된 뒤 감독이 그것을 편집과정에서 사용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선물처럼 다가온 그 순간을 가장 적극적으로 영화에 쌓기 위해서 뒤늦게 그 이미지 위에 나레이션을 더해 영화의 의미를 확장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대부분의 청소년 다큐멘터리들의 공통점은 감독 스스로가 기획, 제작, 촬영, 구성, 편집 모두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영화 제작 경험이 많지 않은 청소년 감독들에게 외부의 도움 없이 직접 작품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시도이다. 청소년 감독들은 완벽한 준비가 끝난 뒤 촬영에 임하기보다는, 우선 최소한의 기획만을 가진 채 우선 촬영을 시작한 뒤, 프러덕션 과정에서 질문을 보완해나가고, 자신이 정말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밟는다. 나레이션은 이때 등장한다. 영화를 시작하기 이전의 자신과, 영화를 완성시킨 자신 사이에 성장이라고 불릴 만한 시간들이 생기자 그 성장의 감정을 언어화 하는 수단으로 나레이션을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엔 ‘이 영화를 시작 할 때의 나의 상태는 이러했는데, 영화를 찍다 보니 이러하게 변했다’라는 고백이 뒤따라온다.

형식에 대한 이야기로 나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지만, 사실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다큐멘터리 제작 자체가 하나의 배움이 되고, 그 배움과 함께 솔직한 고백이 더해지는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작가주의의 한 형태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쨌든 가장 위대한 영화는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영화라고 믿는다. 며칠간 관람한 많은 청소년 다큐멘터리들은, 창작물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창작자 스스로가 건강하게 변화해갈 때 작품이 어떤 힘이 갖게 되는지 내게 가르쳐주었다. 굉장히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영화를 만들며 세상에 대화를 건넨다는 것. 이것이 현재 청소년 다큐멘터리들의 힘이라면 나는 그 힘을 끝까지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논쟁적인 말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지점이 내게 크게 다가왔던 이유는 사실 동시대의 청소년 극영화를 보면서는 이 감정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지점. 청소년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기성 영화 혹은 감독들의 영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스스로의 고민처럼 느껴졌다는 것. 사실 이 말은 청소년 극영화를 의식해서 했던 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청소년 극영화를 볼 때마다 잘 모르는 대상을 영화에 담을 때 생겨나는 윤리적 게으름들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게으름이 결국 기성 영화들을 무조건적으로 따라하려는 서툰 시도들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선, 청소년들이 점점 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위험한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점점 나빠져 가는 세상에 대한 어른들의 반성이 우선적으로 따라와야 할 것이다. 청소년들이 만드는 영화는 어쨌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다큐제작워크숍 7기

내가 생각하는 청소년 감독들이 만든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차이는 이것이다. 극영화의 대상은 쉽게 타인이 된다. 지금 세상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극영화가 그렇기 때문이다. 전개를 위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약자들은 감정의 파토스를 만들기 위해 너무 쉽게 폭력을 감당한다. 이런 영화들과 함께 살아가는 청소년 감독들은 창작자로서 기성 영화들의 그것을 쉽게 욕망하게 될 수밖에 없다. 반면 다큐멘터리의 대상은 우선 자신이 된다. 극영화를 찍을 때에 사용되는 무거운 카메라 대신, 가벼운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된 청소년 감독들은 처음으로 카메라가 신체의 감각기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지를 Making이 아닌 Taking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다큐멘터리 제작은 감독 개인의 내밀한 세계를 밖으로 꺼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카메라가 가진 권위가 없어질 때, 주변의 모든 것들이 영화가 된다. 카메라 통해 1:1로 바라본 세상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가진 마법같은 힘이다. 내 주위의 세상을 전과 달리 볼 수 있게 되는 것.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도 현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 이것은 영화를 일찍부터 꿈꿨던 나 스스로가 고등학생때 처음 다큐멘터리를 접하며 느꼈던 것이기도 하다. 이 배움 이후에 내가 알던 영화라는 세상이 정말 크게 바뀌었고, 첫 영화를 찍을 용기를 내게 되기도 했다.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영화가 되는 게 아니야. 주변의 것들. 내가 지금 정말로 고민하는 것들. 내가 일상 속에서 닿을 수 있는 것들로도 영화가 만들어 질 수 있어.’ 언젠가 내가 첫 번째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일기에 썼던 내용이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 아직 어떤 형태로 자리 잡기 이전의 예술. 나는 그게 지금 영화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2017년 현재 다큐멘터리는 아직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고민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는 청소년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가진 힘을 믿고 사랑한다. 많은 관객들이 청소년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보고 나처럼 사랑에 빠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응원은 청소년 다큐멘터리들이 계속해서 생산되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건강한 영토를 다져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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