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올드마린보이> 프리뷰

2017.09.01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 <올드마린보이> 프리뷰

이지선 시민에디터

2014년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에 아파하고, 소리 낮춰 브라질 월드컵을 응원하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치유의 손길이 되어준 다큐멘터리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역사상 유례없던 48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흥행작이 된 진모영 감독의 첫 연출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My Love, Don’t Cross That River, 2014)이다. 영화는 그 해 열린 제 6회 DMZ국제다큐영화제의 한국경쟁 후보로 올라 관객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았고, 작품성과 함께 다큐멘터리의 대중적 저변을 확대해주었다는 평가도 얻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진모영 감독의 신작 <올드마린보이>(Old Marine Boy, 2017)가 제 9회 DMZ국제다큐영화제의 문을 여는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건너지 말아야 하는 강에서 뛰어 들어야 하는 바다로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조재현 집행위원장은 진모영 감독의 전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두고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영화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과 삶을 통해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감독은 1년 4개월간 강원도 횡성 산골에 오가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는 노부부의 소소한 시골 일상을 보여주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따라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담았고, 할머니와의 아름다운 이별의 모습을 그렸다. 그렇게 건너지 말아야 하는 강에 닿았던 감독의 시선이 이번에는 뛰어 들어야 하는 바다로 향했다. 정겨운 시골 풍경에 잔잔하던 강물과는 다르게 거친 파도와 함께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포를 쏘는 훈련의 흔적이 가득한 동해안 최북단의 바다 한 가운데로 말이다.

다양한 경계를 담아내는 프레임

진모영 감독은 프레임에 다양한 경계를 담아낸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노부부의 사랑을 이야기 했다면, 이번에는 남과 북의 경계에서 낮과 밤의 경계로, 또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위치한 탈북 머구리(잠수부)를 통해 남한 사회에 적응해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올해로 탈북 10년차, 강원도 고성에서 머구리로 살아가는 올드마린보이 박명호씨가 주인공이다. 그의 나지막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2년 반이라는 촬영 기간 동안, 500시간의 기록으로 경계인의 눈에서 바라 본 우리 사회를 포착하고 있다. 주인공은 남과 북의 군사 분계선을 코앞에 두고, 새벽 5시 해 뜨기 전 낮과 밤의 경계에서 하루의 아침을 맞이한다. 그는 피랍과 피격에 대한 경고와 군 경찰의 월선 조업주의 경고가 익숙한 곳에서, 가느다란 생명줄에 의지한 채 곁에 있는 죽음을 매일같이 반복적으로 체험한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재력, 지력, 권력, 인력이 필요한 사회에서 오직 생존하기 위해서 체력에 의존한다. 바닷속 생과 사의 경계에서 외로운 작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말이다.

이방인에서 올드마린보이로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 푸른 바다 밑에서 잘도 싸우는 / 슬기롭고 씩씩한 용감스러운 마린보이

글로 써도 저절로 음을 붙여 읽어나가듯,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만화 주제가의 한 구절이다. 영화 기획 단계에서 타이틀이 <이방인>이었다가 <올드마린보이>로 변경되었을 때에, 감독은 올드 마린 보이라는 제목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을까.

주인공은 영화 속 내레이션을 통해 처음에 오직 측은과 동정의 눈길을 던지던 남한 사람들이, 자신이 차차 적응을 하고 사업을 넓혀 올라갈수록 경계의 눈빛으로 바뀌었다고 회고하면서 탈북자를 노동력으로만 보며 치고 올라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하는 매몰찬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남편이고 아버지이기에 선택한 이방인의 삶은 북한을 넘어오던 그날 밤처럼 여전히 불안하고 늘 위험하기에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매 순간이 두려운 잠수 일은 마치 인생과 같다. 그는 온전히 가족을 위해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 채, 한 번이라도 더 허리를 굽힌다. 감독은 매일같이 바닷속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가 우리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방인이기보다 푸른 바다 밑에서 잘도 싸우는 씩씩하고 용감한 마린보이가 되기를 의도한 건 아닐까.

힘겹지만 힘차게

영화는 줄 하나에 의지해 바닷속으로 끝없이 침잠해가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시작하고, 바다에 몸을 맡긴 채 힘차게 발을 구르며 잠수복에 공기를 채워 수면을 향해 올라가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그는 9kg의 잠수복, 15kg의 헬멧, 11kg의 앞 요추, 10kg의 뒷 요추, 각각 6kg의 신발, 거기다가 몸무게까지 합하면 총 120kg 가까운 무게에도 아랑곳 않고 물속에서 춤추듯 유영하는 몸짓을 보여준다.

생존을 위해 인간이 투쟁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 주인공. 영화는 물 안에서는 괜찮다가 물 밖으로 나오면 저리고 아픈 여러 잠수부들의 삶을 통해, 물 안 밖에서 잠수병의 고통을 이겨내어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도 살아남으려는 아름다운 생존기를 다룬다. 바다와의 전쟁 한 가운데에서 주인공 박명호씨를 버티게 해주는 힘의 원천은 아마도 가족일 것이다. 영화는 중반부 이후 내레이션에 아들의 목소리가 섞인다. 첫째 아들은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아버지를 따라 가업을 이어가기로 하고, 둘째 아들은 더 넓고 깊은 세상을 향해 도전하기 위해 호주로 향한다. 어머니는 횟집을 개업하며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 <올드마린보이>는 탈북 머구리의 삶을 통해 국적은 한국이지만 북한에서 태어나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새터민들의 현실을 날것으로 다루고 있다. 가족과 친족으로 거미줄처럼 촘촘한 인맥이 재산인 사회에서 오롯이 네 가족이 계단까지 만들어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은, 함께 어려운 시간을 겪은 새터민들의 연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지점을 보여준다. 이탈 주민을 향한 여전한 편견과 냉대, 무관심으로 실의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내내 푸른 바다 속에서 또렷하게 들렸던 조금은 늙은 마린보이의 목소리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들리는 듯하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힘겹지만 힘차게 수면 위로 올라와 고개를 내민 그가 세상을 향해 내뱉은 밭은 숨소리에, 영화를 지켜본 모두가 귀 기울이고 응원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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