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다큐멘터리와 미장센 (2부)

2017.09.01

특별기획: 다큐멘터리와 미장센
객관-기계로서의 다큐멘터리라는 신화 (2부)

조명진 전문위원 프랑스국립예술사연구원 프로그래머

 

미장센 : 무대를 설치하다

<어떤 여름의 연대기>(Chronicle of a Summer, 1961)

<어떤 여름의 연대기>(Chronicle of a Summer, 1961)의 시네마 베리떼적 전통을 잇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메란 타마돈 감독의 <이란 사람>(Iranian, 2014)은 ‘무대를 설치함’이라는 미장센(mise en scène)의 직역적 의미가 글자 그대로 형상화되는 작품이다. 폐쇄적이며, 보수적인 이란 사회에서 주류와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꿈꿨던 타마돈 감독은 카메라의 존재가 촉매제가 되어 비록 이틀간의 짧은 시간이긴 하나 이란 사회의 일상에서는 쉽게 다룰 수 없었던 주제들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는 영화적 무대를 설치한다. 테헤란 근교의 빈 집은 이렇게 해서, 이 공동의 경험에 참여할 네 명의 보수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맞이할 공간으로 변모한다. 감독을 포함한 이 다섯 명의 공동의 공간인 거실에는 다섯 사람 각자가 찍은 자신들의 서재 사진들이 각 벽면에 붙여진다. 이렇게 이란에서는 금서일 수 있는 책들이 즐비한 타마돈 감독의 파리 집 서재의 사진은 거룩한 선지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기 때문에 사진임에도 감히 밟을 수 없는 책들이 정리되어 있는, 네 명의 초청객들의 서재 사진들과 함께 이 영화를 위한 공간에 함께 공존하게 된다. 사실, 어린 시절 정부에 맞섰던 공산주의자 아버지를 따라 이란을 떠나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으며, 무신론자이기도 한 타마돈 감독은 이 네 명의 초청객들에게는 이중적으로 이방인이며 그들의 엄격한 율법에 따르면 차 한 잔을 함께 나눌 수 없는 ‘불결한 자’이다. 따라서 어쩌면 사소해 보일 수 도 있는 이 짧은 공동체의 경험은, 3년이란 시간의 노력을 통해 현실의 공간에서 분리되고 차단된 이 연출된 공간에서야 비로소 실현된다. 감독이 설치한 이 무대에서, 자신들을 응시하는 카메라 앞에서, 이 초청객들은 이 공간이 요구하는 암묵적인 룰을 지키면서, 마치 티비의 리얼리티 쇼에서처럼, 이틀간 같이 살기라는 미션을 수행해 내는 것이다. 영화의 끝무렵, 마침내 이 영화적 공동체의 경험이 끝나고 초청객들이 떠날 때 감독은 그가 준비했던 무대 장치들을 쓸쓸히 다시 해체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아직은 타마돈 감독이 꿈꾸었던 세상이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생이 가능하기 위한 첫 단초가 될 서로 다른 이들과의 ‘만남’은 미약하게나마 영화를 통해 이렇게 시작되었다.

속박에서 벗어난 다이렉트 시네마

대부분의 예술의 새로운 사조가 현존하는 예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하듯, 그리어슨식의 고전적 다큐멘터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한 다이렉트 시네마는 나레이션 등의 형식적 중재자 없이 명확한 계몽적 메세지를 배제하고, 직접 현장에 들어가 관객이 즉흥적이고 즉각적인 현실을 마치 직접 목도하듯이 경험하게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다큐멘터리를 통한 현실의 왜곡과 조작 가능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각성에서 출발한 다이렉트 시네마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촬영 현장에서 개입을 최소화하고, 최소한의 편집을 기치로 하는 극도의 순수한 관찰자로서의 입장을 취하고자 하기도 했다. 에릭 바누의 표현을 빌리면, 다이렉트 시네마의 감독들은 ‘완벽한 투명인간’이길 원했고, 일부는 영화적 결벽주의에까지 치닫았다. 그러나 다이렉트 시네마 발생의 초기부터 사실상 현장에서의 카메라의 존재가 대상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으며, 카메라가 담아내는 사건은 감독의 시선, 즉 의도에 의해 주관적으로 취사선택된 사건일 수밖에 없으며, 감독의 시선에 의해 채택된 현실과 실체 사이에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대부분의 다이렉트 시네마 감독들은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인식들은 특히 1970년대 이후 다이렉트 시네마적 기법을 견지하면서도 감독의 주관적 포지션을 관객에게 인식시키는 다이렉트 시네마의 새로운 경향, 새로운 세대 또는 다이렉트 시네마의 변종이라고도 불리는 작품들을 태동시켰다. 이런 작품들의 감독들로 우리는 쉽게 크리스 마르케, 요한 반데흐 커큰, 로버트 크레이머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미 1번 국도>(Route One USA, 1989)

1960년대 반전 대안 뉴스 운동을 이끌던 뉴스릴(Newsreel)의 공동 창시자로, 혁명의 꿈이 좌절된 후 유럽으로 정치적, 영화적 망명을 떠났던 로버트 크레이머 감독은 다이렉트 시네마의 새로운 경향의 감독들 중 가장 독특한 형식의 작품을 남긴 감독 중의 한 명일 것이다. 그중에서 이번 특별 기획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 <미 1번 국도>(Route One USA, 1989)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로버트 크레이머는 자신의 망명 10년 후의 미국 사회를 다시 직접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한다. 이 여행을 위해 크레이머가 선택한 경로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1번 국도다. 미국의 남과 북을 잇는 가장 오래된 도로인 이 국도는 한때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수많은 사람들이 거친 길이다. 그러나 이제 이 길은 이용자가 대폭 감소하면서, 단지 미국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이 그 도로 주변을 따라 삶을 꾸려가고 있는 곳이다. 1960년대 시민 사회운동의 실패에 대한 좌절 이후, 오랜 망명 생활 끝에 다시 돌아가는 이 길이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크레이머 감독은 6개월에 걸친 이 어렵고도 긴 여행을 위해 특별한 동행자를 초대한다. 그 주인공은 크레이머 감독의 전작인 극영화 <닥의 왕국>(Doc’s Kingdom, 1987)에서 주인공인 닥을 연기했던 배우 폴 막이작이다. <미 1번 국도 >에서 폴 막이작은 다시금 픽션의 인물인 닥으로 분해, 카메라 뒤에선 크레이머의 직접적인 대화 상대자이자 그가 만나는 1번 국도 주변의 실제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인물로서 이 긴 여행을 함께한다. 그런데, 폴 막이작이 만나는 실제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말을 건네는 이 닥이란 인물이 사실은 한 배우에 의해 연기되는 픽션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 한다. 몇몇에겐 폴 막이작은 오랫동안 혁명을 꿈꾸었다가 좌절하고, 포르투칼로 망명했던 닥이란 인물이며, 대다수는 그가 닥이란 이름을 가진 스쳐지나가는 여행자라고만 인식할 뿐이며 사실은 그가 픽션의 인물이라는 사실이 그들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전무하다 할 수 있다. 사실, 닥이라는 이 픽션의 인물이 필요한 사람은 오직 로버트 크레이머 감독 자신 뿐이었다. <닥의 왕국>에서 염세적 구 혁명주의자, 즉 크레이머 감독의 분신을 연기했던 이 배우는 <미 1번 국도 >에서 다시금 그 역할을 하며, 크레이머 감독이 선뜻 다시 다가가기 힘들어 하는 미국 사람들에게 말을 걸면서, 그들과 감독간의 가교 역할을 한다. 여행이 점점 길어질수록 크레이머 감독은 스스로 자신의 카메라 앞에선 대상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것은 이 기묘한 자신의 분신인 동행자, 결국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금 얻은 용기와 자기 자신과의 화해 덕분이 아니었을까. 다큐멘터리는 카메라 앞의 대상들의 이야기를 보여 줄 뿐 아니라, 그들과 카메라 뒤에 선 감독이 맺는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 픽션의 인물을 통해 가능했던 크레이머 감독과 이 미국인들의 만남과 관계를 드러낸다. 60년대 뉴스릴 시절의 크레이머 감독에게 오늘날 자신의 카메라 앞에선 사람들은 혁명을 위한 각성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시금 그가 이렇게 카메라를 들었을 때, 이들은 감독의 대화 상대자가 되었으며 감독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다큐멘터리적 미장센의 차용과 뒤틀기, 그 전복의 전술

<퍼니시먼트 파크>(Punishment Park, 1971)

“ 예술은 우리에게 진실을 일깨워 주는 거짓이다.”

오손 웰스는 픽션과 논픽션을 교묘히 섞어 경계를 뭉뚱거린, 자신의 작품, <거짓의 F>(F For Fake, 1975)에서 피카소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이 장르는 마티스, 모네, 피카소 등의 작품을 완벽하게 재현하며 전문가들 조차 속이는데 성공했던, 모작과 진품을 구별할 수 없는 삶을 살았던 화가 엘미르 드 호리의 생의 속성을 형상화해 내기에는 아마도 가장 적절한 표현 양식이었을 것이다.

흔히 모큐멘터리(Mockumentary), 즉 가짜(Mock) 다큐멘터리라고도 불리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의 전형적인 형식을 차용하여 허구의 사건을 실제처럼 보이도록 재현한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탄생 이후 여러 해를 거치면서 관객들은 상황의 필연성에 의해 채택된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쓰인 연출 기법들에 익숙해졌고, 이후 역으로 이 기법들은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로 자리잡아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보는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인식하게 만드는 하나의 인식 코드처럼 작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어느 순간 어떤 형태의 ‘다큐멘터리적 미장센’에 대한 광범위하며, 암묵적인 동의가 다큐멘터리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또는 모큐멘터리는 바로 이런 암묵적 동의에 한편으로는 기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완성된 관습을 뒤틀어 보이는 것이다. 이번 특별 기획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피터 왓킨스 감독은 흔히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대부로 여겨질 만큼 많은 픽션 작품들을 다큐멘터리적 미장센, 특히 다이렉트 시네마적 코드를 차용하여 만들었다.

피터 왓킨스의 1971년 작품, <퍼니시먼트 파크>(Punishment Park, 1971)에서 미국 정부는 비상시국을 선언한다.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반전주의자, 탈영병, 무정부주의자 같은 이들을 체포하여 즉결 재판에 넘긴다. 20년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 받을 수 도 있는 이 재판에서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감옥형 대신, 캘리포니아 사막에 위치한 퍼니시먼트 파크라 칭해진 징벌원행을 택한다. 이들이 삼일 동안 징벌원에서 해야 하는 일은 물 한모금 공급되지 않는 여건 속에서 황폐한 사막을 횡단하여, 그 어딘가에 꽂혀 있을 미국 국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상 정치범들을 향한 경찰들의 인간 사냥이 벌어진다. <퍼니시먼트 파크>가 개봉을 준비했을 당시, 몇몇 영화제를 제외하고는 수년간 미국내 극장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개봉이 허가 되었던 프랑스에서도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검열 당국이 이렇게 이 작품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것은 단지 내용면에서의 반정부적 메시지나, 폭력에 대한 표현의 수위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사실상, 검열 당국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여겼던 부분은 이 영화가 가상의 현실을 다이렉트 시네마의 기법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현장의 급박함을 일깨우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어깨에 멘 카메라,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직접 인터뷰에 응하는 비 전문직업 배우들로 구성된 등장인물들, 촬영을 방해하기 위해 손으로 카메라 렌즈를 가리는 경찰들… 피터 와킨스 감독은 이렇게 당시 다이렉트 시네마와 텔레비전 르포르타주에서 흔히 사용하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코드들을 차용하여 허구의 현실이 더욱 강화된 현장감과 현실감을 획득하면서, 관객들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때 관객들은 픽션의 환영 속에 안주할 수 없으며, 당시 1970년대 미국의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상기하게 된다. 그리하여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가상의 현실이 픽션의 세계를 벗어나 자신들 앞에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음을, 어쩌면 이미 다른 형태로 다가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처럼, 피터 와킨스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페이크, 즉 거짓을 통해 효과적인 방법으로 시대적 진실을 일깨워 주는 ‘전복’의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튀니스의 샬라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튀니지의 컴퓨터 게임의 한 장면>

“게이머가 조종하는 오토바이를 탄 남자는 챠도르를 두른 여성들 사이에서 개방적인 옷 차림의 여성 보행자를 골라 칼로 상해를 입혀야 점수를 얻는다”<튀니지의 샬라>

특별기획이 제안하는 마지막 작품은 카우더 벤 하니아, 튀니지 여성 감독의 영화, <튀니지의 샬라>(Challat of Tunis, 2013)로 이 작품 속에서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는 더욱 섬세한 방법으로 지워진다. 2003년,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오토바이를 탄 한 괴한이 자신이 판단하기에 정숙하지 못한 옷차림을 한 여성들에게 접근해서, 칼로 그녀들의 엉덩이를 난자하고 도주한다는 소문이 퍼진다. 아랍어로 ‘칼자국을 내는 자’라는 뜻의 샬라라고 불리는 이 괴한은 이후 숱한 여성들을 공격한 뒤 체포되어 감금되었다고 알려졌다. 카우더 벤 하니아 감독은 일찍이 이 괴한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지만, 모든 정보들이 통제되었던 벤 알리의 독재체제하에서 이 소문이 실제의 사건에 근거한 것인지, 단순히 여성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적 복장을 강요하기 위한 괴소문일 뿐이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2011년 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관련된 공문서의 열람이 가능해지면서, 실제 범인을 쫒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카우더 벤 하니아 감독은 오랜 범인의 추적과정에서 실제 그 당시 범행을 저질렀던 한 사람의 샬라 뿐 아니라, 그의 행위에 동조하며 자신들의 성적, 종교적 판타지를 실제 샬라를 통해 충족했던 무수한 잠재적 샬라들을 만나게 된다. 게다가 비록 반대에 의해 좌초되기는 하였으나, 여성과 남성의 동등성을 부정하고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 존재다”라는 문구를 새 헌법에 삽입하려 했던 2012년의 튀니지 사회에서는 실제 샬라의 몇몇 한정된 희생자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이 무수한 샬라들의 희생자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에 <튀니스의 샬라>에서 카우더 벤 하니아 감독은 전형적인 탐사 다큐멘터리의 형식이 아닌 픽션과 다큐멘터리 두 쟝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형식을 선택한다. 즉, 감독은 진짜 희생자들과 픽션의 희생자들, 실제 샬라로 추정되는 인물과 스스로가 샬라이기를 꿈꾸는 이들을 경계 없이 뒤섞는다. 사실상 카우더 벤 하니아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누가 실제 범인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마초적인 튀니지 사회가 은밀히 꿈꾸는 샬라적 응징에 대한 사회적 판타지의 픽션을 스크린의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튀니지 사회 현실의 복잡성은 이러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혼합이라는 양식적 실험을 통해 상호작용적 방식으로 형상화된다.

다큐멘터리는 그 탄생의 시기부터 결코 기계적인 객관적 기록물이 아니며, 객관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왔다. 카메라로 대변되는 기계의 눈 뒤에는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결코 전지적이지 못한 개인으로서의 감독의 시선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하나의 프레임, 하나의 앵글의 구성에도 현장과 사건을 바라보는 감독의 의도가 배어 있고, 그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감독의 해석임은 자명하다. 이번 특별 기획에서 제안하는 6편의 작품들은 다큐멘터리 영화사는 이렇듯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특수성을 사수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가 아니라, 카메라 앞의 주제와 대상에 대한 더욱더 효과적이며 적절한 표현 양식에 대한 탐색과 그 양식의 윤리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격렬한 논쟁의 역사라는 믿음에 근거해, 그 다양한 시도들을 살펴보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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