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의 미래 1: VR 다큐멘터리, 새로운 체험 방식의 가능성

2017.07.23

다큐멘터리의 미래 1:
VR 다큐멘터리, 새로운 체험 방식의 가능성

강희정 시민에디터

 

기록영화 이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은 다큐멘터리를 사실에 접근하는 창조적 작업이라고 정의 내렸다. 모순적이게도 본격 다큐멘터리 영화의 시발점으로 불리는 로버트 J. 플래허티(Robert Joseph Flaherty)의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 1922)는 조작된 연출과 허구를 담아낸 문제작으로 남았다. 주인공의 이름도 거짓이고, 영화 속 부인도 실제 부인이 아니며 문화적으로 실제보다 더 미개한 방식을 재연해낸 결과, 영화는 흥행했지만 다큐멘터리가 지켜야 할 사실 추구의 원칙을 무참히 깨뜨렸다.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 1922)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약 1세기 전의 작품인 <북극의 나누크>를 다큐멘터리라 부르고 있고,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 비참하게도 이는 무관심이 불러온 지루한 결과다. 다큐멘터리라는 단어가 상기시키는 개념만 신화처럼 살아남았을 뿐, 소수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인기 없는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사실을 소비하는 대중들의 태도와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뉴스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극장 밖이라고 해서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장비를 든 사람들은 논픽션 영상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무감각의 상태로 넘어갔다.

타개책은 저널리즘의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그것은 <북극의 나누크>가 아닌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The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Station, 1895)을 떠올리게 하는 접근법이었다. 1895년, 늘 보던 기차의 움직임을 대형 스크린으로 본 순간 극장 밖으로 뛰쳐나갔던 사람들. 그것은 몸이 반응하는 감각적 체험이었다.


<로스엔젤레스에서의 굶주림>(Hunger in Los Angeles, 2013)

미국의 가상현실(VR) 다큐멘터리 제작사 엠블러매틱 그룹이 2013년 발표한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굶주림>(Hunger in Los Angeles, 2013)은 미국 내 빈곤층의 참상을 시청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한 VR 다큐멘터리다. 시청자가 VR용 헤드마운드디스플레이(HMD)를 쓰면 그 현장을 직접 마주한 듯한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안겨주었고, 엠블러매틱 그룹은 <프로젝트 시리아>(Project Syria)를 연이어 발표하여 VR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입증해 보였다. <프로젝트 시리아>는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서 민간인들을 향해 로켓포가 떨어진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다. 평소 뉴스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전혀 다른 감각적 체험을 통해 시청자의 역할을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바꾸는 전환점을 만들었다.

<프로젝트 시리아>(Project Syria)(출처 : 엠블러매틱)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지만, VR 다큐멘터리의 장르는 저널리즘을 넘어 다양한 서사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영화 <허트 로커>(The Hurt Locker, 2008)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던 캐스린 비글로우(Kathryn Ann Bigelow) 감독은 아프리카 콩고에서 코끼리 상아 밀렵꾼과 보안관의 이야기를 VR로 촬영한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The Protectors : Walk in the Ranger’s Shoes>(2017)를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을 통해 공개했고, 폴 매카트니는 2014년 8월 14일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 파크에서 치러진 공연 실황을 VR로 기록하여 팬들이 스마트폰 어플로 체험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도 VR앱을 제공하고 있는데, 세계 각지의 자연 공간들을 언제, 어디서든 360도 시각으로 체험할 수 있다. VR 콘텐츠의 공급이 늘어남에 따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세계 최초로 VR 영화관도 개관했다. 카페와 같은 넓은 공간에 50여 개의 VR 스테이션을 마련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VR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VR 영상이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The Protectors : Walk in the Ranger’s Shoes>(2017)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이 관객들에게 안겨주었던 충격이 무경험에서 기인한 일종의 착각의 결과였다면, VR 다큐멘터리는 실재를 경험할 수 있는 시공간의 확장을 불러왔다. 그 시간에, 그 곳에 실제로 있지는 않았지만 이를 최대한 유사한 감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가능성. 디지털 리얼리티의 핵심이다. 물론 VR은 다큐멘터리의 전유물이 아니다. 게임 분야에서는 더 활발하게 활용 가치가 실현되고 있고, 영화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관건은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새로운 영상 문법의 도래 앞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폴 매카트니 공연 실황 촬영 장면 (출처 : Jaunt VR)

VR 다큐멘터리가 감각적인 체험의 요소를 더했다고 해서 기존의 소재 선정과 연출 방식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촬영 방식의 한계와 후반 작업 공정의 복잡함 등 제작 과정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할 것이고, 메시지 자체보다는 어떤 체험을 할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존 그리어슨이 내렸던 다큐멘터리의 정의를 되짚어 보면, ‘사실’에 접근하는 ‘창조적 작업’이라는 말에서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디지털 리얼리티의 세계에서는 드러내야 할 사실이 하이퍼리얼리티[1]에 가까워질 것이며, 창조적 작업은 인간의 힘보다 기술의 힘에 더 기대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과 ‘창조적 작업’ 사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VR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가능성 위에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행보가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가 된다.


[주1] 가상실재가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하여 재현과 실재의 관계가 역전되는 현상. 장 보드리야르가 지은 책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나온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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