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영상, 다큐멘터리 공동체의 큰 이름

2017.07.23

푸른영상, 다큐멘터리 공동체의 큰 이름

한동혁 시민에디터

 

2012년, 19살의 나이에 <상계동 올림픽>(Sanggye-Dong Olympic , 1988)을 본 것은 내게 있어 커다란 사건이었다. 나는 많은 것을 이 영화에서 처음 보았다. 우선 시간. 20세기에 만들어진 한국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처음인 나는, 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 시절 한국의 이미지를 <상계동 올림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88올림픽을 앞둔 대한민국. 성화 봉송을 위해 국가는 도시 미화 작업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달동네였던 상계동은 재개발 논리 속에서 파괴 된다. 주민들은 터를 빼앗겼고, 국가는 그들을 추방한다. 한국의 뿌리 깊은 국가 폭력을 텍스트 혹은 사진이 아닌, 영화 이미지로 목격 했을 때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태도. <상계동 올림픽>의 감독인 김동원은 상계동 주민들과 3년을 함께 지내며 그들의 역사를 기록했다. 내가 영화를 보며 처음 접해본 ‘함께 살며 삶을 기록하기’의 방법론. 저널리스트로서의 어떤 윤리의식 및 동정도 아닌, 작가로서의 어떤 미학적 욕망도 아닌, 타인이었던 공동체의 일원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기록하는 새로운 태도. 나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상계동 올림픽>(Sanggye-Dong Olympic , 1988)

<상계동 올림픽>이라는 영화의 존재는 그 시절에도 큰 사건이었다. 베를린영화제와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받은 <상계동 올림픽>은,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의 시작을 세계에 알렸다. 그 무렵, 김동원은 1991년에 푸른영상(P.U.R.N Production)이라는 집단을 설립한다. 많은 사람들이 푸른영상을 찾았다. 촬영 장비를 구하기 어렵던 시절, 각자가 가져온 장비들을 나누고, 스터디를 했다. 다큐멘터리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푸른영상에 모였다.

푸른영상은 2017년,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김동원은 <상계동 올림픽> 이후 <행당동 사람들>(Haengdang-dong People , 1994), <명성, 그 6일의 기록>(The Six Day Fight in Myong Dong Cathedral , 1997)을 비롯해 21세기 한국다큐멘터리 영화의 기념비적 작품 <송환>(Repatriation , 2003)을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 장편 다큐멘터리 <내 친구 정일우>(2017)를 완성시켰다. 그의 작품 외에도, 푸른영상은 새로운 감독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동시에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 다큐멘터리 진영의 큰 이름이 된 김태일, 류미례, 오정훈등이 푸른영상에서 그들의 첫 작업을 시작했으며, 강세진, 김준호, 문정현, 정일건등 21세기에 시작해 이제는 중견감독이 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올해 환경영화제에서 한국환경영화 대상을 받은 김보람 감독의 <개의 역사>(Baek-gu , 2017)는 현재 푸른영상이 제작한 영화 중 가장 젊은 영화다.

푸른영상은 20세기에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앞장서서 다큐멘터리 진영의 활기를 불어 놓고, 새로운 영화들을 제시하고, 새로운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는 큰 이름이다. 푸른영상 이후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고자 하는 이들은 작업을 하는데 있어 ‘공동체’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조금 더 배움을 얻고 싶었다. 내가 보아온 푸른영상의 영화들이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결국 2017년 7월 3일, 나는 신대방동에 위치한 푸른영상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푸른영상의 가장 오래된 구성원인 김동원 감독과 가장 최근에 들어온 구성원인 김보람 감독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다.

<푸른영상 사무실>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91년도 당시 어떤 마음으로 푸른영상을 만들고자 했냐는 것이었다. 김동원 감독은 두 가지 이유로 대답했다. 첫 번째는 장비문제였다. 푸른영상이 만들어 질 때만 해도 다큐멘터리를 하기 위해선 ‘데크’라는 장비가 필수적이었다. 데크는 테이프에 기록된 영상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장비다. 이 장비가 두 대 이상 있지 않으면 편집 자체가 불가능했다.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은 똑같은 데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때 나와 변영주 감독이 같은 데크를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됐다. 공동체는 이렇듯 우선 같은 장비를 공유하기 위해서 필요했다.”

“NL과 PD간의 싸움은 다큐멘터리 진영에도 있었다”

두 번째는 그 당시 다큐멘터리를 하며 그가 느낀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80년과 90년대를 통과해오며 그에게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당시는 많은 이들이 NL(National Liverty)과 PD(People’s Democracy) 논쟁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NL이 ‘민족주의가 가장 우선’을 뜻 한다면, PD는 민중주의의 약자다. 이상하게도 둘은 어디를 가도 안 친했다. 80년대 운동권은 이 논쟁 속에서 끊임없이 싸웠다. 그게 다큐진영에서도 있었다. 어딜 가나 ‘너는 NL이다’, ‘너는 PD다’라는 식의 논쟁이 우선이었고, 다큐멘터리는 그에 밀려 단순히 이념을 선전하는 도구로 여겨지곤 했다.” 이런 모습이 운동권이 아니었던 그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영화하겠다던 이들이 전부 운동권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그는 “물론 그런 상황은 시대가 만든 것이다.”라며,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쨌든, 당시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가치는 이념도, 노선도 아닌 영화 그 자체였다. “나는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으로 모여보고 싶었다. 이념이나 정파와 상관없이, 영화적인 가치가 중심이 되는 그런 집단을 만들고 싶었다.”

“푸른영상은 구성원 모두가 감독인 공동체”

푸른영상이 기존의 영화 집단과 가장 크게 달랐던 부분은 ‘작업 시스템’ 이었다. 김동원 감독의 말에 따르면, 보통의 영화집단들은 “연출을 하는 사람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나머지 구성원들이 다 참여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생기는 문제는, 연출을 담당하지 않는 구성원은 언제까지나 스태프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푸른영상은 모두가 각자의 작업을 했다. 김동원 감독을 비롯해 푸른영상에 모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작업은 혼자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꼭 필요한 경우에 도움을 주고받는 것, 완성되는 과정에서 서로 모니터링을 해주는 것은 물론 가능하지만, 김동원 감독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작업은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믿었다. 푸른영상에선 경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진행 할 수 있었다. 김동원 감독은 “말하자면 푸른영상은 구성원 모두가 감독인 공동체다.”라고 말했다.

<김동원 감독>

김보람 감독은 현재 활동중인 푸른영상의 감독들 중 가장 최근에 집단에 들어왔다. 미디액트에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다큐멘터리를 시작했고, 그 수업과정에서 “다큐멘터리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이 이후에 선택 할 수 있는 활동의 경로들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그 특강을 통해 푸른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의 다큐멘터리 집단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그렇다고 곧바로 집단에 들어갈 생각을 하진 않았다. 김보람 감독이 푸른영상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그녀의 첫 작품인 <독립의 조건>(Shall We Talk?, 2014)을 홀로 작업 한 뒤였다. “회사를 그만 두고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던 때였다. 1년을 그렇게 홀로 작업을 했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이 혼자서 하기에는 외롭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김보람 감독은 당시 알던 선배 감독들에게 집단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 물어봤다. 그녀는 선배 감독들에게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 현재 존재하는 다큐멘터리 집단들이 각각 어떤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생각을 점점 정리해가던 과정에서 푸른영상의 문정현 감독에게 제안이 왔다. “푸른영상이 인원을 충원하고 있는데 들어오지 않겠냐고. 그때 제안을 받아 들여서 푸른영상에 들어오게 됐다.”

<개의 역사>(Baek-gu , 2017)(출처 : 네이버영화)

김보람 감독은 푸른영상에 들어와 <개의 역사>(2017)를 만들었다. 집단에 들어오고 난 이후 처음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집단에 소속되어 작업을 하는 것과 홀로 작업을 하는 것이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했다. “촬영, 편집, 기획 등 작업 과정만 놓고 보면 큰 차이는 없다. 혼자 찍기 어려운 장면들을 찍을 때만 도움을 받았고, 그밖에는 대부분 홀로 작업을 진행했다. 작업을 할 때 보다는, 푸른영상 사람들과 평소에 나누는 이야기들 속에서 느끼거나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영화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시사를 하는데, 그때 집중적으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김보람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궁금했다. 김동원 감독은 푸른영상 후배 감독들의 작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기본적으로 우선 뿌듯하다. 기분이 좋다. 물론 내 맘에 들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이것저것 고쳤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고 개입을 하진 않는다. 내 작품이 아니라 그들의 작품이니까.”

“하고 싶은 일이 내 삶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차이”

민감한 질문이지만,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다큐멘터리 집단들의 수익구조였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고정된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살아간다.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영상을 제작하는 등,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 푸른영상의 경우엔 이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김보람 감독은 “푸른영상이 현재 수익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없어서, 구성원들에게 활동비가 나오지 않은지 꽤 되었다. 각자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물론 즐거운 일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니까.”라고 운을 떼었다. 하지만 곧이어 이런 말도 했다. “그래도 과거에 직장을 다녔을 때 보다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과거에 잡지사에 근무했는데, 그때도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쓰고 싶지 않은 홍보기사를 계속 써야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의 인터뷰를 계속 해야 하는 상황이 자존심도 상하고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푸른영상에 속한 지금, 하기 싫은 아르바이트라도 그 일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차이가 뭘까 고민을 해 봤는데, 어쨌든 과거와 달리 지금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내 삶에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김보람 감독은 “사람들이 나를 다큐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불러주는 것”과 “먼저 이런 삶을 살아온 선배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현실을 버티는데 힘이 되어준다고 했다.

푸른영상은 하나의 삶의 방식

옆에서 김보람 감독의 말을 듣고 있던 김동원 감독도 말을 보탰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푸른영상이 만들어진 이후로 항상 있었던 문제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선은 계속 지켜나가려고 노력 했다. 푸른영상안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푸른영상은 프로덕션인가 아닌가. 프로덕션이면 TV 꼭지 프로그램도 하고 그러면서 번 돈으로 우리 작품 하면 좋은 것 아니냐. 맛집 기행 같은 다큐멘터리라도 만들어서 돈 벌면 그것도 어쨌든 다큐멘터리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논쟁들도 있었다는 거다.” 그는 이 논쟁을 통과하며 떠나간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푸른영상이 지켜낸 믿음은, ‘푸른영상은 프로덕션이 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한 번 방송국이랑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거기에 말려들게 된다. 방송국 요구에 맞춰서 언제까지 만들어줘야 하고, 수정해줘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여유가 없어진다.” 현재 푸른영상은 ‘푸른영상’이라는 이름을 보고 찾아오는 의뢰를 통해서만 수익 사업을 한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돈으로 작품 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 것 거의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주의다. 만약 나처럼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푸른영상이 작업을 해나가는 모습이 조금은 힘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푸른영상이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작게 살면서 버텨 나가는.”

<인터뷰 중 포착된 나른한(?) 광경>

푸른영상 작품들의 특징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풍경과 인물들 속에서 문득 찾아낸 시대의 아픔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푸른영상의 감독들은 영화라는 것을 완성하기 위해 소재를 소모하는,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김동원 감독에게 물었다. 푸른영상의 작품들은 어떤 마음과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우리의 영화들은) 시대가 만든 것이다. 나는 <상계동 올림픽>을 내가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에 내가 일번타자로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만든 것이었지, 내가 하지 않았으면 다음 사람이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다큐가 개인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와의 공동창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이 애를 쓰긴 한다.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면서 좀 덜 지루하게 만드는 일을 하긴 한다. 하지만 핵심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계동 올림픽> 만들 때 크레딧에 감독 전두환이라고 쓰려고 했다(웃음).”

대화는 약 한 시간정도 진행되었고, 바쁜 와중에 찾아온 것이 죄송해서 질문하고 싶은 것이 많이 남았음에도 대화를 슬슬 정리할 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물은 것은, ‘배움’에 대한 것이었다. 푸른영상을 27년째 이끌고 있는 김동원 감독에게 물었다. 다큐란 무엇입니까. 그의 대답. “다큐를 배운다는 것은 사람을 배우는 것이며 동시에 세상을 배우”는 것. 그렇기 때문에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 “다큐를 계속 할 수 있는 힘은 자기가 만난 사람들, 자기가 만난 사건들에서 나온다는” 것. 김보람 감독에게도 물었다. 푸른영상에서 얻은 배움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다큐를 만드는 과정은 자기 자신을 완성시키는 과정이라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완성과 나의 완성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을 때 허망함이 찾아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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