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주로미 감독의 <올 리브 올리브>: “민중의 세계사”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하여

2017.07.23

김태일, 주로미 감독의 <올 리브 올리브>:
“민중의 세계사”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하여

김신 시민에디터

 

20세기 말부터 유럽 지역에서 격화되기 시작해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반유대주의 운동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저항적인 민족주의 운동을 조직하도록 이끈다. 이른바 ‘시오니즘(Zionism)’ 이라고 잘 알려져있는 이 유대 민족주의 운동은 이후에 규모를 점점 더 확장하게 되어 하나의 나라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이스라엘(Israel)이라는 국가가 그것이다. 문제는 성서의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팔레스타인(Palestine) 지역의 소유권을 주장했던 이스라엘의 건국과정이, 이미 해당 지역에 살고있었던 팔레스타인의 국민들을 침략하는 만행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 만행으로 비롯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야했던 팔레스타인의 거주민들은 ‘가자지구’라 명명된 난민지대에서 69년째 점령하에 살아가고 있다.

<올 리브 올리브>(All live Olive, 2016)

‘민중의 세계사’ 10부작 다큐멘터리 연작을 작업중인 김태일(Tae Il Kim) 감독은 연작의 세 번째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가자 지구를 방문했었다. 얼마 전인 7월 13일에 개봉한 <올 리브 올리브>(All live Olive, 2016)는 그 취재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이다. 그는 이 세계사적 사건을 어떻게 접근하고 담아내고자 했을까.

한 명의 영화 관객의 입장에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길은 이스라엘대 팔레스타인이라는 분쟁의 정치적 구도를 첨예하게 부각시키는데 방점을 두는 방식일 것이다. 이는 역사적, 물리적으로 넓게 가지를 뻗고있는 상기 분쟁의 사회적인 정황을 포괄적인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줄 것이며, 학살자와 피학자라는 명징한 대립항을 불거지게 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이목을 이끌어오는 효과적인 선전 전략으로도 기능할 것이다. 또한 이는 고난에 처한 주인공,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으로 대표되는 캐릭터의 선악구도에 익숙해진 멀티플렉스의 관객들의 공분을 자극하는 데도 효과적으로 협조할 것이다.

<오월愛>(No name stars, 2010)

그러나 익숙한 방식으로 현실을 정제하는 방식은 장점 이상으로 많은 한계를 갖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본래 서사적, 이분법적으로 구성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류 영화의 문법은 언제나 현실의 시공간을 편집하고 용접해 가장된 환영성을 만들어내는데 열중해왔으나, 그 결과물은 언제나 변형과 조작이 가미된 만큼의 진실을 누락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영화화하는 경우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설령 그것이 선의에 기반한 기획이라고 하더라도, 익숙한 방식의 관습담으로 사건을 담아내는 순간, 가자지구에서의 삶이라는 현실의 구체성이 또 하나의 ‘제3세계 난민의 삶’이라는 추상 명사의 범주로 뭉뚱그려지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지 않을까. 위안부 문제를 영화적으로 재현하는데 있어 신중함을 기해야한다고 말했던 김소희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제대로 아는 것’에서 가장 멀어지게 되는 길”(김소희, 「‘낮은 목소리 3부작이 지닌 현재적 의미에 대해서」, 서울아트시네마 웹블로그)이 될 것이다.

이는 김태일 감독과 주로미 감독이 지니고 있던 문제의식과 공명하고 있기도 하다. 90년대 중반부터 많은 국내의 정치적인 사안들을 카메라로 담아오는데 몰두해오던 김태일 감독의 다큐멘터리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한 사안들에 연루된 사회적 소수자들의 구체적인 삶을 포착하는 방향으로 우회한 이유 또한 그가 양식화된 화법의 맹점을 경험적으로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제작한 ‘민중의 세계사’ 연작은 역사적인 갈등이 발생했던 장소들의 오늘날을 조명하고자 하지만, 그 작품들에서 관객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선전적인 뉘앙스의 계몽적인 메시지가 아닌, 청자의 관점에서 기록된 현지인들의 생생한 말과 몸짓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된 역사는 제1세계의 관점에서 서술되어왔던 역사를 재생산 하는 대신,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소수자들의 시각에서 기록한 역사의 판본을 작성하는데 성공한다.

<웰랑 뜨레이>(Welling Trei, 2012)(출처 : 네이버영화)

민중의 세계사 연작은 현재까지 세 작품이 제작되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재를 기록하고자 만든 다큐멘터리인 <오월愛>(No name stars, 2010), 내전으로 인해 고통받고있는 캄보디아 소수민족인 부농족의 삶을 담고자 했던 <웰랑 뜨레이>(Welling Trei, 2012), 그리고 앞서 언급한 <올 리브 올리브>가 그것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담아내고자 했던 <오월愛>는 감독이 자국의 상황을 촬영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면밀한 밀도와 동선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작품들은 모두 엄밀한 구상과 메시지를 설파하며 거시적인 의제에 천착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민중들의 삶을 여과없이 찍어나가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연동한다. 이들의 작품에서 일관된 시점과 구성이 결여된 대신, 수많은 인물들이 꺼내놓은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가 결집된 꼴라주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특성이 낳은 자연스러운 형식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월愛>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지점중 하나는, 수많은 광주의 시민들을 피학자들의 군집으로 손쉽게 묘사하는 대신, 5월 광주항쟁 당시에 계엄군의 소대장을 맡았었던 이의 죄의식과 트라우마, 현재는 그저 그 사건을 잊고 지내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의 이견들조차 일률적인 구성속에 구겨넣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감독이 스스로 자국의 상황을 다룰 수 있었던 <오월愛>와, 과거의 내전의 여파를 다루고 있는 <웰랑 뜨레이>의 이야기와 달리, 현재까지도 지속중인 분쟁을 담아낸 <올리브 올리브>에 나타난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훨씬 더 모험적이고 격렬하다. 가자지구의 현지인들마저 통행증을 발급받지 않는 이상 발걸음을 조금 옮기는 것조차 불가능한 타지에서, 김태일과 주로미 감독은 수많은 제약조건을 이겨내고 1년여의 시간을 그 곳에서 머물면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이곳에는 앞서 말했듯이 거시적인 조망과 정치적인 장광설이 부재하는 대신, 나블루스시의 검푸르스름한 야경 너머로 울려퍼지는 모호한 예배의 확성음만큼이나 섬뜩하고 우울한 공기가 스크린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그리고 그러한 현장속에서 여전히 그들의 전통적인 나무인 올리브를 심어나가며 투쟁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작은 행위의 숭고함이 있다. 수많은 담론과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와중에 역설적으로 잊혀질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미시사. 동시대의 극장에서 <올리브 올리브>를 감상한다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숭고한 민중사를 경험할 수 있는 희소한 사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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