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파트너, 퀴어 다큐멘터리

2017.07.23

내 삶의 파트너, 퀴어 다큐멘터리

신효진 시민에디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는 <터미네이터 2>가 방영되고 있는 TV앞에 나를 앉히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 말미의 ‘아윌비백 손가락’을 떠올리지만 본인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전라의 근육질 몸매로 동네 양아치를 제압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묘한 흥분감이 들었더랬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동성의 나체를 보고 성적으로 흥분을 한 최초의 기억이라 할 수 있겠다.

어머니의 영향이었을까? 터미네이터의 뒤태에 탄복하던 소년은 어느덧 영화를 좋아하는 어엿한 게이청년으로 성장했다. 돌이켜보면 청소년기에는 행복했던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누가 정한지도 모르는 기준에 의거하여, 학교라는 사회는 기준점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탄압했다. 마음속 깊이 있는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면 타자화되고(타인에 의해 까발려진 감정 역시도)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었기에 나는 소수자가 아닌 다수자인척 사는 것을 생존의 양식으로 삼았다.

명백한 자기검열이었다. 그러나 모든 자기검열이 그렇듯 나의 경우에도 학교사회가 강요한 ‘정상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영상을 통한 여성운동’을 지향하는 ‘여성영상집단 움’이 제작한 <이반검열 1>(Lesbian Censorship In School 1, 2005)과 <OUT: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Out: Smashing Homophobia Project, 2007)는 청소년기 성소수자가 고립될 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에 대해 다루는 대표적 퀴어 다큐멘터리다. 학교라는 규범적 삶의 양식 속에서 소수자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작품은 셀프카메라 방식으로 관객들과 소통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소녀들은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없다. 가방검사는 물론 연애편지라도 발견되는 날이면 교무실에 불려가 자신의 감정이 옳지 못한 것이라 짓밟히고, 가정통신문에는 날조된 이반[1]의 특징과 생김새까지 정의되어 배포된다. 퀴어에 대한 학교사회의 속박은 명백한 검열이고 어떤 이들은 이를 ‘이반검열’이라 명명한다. 영화는 10대 레즈비언 소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차별과 고립을 강요하는 학교 그리고 이 사회의 폭력적인 구조를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OUT: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Out: Smashing Homophobia Project, 2007)(출처 : 네이버영화)

학교는 프루크루테스의 침대였다. 나 역시 ‘이반검열’로 말미암아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숨기고,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위해 노력했다. 학교에서 난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끝없는 희롱과 괄시를 받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매일 아등바등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타인들이 나와의 다름을 단박에 포착하는 것은 단연 목소리였다. 놀림 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남들과 비슷해 보이기 싶어 목소리를 교정할 수 있는 이비인후과의 문을 두드렸었다. 이는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제15회 한국퀴어영화제(KQFF) 개막작 <두 아이 사운드 게이?>(Do I Sound Gay?, 2014)의 화자(이자 감독인 데이비드 소프)역시 나와 동일한 문제로 고민한다. 상대적으로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바꾸고 싶어 한다는 것. 게이의 목소리가 따로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이 영화에서 감독은 자신의 콤플렉스인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나 역시 목소리가 바뀌면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고, 그러면 조금은 녹록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발성훈련을 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목소리가 뭐 어때서. 그리고 설사 이상하더라도 왜 남들 기준에 맞추어 살아야 하지.”

<두 아이 사운드 게이?>는 게이 남성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봤을 통상적 사회규범의 문제를 유쾌하기 그려내는 영화였다. 자신을 잠식하는 근심과 정면으로 맞서면서 극복해나가는 감독의 용기에 (게이)관객들은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의 나도 작품 속 인물과 동일한 고민과 해결과정을 거쳤다. 더 이상 나는 조금은 특별하게 보일 수 있는 나의 목소리와 행동거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조금 여성스러우면 어떠한가. 사실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은 자체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사회가 만들어낸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두 아이 사운드 게이?>(Do I Sound Gay?, 2014)

이런 ‘끼스러운’ 목소리를 가진 ‘기집애같은’ 소년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가 끝나면 인사동 갤러리에서 미술 전시를 관람하거나 서울 근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나름 힘들었던 시기 미술과 영화는 삶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매혹적인 이미지와 재밌는 이야기에 앞에서는 그 어떤 고민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이 가고 대학에 입학할 때에도 나는 주저 없이 전공을 미술로 택하게 된다. 공부는 재미있지만 미래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던 3학년 어느 날. 교수님은 현대예술론 중간고사로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자화상에 드러나는 스투디움과 푼크툼을 기술하라[2]”는 문제를 제시했다.

<로버트 메이플 소프의 자화상>

(나름대로 솔직하게 기술된)과제를 제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님은 내게 ‘마스커레이드(masquerade)’라는 전시의 도록을 선물해주셨다. 추측하기로 남들보다 약간은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나보다. 부끄러움과 감사함이 공존하는 흔치않은 경험을 겪게 해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내게 꽤 의미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제8회 DMZ다큐영화제 ‘다큐초이스’ 섹션에서 상영된 <블랙 화이트 + 그레이>(Black White+Gray: A Portrait of Sam Wagstaff and Robert Mapplethorpe, 2007)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영화는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그의 연인인 샘 와그스탭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뉴욕 예술계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메이플소프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컬렉터이자 큐레이터 샘 와그스탭에 대해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지만 무엇보다 흑인 퀴어, 에이즈 환자등의 모델을 화면에 담음으로써 정치적 구속을 벗어나려했던 메이플소프의 사진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하다.

<블랙 화이트+그레이>(Black White+Gray: A Portrait of Sam Wagstaff and Robert Mapplethorpe, 2007)

내 나이 이제 스물아홉. 많은 돈은 못 벌지만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평생을 지내신 아버지께서는 틈날 때마다 결혼은 언제 할 것이냐고, 하루빨리 장가가는 것이 늙어서 좋다는 등의 말들로 아들의 결혼을 재촉한다. 그럴 때 마다 내가 속으로 하는 말 “아버지 저는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법으로 인정받는 결혼을 할 수가 없답니다.” 영화감독 김조광수와 그의 파트너 김승환의 결혼과정을 그린 장희선 감독의 다큐 <마이 페어 웨딩>(My Fair Wedding, 2014)을 보고 있노라면 먼 훗날 내 모습에 대한 상념에 잠긴다. 내 평생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사회적 메시지가 기본적으로 내포되어 있지만 이 다큐의 진면모는 결혼을 앞둔 여타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의견 충돌하기도 하고 서로의 서글픈 마음을 보듬어 안아주기도 하는 둘의 소소한 일상과 사건들이다. 결혼을 앞두고 여러 사건을 겪으며 한 단계 성숙해지는 둘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둘의 사랑이 핍박받지 않고 축복받기를 빌어주게 된다. 또 우여곡절 끝에 공개적인 동성결혼이라는 큰 이벤트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치룬 커플의 용기에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이페어웨딩>(My Fair Wedding, 2014)

광장의 다양한 목소리로 인해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성소수자 관련 정치는 ‘나중에’로 대표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가진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최소한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 이슈는 대중정치인이 세운 정치 계산식의 작은 항에 불과하다. 표의 소탐대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퀴어 다큐멘터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의 역할을 간단히 이야기하기란 너무나 복잡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매체로써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세상에 대한 불만과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든다. 그리고 이렇게 제작된 다큐는 관객들을 각성하게 만들어 준다. 나와 같은 소수자들의 이야기로 함께 연대하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다양성 넘치는 다큐가 많이 제작되어 보여지기를. 그리고 이러한 다큐들이 미미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세상으로 변화시키기를. 나는 오늘도 무지갯빛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는 더 많은 다큐멘터리를 기다린다.


[주1] 성소수자. 한국의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로 이성애자들을 ‘일반(一般)’으로 일컫는 것과 구별해서 ‘이반(二般)’이라고 한 것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서 성소수자 운동이 시작되면서 이반은 이성애자들과 다른[異]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異般’으로 확대되어 사용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 이성애제도에서 벗어난 성적소수자 전반을 포괄하는 의미로 이해되며 ‘퀴어queer ‘의 번역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 용어사전)

[주2] 스투디움과 푼크툼은 롤랑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스투디움(studium)이 사진을 보고 느끼는 관습적인 정보라면 푼크툼(punctum)은 보는이를 ‘찌르는’ 사진의 효과 즉 주관적인 해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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