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의 약진, 대안영화의 희망

2017.07.23

다큐멘터리의 약진,
대안영화의 희망

김영진 전주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지난 해 말 전주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자격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제 평가위원회 평가 자리에 참석했던 나는 한 위원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전주영화제는 독립 대안을 표방하는 영화제인데,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가 지나치게 부각 받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장기적으로는 영화제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주영화제는 다른 영화제와 달리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따로 분리해 섹션을 두고 상영하지 않으며 경쟁부문에도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함께 포함되곤 한다. 그 위원의 질문은 현재 한국독립영화계의 현 상황을 가리키는데, 극영화는 전반적으로 하향세 또는 슬럼프이고 다큐멘터리는 약진하고 있는 추세 말이다. 이건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어떻게 조정해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큐멘터리가 극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걸 어쩌란 말인가.

극영화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해진 것인지 잠시 돌이켜 맥락을 더듬어보자. 양익준의 <똥파리>(Breathless, 2008)가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킨 이후 그 영화가 기록한 12만 여명의 극장 관객 수는 한국 독립 장편 극영화가 다시 도달하기 힘든 기록이 돼버렸다. 그게 2009년 일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똥파리>는 독립장편 극영화로는 흥행이 잘 된 편이어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 것이 아니다. 그 영화가 품고 있는 불화의 기운이 셌고 다른 영화들이 그 기운을 물려받을 거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당시 독립영화계에는 있었다. 기성 영화에선 담아내기 힘든 수위로 사회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는데 그걸 그때까진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과 배우들이 해냈다는 게 다음 세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처럼 보였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신호는 착각이었고 말 그대로 희망사항에 그쳤다.

1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 상업 장편영화 천만이 넘는 것과 비슷한 대접을 받는 독립장편 극영화의 물적 토대는 열악하다. 저예산 독립장편 극영화에서 스탭 대다수는 재능 기부 수준의 개런티를 받으며 일하며 아직 무명인 배우들도 경력을 쌓는다는 명분으로 이 작업에 참여한다. 거의 유일한 젖줄은 나라에서 주는 펀드인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독립영화는 곧 반정부 영화라는 등식이 정권 엘리트들의 뇌리에 자리 잡으면서 이 펀드의 규모는 말도 안 되게 쪼그라들었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젊은이들의 절망은 희망을 전제로 한 분노가 아니라 자조로 가라앉았다. 독립 장편 극영화들의 경향도 조금씩 바뀌었다.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옥탑방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의 미시적인 일상사를 그리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삶에서 겨우 버텨내는 식물성 인간의 냉소적 자기 관조가 주된 경향이 되었다. 그게 아니면 빡빡해진 상업영화의 투자 필터링에서 밀린, 규모는 저예산이되 상업적 장르 이야기체 영화를 지향하는 영화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분야는 좀 다른 것 같다. 독립장편 극영화들이 점점 연성화 되고 저예산 장르영화와의 구별점이 희미해지고 있는 반면에 독립 장편 다큐멘터리들은 극영화가 다루지 못하는 정치적, 사회적 금기의 영역까지 소재를 확장해 논쟁거리를 만들어냈다. 개인적 문제에서 출발하더라도 궁극에는 사회적 의제에 다다르는 소재의 확장성 면에서 극영화에 비해 훨씬 솔직하고 과감하다. 지난 5년 동안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나는 출품 신청작들 가운데 선정하지 않을 것이 뻔한 데도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들은 대부분 다큐멘터리라는 걸 깨달았다. 완성도와 상관없이 다큐멘터리에는 극영화가 다루지 않는 생생한 스토리와 이미지가 있었다. 극영화가 이야기의 문법이라고 하는 틀에 묶여,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관습에 기초해 삶을 규격화하고 결론짓는 것에 비해 다큐멘터리는 종잡을 수 없이 풍부하게 삶을 직관하는 것들이었다.

<자백>(Spy Nation, 2016)(출처 : 네이버영화)

지난 몇 년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다큐멘터리의 예를 들어 이 주제를 좀 더 설명해보겠다. (DMZ국제다큐영화제 관계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먼저 사회 정치적 문제를 다룬 작품의 경우,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실 규명을 추구하는 저널리스틱한 접근이 돋보이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해 개봉했던 <자백>(Spy Nation, 2016)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전에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2 Doors, 2011)도 비슷한 시도를 보였는데 사건의 맥락을 재구성해 극영화보다 더 극적인 긴장감을 주면서 진실에 다가서려 했던 영화였다. <자백>의 최승호는 아예 그 맥락적 진실 추구의 행위자로 감독 자신과 카메라를 든 스탭들을 설정하고 그들 스스로 화면 안에 등장하는 걸 개의치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간첩으로 조작당한 피해자들만큼이나 그들을 간첩으로 조작한 가해자들을 화면에 등장시키기 위해 감독과 스탭들은 부지런히 카메라를 들고 움직인다. 국정원 측이 조작한 서류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취재진이 중국에 직접 가서 카메라로 증명을 해 보이기도 한다. 마이클 무어가 <로저와 나>((Roger & Me, 1989) 이래 줄곧 과시하는 쇼맨십, 나는 진실과 정의의 편에서 상대편 사람들을 만나 공격하고 의견을 묻겠습니다, 라고 하는 태도와 닮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놀랍게도 저널리즘 접근이 통해 진실을 밝혀내며 일시적이지만 정의가 승리한다는 서사를 완성시킨다.

<로저와 나>((Roger & Me, 1989)(출처 : 네이버영화)

<자백>이 담고 있는 것은 예전같으면 텔레비전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다룰 만한 내용이며 최승호 감독이 방송국에 몸담고 있던 시절 잘 했던 분야의 소재이기도 하다. 지난 10여년간 악화된 언론 환경 때문에 시사문제의 진실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이 사라지면서 <자백>같은 다큐멘터리가 화제를 끌게 된 사회 환경이 퇴행적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으나 <자백>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형식이 아니라 극장용 장편에 걸맞는 충분한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친절하게 사건의 전개를 보여주고 논평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건의 맥락을 다각적으로 다루되 장면의 막간마다, 혹은 한 쇼트의 전개 과정 내에서 관객의 호흡을 기다려주고 관객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주는 편집의 톤은 이 저널리스틱한 다큐멘터리가 극장에 걸릴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버블 패밀리>(Family in the Bubble, 2017)(출처 : 네이버영화)

<자백>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짧고 명확한 호흡을 보완하면서 시사적인 소재를 극장용 다큐멘터리의 서사 규모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냈다면 매우 개인적인 홈 다큐멘터리 무비 호흡으로 개인사와 사회적 흐름을 겹쳐놓는데 성공한 작품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요즘 경향이다. 다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상영됐던 다큐멘터리를 예로 들면, 부동산 투기(요즘은 부동산 투자라는 말을 쓴다)를 소재로 감독 개인의 가족사에서 한국 현대사의 명암을 건져 올린 마민지 감독의 <버블 패밀리>(Family in the Bubble, 2017)가 좋은 예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도시 개발의 붐을 타고 부동산 투자에 인생을 걸었던 감독 부모의 일생을 다루면서 한때 벼락부자가 되었으나 과다 투자로 인해 부도를 맞은 후 IMF 외환위기를 겪고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진 한 집안의 일상을 조명하고 있다. 화자인 감독은 여전히 재기 가능성을 꿈꾸는 그의 부모의 돈에 대한 열망과 가난을 겨우 버티는 가족의 일상을 세세히 포착하면서 부동산 자본주의로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한 자락을 성찰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가족의 역사가 비극도 희극도 아닌 그저 일상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딱히 어떤 구체적 분석을 시도하려 하는 것도 아니며 감독의 부모, 특히 그의 어머니는 어떤 극영화에서도 그려낼 수 없는 복합적이고 매력적이며 모순에 가득 찬 캐릭터로 다가온다. 생활력이 강하고 친화력이 대단하며 절대 낙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감독의 어머니가 자신의 잣대로는 도무지 잡아챌 수 없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부동산 투자 불패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며 개인들의 그러한 신념과는 별개로 다수의 실패자를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을 경쾌하게 비판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플롯은 어떤 분석적 논문보다 생생하다.

<B급 며느리>(Myeoneuri – My Son’s Crazy Wife, 2017)(출처 : 네이버영화)

개인들의 삶에서 보편적인 사회 갈등을 포착하는 점에선 선호빈의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Myeoneuri – My Son’s Crazy Wife, 2017)도 탁월한데,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을 소재로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유산에 맞선 젊은 여성 개인주의자의 반항을 시종일관 가벼운 관찰 톤의 카메라로 따라가면서 현대적 삶의 형태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는 낡은 인습의 그림자를 자학적인 풍자로 담는다. 카메라의 화자가 주인공인 며느리의 남편이기 때문에 이런 접근은 더욱 통렬하다. 카메라를 든 감독은 주인공인 아내의 반란에 때로 동조하고 때로 짜증을 내면서 개인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따뜻한 성품의 사람들이 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신분으로 갈라서 서로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한탄한다. 이 처절한 갈등과 대결의 연대기는 물론 정해진 결론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이게 미결의 진행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이게 진짜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갈등의 되풀이 속에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만큼 인물들이 갇혀 있는 감옥 같은 가부장제 인습을 향한 원망이 화면에 맺히는데 동시에 그런 상황에서도 주인공들은 어떻게든 명랑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또한 경이적이다.

기성 언론이 담지 못하는 저널리스트적 접근을 추구하며 영화적 그릇에 담는 경향과 미시적인 일상사를 거시적인 사회정치적 흐름과 포개놓는 경향이 최근 다큐멘터리의 두 흐름이라고 한다면 박문칠의 <파란나비효과>(Blue Butterfly Effect , 2017)는 이 두 경향을 동시에 껴안은 작품이다. 그의 데뷔작 <마이 플레이스>(My Place , 2013)가 정치적 견해 차이를 지닌 감독 자신의 가족 이야기에서 냉전시대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한국사회의 역사를 상기시킨 것이라면, <파란 나비 효과>는 감독이 몰랐던 한 마을의 실제 거주민들의 일상적 삶에서 그들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각성된 시민으로 거듭나는가를 진솔하게 관찰한다. 사드 배치 반대 투쟁에 나선 성주 사람들을 담은 이 영화에서 자기 아이들이 도시 아이들과 달리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을 향유하도록 성주에서의 삶을 택했던 여성들은 그 공간의 오염이 걱정되어 싸움에 나섰다가 이게 자기들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 그걸 투쟁 현장에서의 열렬한 연설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자연스레 감각되도록 한다는 게 이 다큐멘터리의 미덕이다. 사드 반대 투쟁을 조직하느라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지다가 그들이 각자의 생업에 복귀해서 일을 할 때, 그들의 각자 일상에서 이미 체화된 나눔과 공감의 가치를 행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장면들은 큰 배음 효과를 만들어내며 끝나지 않는 결말 앞에서도 굉장한 메아리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그들의 싸움을 방해하는 내부의 적, 성주 군수를 비롯한 그 동네 기득권 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향해 인상적인 태도를 보여주는데, 굉장히 밉고 혐오스러운 상황 속에서 내부의 방해자들에게 거세게 맞서는 행동을 하면서도 그들은 방해자들이 알고 보면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일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겸허하며 예의를 잃지 않는다.

<파란나비효과>(Blue Butterfly Effect , 2017)(출처 : 네이버영화)

이제까지 거론한 다큐멘터리들의 이런 미덕들을 극영화에선 흔히 정반대 방식으로 보여준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상업 장편영화들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재난을 은유하는 서사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왔는데 상당수 영화들에서 그 서사의 내적 동력은 기만적이고 착취적이다. 거대한 재난이 일어나고 주인공이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구하려다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이 뒤따르며 이를 통해 비극적 파토스를 만들어내는 식의 구성은 관객의 기대지평에 호응하려는 나머지 인위적인 비극 창출을 통해 빚어지는 비윤리적 자기모순의 덫에 빠지는 위험을 어쩌지 못한다. 최근 몇 년 동안의 흐름을 보면, 나는 이런 상업영화에 대한 해독제로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미시적, 거시적 삶의 동시 포착 시도가 훨씬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안의 흐름은 이쪽에서 더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다. 뚜렷하게 융기하는 그 흐름을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며 앞으로도 (DMZ국제다큐영화제는 당연하고요!)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한 다수의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가 극영화 못지않은 주목을 받고, 굳이 <노무현입니다>(OUR PRESIDENT , 2017)의 기적 같은 흥행 성공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점점 더 많은 다큐멘터리가 영화제의 플랫폼 효과를 업고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앞길도 그런 면에서 창창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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