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에도 작가가 있나요?

2017.07.23

다큐멘터리에도 작가가 있나요?

양희 다큐멘터리 작가

 

영화를 개봉하고 GV를 하게 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다큐멘터리인데 [1] 왜 작가가 있나요?” 혹은 “ 다큐멘터리에서 작가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라는 것이다. 주로 내레이션이 없는 다큐멘터리의 경우 관객들은 작가의 역할을 더욱 궁금해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다큐멘터리는 곧 사실 인데, 사실이라면서 ‘작가’ 즉 뭔가 만들어내는 사람이 왜 있냐는 측면에서의 질문이다. 방송 다큐멘터리에서는 작가의 존재 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묘하게도 극장 다큐멘터리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화제의 TV 다큐멘터리들 <북극의 눈물>(좌), <차마고도>(우)> (출처 : 네이버영화)

‘다큐멘터리’ 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장 보다는 TV를 떠올린다. 극영화가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면 다큐멘터리는 주로 TV 방송을 통해서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관객들에게 ‘다큐멘터리’는 TV라는 매체를 통해 무료로, 집에서 편히 볼 수 있는 방송 포맷 중 하나로 인식돼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경험과 시청 형태로 인해 아직도 극장 개봉 다큐멘터리가 관객들과 만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2004년 선 댄스 영화제 본 상을 받은 김동원 감독의 <송환>(Repatriation, 2003)을 시작으로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Our School , 2006), <워낭소리>(Old Partner , 2008), <울지마 톤즈>(Don’t Cry for Me Sudan , 2010), <두 개의 문>(2 Doors , 2011),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My Love, Don’t Cross That River , 2014), <다이빙벨>(The Truth Shall Not Sink with Sewol , 2014), <자백>(Spy Nation , 2016), <노무현입니다>(Our President , 2017) 등 정도가 관객들이 기억하는 한국 다큐멘터리 일 것이다. 2016년 만 살펴보더라도 한해 동안 극장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 302편 가운데 다큐멘터리는 약 30여편으로 스크린수나 상영 회차가 아닌 개봉 편수로 단순 비교를 하더라도 십분 일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다큐멘터리의 TV 의존도는 더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방송 다큐멘터리와 극장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구별점은 방송은 영상보다는 해설에 강하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방송이라는 일방적인 매체를 수용자가 보다 쉽고 이해 가능하도록 친절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해하기 어렵고 구성이 난해 하다면? 그것은 곧바로 채널 이동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채널은 돌아가고 애써 만든 방송은 외면 당한다. 그런 매체의 특성상 방송 다큐멘터리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하도록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해설의 역할을 하는 내레이션이 있어 듣고 보면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심지어 자막도 꽤 자상한 편이다. 작가는 연출자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주제와 소재를 정하며 사전 취재와 내용 구성을 협의한다. 그리고 촬영 및 편집 구성을 하고 내레이션까지 쓰고 나면 작업은 마무리 된다. 작가는 기획 단계부터 제작 전 과정에 관여하게 되는데 그 중 편집 구성과 내레이션은 작가의 고유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방송 다큐멘터리에는 내레이션이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느끼는 작가의 역할은 확실하다.

반면 극장 다큐멘터리는 직접 화법인 내레이션보다는 주로 영상과 여백, 현장음과 인터뷰 등을 사용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한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작가의 역할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극장 다큐멘터리 관객들로부터 ‘다큐멘터리에도 작가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렇게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본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있는 그대로’를 촬영하여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있나요?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그저 있는 그대로 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관객들도 안다. 누군가의 관점에 따라 촬영되고 편집, 재구성되었다는 것이다. 해답의 실마리는 여기서 찾아진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데서 작가의 역할도 생겨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출처 : 네이버영화)

다큐멘터리 작업 과정은 극영화와 많이 비교된다. 단순하게 이야기 하면 시나리오를 먼저 쓰고 그에 맞춰 전문 배우가 연기를 하느냐 아니면 시나리오 없이 실제의 인물의 상황을 찍고 그것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쓰느냐 하는 차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극영화는 시나리오를 미리 쓰고 나서 그에 따른 콘티를 만들고 촬영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충분한 자료조사와 사전 인터뷰 등을 통해 발생 가능한 사건을 예측하고 캐릭터를 분석하는 구성의 과정을 거친다. 마치 집을 지을 때 전체적인 집의 모양을 결정하고 방과 거실, 주방 등 중요한 공간을 배치하는 것과 같다. 촬영 전에는 설계도를 그리듯 미리 전체적인 흐름과 촬영 장소, 사건 등을 정한다. 이를 촬영 구성안이라고 하는데 그 안에는 현장에서 꼭 필요한 이미지나 내용 등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적어 촬영 현장에서 꼭 촬영해야 할 내용과 진행되는 사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성이기 때문에 감독은 현장 상황에 즉각 적으로 반응해야 하며 신속하게 판단하여 촬영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경우엔 촬영이 시작된 후 주인공의 출연 거부 통지를 받았다. 두 분 모두 건강도 좋지 않기도 했지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여러 번의 대화 끝에 두 분의 뜻을 존중해 드리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제작 자체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구성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했다. 다각적인 논의와 조율을 통해 두 분이 전면적으로 출연하는 것 대신 출연을 허락한 가족이나 후원인, 이웃 등에 대한 촬영으로 두 사람의 인생과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야 했다. 주인공 대신 주변 인물과 풍경,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한국의 소록도에서 주로 촬영하기로 하였다.

 

<노무현입니다>(Our President, 2017)(출처 : 네이버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감독과 작가는 프리뷰를 하면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주인공들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논의 한다. 이 과정에서 인물의 중요도가 변하기도 한다. <노무현입니다>의 경우엔 주인공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과 관계된 인물들을 파악한 뒤 중요도가 높은 인물 60여명을 선정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준비 단계에서는 인권변호사 시절을 증언해 줄 부림 사건 피해자들이나 정치 활동을 함께 해 온 참모나 보좌관 등의 중요도가 높았다. 하지만 실제 인터뷰가 시작되자 뜻밖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변호사 시절 운전기사였던 노수현씨와 안기부 정보원이었던 이화춘씨, 선거 전략가인 배갑상씨 등 이었다. 세 사람은 기존에 발간된 책이나 인터뷰에 거의 노출이 되지 않았던 인물이었는데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진솔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사전 구성 단계에서는 중요도가 낮은 인물 이었지만 인터뷰를 거치면서 중요도가 높아져 메인 출연자가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전체 촬영이 끝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이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설계도 정도였던 상태에서 발전해 구체적인 집의 모양과 재질, 벽지와 바닥의 모양과 색, 인테리어 등이 결정되는 과정이 바로 이 단계이다. 작가와 감독은 프리뷰를 하고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촬영 전과 어느정도 달라질지 살펴보고 편집에 포함시킬 씬을 정한다. 내레이션이 없는 형식이라면 해설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막이나 인터뷰를 골라서 배치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극영화에서의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편집될 영상을 먼저 글로 쓰기도 하는데 이를 편집 구성안이라 부른다. 전체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나누고 씨퀀스를 배열한 다음 필요한 씬을 넣고 내용의 전개나 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적절한 인터뷰를 찾아 넣는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경우엔 두 사람 외에도 당시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소록도, 한센병 등에 대해 관객에게 주어야 할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았다. 이미지로만 연결하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을 것 같아 최소한의 내레이션을 넣기로 하였다.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도록 가능한 담백하게 그러면서도 전후좌우를 파악할 수 있도록 원고를 써야했다. 작가는 원고를 쓰는 사람인데 사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경우엔 덜어내는 작업을 더 많이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최소한으로 줄였다. 그 여백은 폭우가 쏟아지는 소록도 앞바다나 벚꽃이 날리는 두 사람의 관사, 하염없이 내리는 눈과 끝없이 이어지는 철길들로 채웠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씬 이었다. 주인공인 두 사람은 맨 마지막 씬에 가서야 비로소 한 프레임 안에 나란히 앉는다.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앉아 기도를 드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선 어떤 내레이션도 그 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것이 최선의 원고였다. 그래서 그 곳은 써 두었던 원고를 모두 지우고 빈 여백으로 남겼다. 이렇듯 영상을 글로 바꿔 편집 구성안을 쓰고 나면 편집 기사와 감독이 그 원고를 지도 삼아 편집을 시작한다. 실제 편집이 시작되면 디테일한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생기기도 하고 전체 흐름이 뒤바뀌기도 한다. 글로 읽었을때와 영상이 붙었을때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엔 가편집을 한 후에 전체적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이 단계에서 감정과 톤이 맞지 않거나 흐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터뷰는 바꾸거나 삭제 한다.

<노무현입니다>는 영화를 위해 따로 촬영을 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송사와 개인, 단체들이 찍어둔 촬영 소스인 ‘푸티지(footage)’를 사용한 다큐멘터리다. 기존의 작업과 달리 이 경우엔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필요한 인터뷰나 장면 등을 예측한 구성안을 먼저 작성하고 그에 맞춰 푸티지를 찾고 필요한 인터뷰를 촬영 하였다. 푸티지의 양이 방대한데다가 막상 꼭 필요한 소스가 누락된 경우도 많아 편집에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감독과 작가가 오랜 토의를 거쳐 극적인 요소를 만들고 전개에 필요한 씬들을 구축해 내면 편집 기사와 조감독이 일일이 푸티지들을 확인하며 필요한 커트들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제작이 진행되었다. 필요한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찾아낸 푸티지들로 가편집을 하고 나면 감독과 작가는 다시 전체적인 흐름과 디테일을 논의하고 감독이나 작가가 찾아낸 커트를 추가하여 가편집을 수정하였다. 끊임없이 돌고 돌며 되풀이 되는 편집과 수정.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최종 편집이 나왔다. 작가는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감독, 편집 기사와 의견을 주고 받으며 작품의 뼈대를 만들고 결을 다듬게 된다.

많은 작가 선후배들이 방송과 영화 중 어느 쪽이 더 흥미로우며 보람을 느끼느냐고 묻는다. 사실 그 둘은 같은 듯 하면서 아주 다르다. 방송은 반복적이면서 일회적이라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전보다는 많이 쇠락했지만 채널 파워가 강력하다는 것도 제작에 참여한 작가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반면 영화는 보통 1년 이상 작업 기간을 가지기 때문에 준비 과정이 길다. 쫓기듯 방송을 하다 보니 영화를 제작할 때는 충분한 시간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 감독과 함께 여러 영화를 다양하게 보면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장단점을 따져 작품에 응용할 부분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도 즐겁다. TV와 달리 관습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업 기간은 길지만 주제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더욱 치열하다. 영화가 개봉되는 그 순간까지도 감독과 작가는 ‘우리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는다. 영화가 상영된 후 관객들과 만나는 시간도 소중한 경험이다.

다큐멘터리에도 작가가 있나요? 안타깝게도 이 질문은 한동안 더 듣게 될 것 같다. 작가가 참여하는 극장 다큐멘터리도 많지 않은데다가 그 역할이나 영역이 아직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이나 편집기사와의 공통 분모가 많고 겉으로 드러나는 역할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제나 불분명한 것 가운데에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작가의 역할 역시 그렇다고 본다. 작품이 가지는 주제를 선명히 하고 구조를 탄탄하게 하며 이야기의 전개를 흥미롭게 펼쳐내는 사람, 무엇보다 관객과 감독의 거리를 좁혀주는 역할이 바로 작가의 몫일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딱 잘라 작가의 일을 말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관객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을 그 무엇인가를 만드는 사람이 다큐멘터리 작가라고는 답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도 작가는 있다.

 

작가 양희
1993년 방송을 시작하여 현재는 EBS 의학다큐멘터리 『명의』를 집필하고 있으며, 극장 다큐멘터리로는 『길 위에서 』,『명량:회오리바다를 향하여』,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무현 입니다』 등을 집필하였다.


[주1] 이 글에서는 TV를 통해 방송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 다큐멘터리,극장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는 극장 다큐멘터리로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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