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가람 감독의 작품들에 대하여

2017.07.09

침묵과 얼굴, 그리고 풍경의 영화:
강유가람 감독의 작품들에 대하여

김신 시민에디터

 

영화 제작을 희망하는 신인 감독들은 통상적으로 극영화를 연출하는 것으로 그들의 이력을 시작한다. 아마도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유별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영화 감독 지망생들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영화계에 입문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드문 일이다. 혹은 그런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추후에 극영화 연출로 방향을 선회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감독인 동시에 한 명의 영화 관객이기도 한 그들 또한 대다수의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좀 더 극적인 감흥을 제공하는 서사 예술에 매혹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제작된 <이태원>과 <시국페미>라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로 국내 영화제를 방문하고 있는 강유가람(Garam KangYu) 감독 또한, 맨 처음 영화계에 입문할 때에는 극영화를 다루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각별히 허우 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의 나지막하고 온기어린 영화적 세계에 감화되었었던 그는, 극적인 갈등의 곡선을 그리는 이야기 대신 인물들을 조용하게 어루만지는 카메라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매혹되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력을 시작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모래>(2011)와 <이태원>(2016)의 두 장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2015년에 제작된 유일한 단편 극영화인 <진주머리방>에서도 그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주의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최근에는 <시국페미>라는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방문한 그의 영화들에 대해 짧게나마 말해볼까 한다.

<이태원>

강유가람 감독이 작년에 제작한 <이태원>에는 인상깊은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강 감독은 서로 다른 두 화면들을 대조적으로 병치시켜 놓았다. 늦은 밤의 이태원을 환히 밝히는 화려한 네온사인 밑에서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소란스러운 파티를 보여주더니 바로 다음 순간, 카메라는 피로에 가득찬 얼굴로 한숨을 내뱉는 75세 나키의 얼굴로 옮겨간다. 나키는 이태원의 미군 클럽에서 몇 십년동안 일해왔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힘겨운 몸을 이끌고 인근의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며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나키는 말한다. “밤마다 이태원이 아주 꺼지겠어.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상권들은 연일 활황인데다가, 하루에도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태원을 방문하며 축제를 벌이고 있는데 왜 정작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나키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인가. 현대 사회에 드리운 자본화의 괴이한 비대칭성을 간결한 방식으로 질문하는 이 몽타주야말로 강유가람 감독이 천착해온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집약하는 장면이다.

<모래>

강 감독이 촬영한 세 작품들은 모두 이와 같이 공간을 둘러싼 자본의 비대칭성에 질문한다. 2011년에 촬영해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한국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던 첫번째 작품 <모래>에서는 90년대말부터 2000년대 말까지 강남 인근을 휩쓸었던 재개발 광풍의 이면에 누적된 소시민들의 애환을 은마 아파트에 살았던 감독의 자전적인 가족담으로 풀어냈다. 2000년대 초중반에 걸쳐 천정부지로 상승한 땅값이 만들어낸 재개발 신화에 탑승하기 위해, 많은 이들은 빚을 대출해서까지 은마 아파트로 옮겨 살고자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의 집값 상승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이제 그들은 거액의 이자와 빚에 짓눌리게 된 하우스푸어의 신세로 전락하게 되어버렸다. 2015년에 촬영한 단편 극영화 <진주머리방>에서는 오랫동안 “진주머리방”이라는 미용실을 동네에서 꾸려온 중년 여성이 새로운 전입자들에게 공간을 내주고 떠나야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그들과 사소한 마찰을 겪게되는 일화를 그렸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가장 최근작인 <이태원>(2016)에서도 그 개발주의의 맹점은 고스란히 나타난다. 최근 이태원에 위치한 용산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확실시되자, 물밀듯이 침략해온 재개발 계획으로 인해 많은 이들은 수십년동안 거주해온 장소로부터 떠나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태원>은 그 곳에서 수 십년 동안 살아왔으나, 이제는 불투명한 미래의 전망과 맞바꿔 터전조차 상실하게 된 세 여인들의 삶을 바라본다. 일련의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듯이, 강유가람 감독은 한국 사회를 휩쓸고있는 발전주의적인 가치관에 동승하지 못한 채 왜소화되어, 어느새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 이들을 바라본다. 이태원이라는 “힙한” 대명사, 강남이라는 “부의 상징”이 포섭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기거하는 이들에 시선을 비추고자 하는 것이다.

<진주머리방> (출처 : 네이버영화)

다큐멘터리의 제작자로서 그의 작품들의 인상깊은 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는 면밀한 구상과 각본에 의지하기보다는 현장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순간의 촉각적인 활력에 매료되어 있는 것 같다. 현재까지 제작해온 모든 작품들의 촬영 환경에서 그는 미리 설계해온 계획의 구체성이 허물어지는 순간의 즐거운 무력함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면서, 역사의 주류 서사로부터 환대받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작업에 흥미를 느꼈던 그는 정해진 노선으로 진행되는 서사보다 정확한 구성을 결여한 채 발화자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분방한 태도를 내면화해왔다. 그는 스스로를 영화 제작의 엄격한 총괄자가 아닌, 작품의 내부에서 대상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예민한 경청자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그의 작품들이 명시적인 내레이션과 자막으로 설명을 과도하게 늘어놓지 않는다는 점은 이러한 태도가 은연중에 낳은 미학적인 형식일 것이다. 대신 그는 촬영되는 피사체가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까지 기다리는 태도를 견지한다. 침묵과 여백으로 가득찬 이 화면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창작자의 시선에서 대상화된 타자의 면모가 아닌, 화자 스스로가 자신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증언하고자 하는 순간이 출몰하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드디어 그들이 카메라의 전면에 나와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 지난한 기다림의 순간 끝에서 피어난 순수한 장면들의 질박한 감흥앞에서 말을 덧붙이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강 감독의 작품속에서 사진이라는 사물이 반복적으로 출몰하는 이유도 이와 유관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태원>과 <모래>의 첫 장면이 피사체들의 사진을 비추는 행위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비단 첫 장면뿐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사진과 비디오 클립들에 담긴 기억들은 그의 영화들 속 곳곳에서 뚜렷한 맥락없이 출몰하며 촬영되는 인물들의 기억을 영화가 촬영되는 시점의 순간들과 병치시킨다. 그리고 사진이라는 물질적 전사(轉寫)물이 아무 말 없이도 누군가의 축적된 기억을 증언하듯이, 강 감독 또한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드러내 보이는데 성공한다. 그것은 촬영하는 이들의 얼굴에 새겨진 개인의 기억과 역사이기도 하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갖가지 스펙타클과 자본의 포화속에서 우리가 망각해버린 공간의 고유한 역사이기도 하다. 강감독은 잊혀져가는 개인과 공간의 역사가 필사적으로 망각에 저항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순간을 어떤 작위적인 구성도 배제하고 드러낸다. 그러니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은 설명과 사건의 영화가 아닌, 침묵과 얼굴, 그리고 풍경의 영화들이다. 어쩌면 이러한 겸손한 태도야말로 강 감독의 연출적 기원이 다큐멘터리에 밀접해있음을 보여주는 요소가 아닐까.

앞서 말한 “자유롭다”는 특징은 개별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특징일 뿐만 아니라, 강유가람 감독의 행보 그 자체를 묘사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은 각자 다른 대상을 찍었지만 그 대상들은 마치 서로 관계를 맺고 호흡을 하듯이 서로 느슨한 연결고리를 공유한다. <모래>에서 감독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손수 머리를 만져주는 행위는 이후의 작품인 <진주머리방>과 <이태원>에서 머리를 만진다는 행위로 반복되어 등장한다. 또 세 작품들은 공간과 재개발에 관한 작품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논평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연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은 최근 작품으로 올수록 점점 더 확장된 방식으로 논의되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작인 <이태원>은 이태원의 재개발에 대한 작품임과 동시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한국의 현상황을 고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세 작품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마치 하나의 인격체에 들어선 세포들처럼 서로 교섭하고, 분기하며 관심과 논의를 점점 더 확장해 나간다. 그러니 언제나 완료형이 아닌, 과정체로 존재하며 여성과 공간의 문제를 예민하게 주시해온 그가 <시국페미>로 “광장의 여성혐오”를 적시하고자 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시국페미>뿐만 아니라 현재도 작업중이라고 하는 그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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