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자와 기록되는 자의 이야기

2017.07.09

기록하는 자와 기록되는 자의 이야기:
<밀양 아리랑> 박배일 감독, 김우창 활동가와의 만남

강희정 시민에디터

 

제6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던 영화 <밀양 아리랑>을 관람하던 중 마지막 장면에서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다. 한 학번 위의 대학교 선배였다. <밀양 아리랑>은 765kV 송전탑이 설치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밀양 주민들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고, 그 선배가 밀양 송전탑 대책위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었기에 확실했다. 스크린에 투영된 그의 모습에서 묘한 숭고함을 느꼈지만 거기까지였다. 평소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고, 밀양에 대해서도 잊고 지냈다. <밀양 아리랑>은 그 해의 독립다큐멘터리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누적 관객수가 3,010명에 그치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고, 행정대집행으로 농성장은 강제 철거되었다. 이후 철탑은 완공되었으며 어느덧 시험 송전이 시작된 지도 17개월이 지났다. 10년의 투쟁과 치열한 기록의 과정이 무색해지는 결과였다.

<밀양 아리랑>

그렇다면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는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현장에 뛰어들었던 행위자와 기록자의 삶에 밀양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밀양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밀양 행정대집행 3주기를 앞두고 박배일 감독과 학교 선배인 김우창 활동가를 만났다. 박배일 감독은 부산에서 다른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중이었고, 김우창 활동가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 입학하여 국가에너지정책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잠시, 두 사람은 자연스레 밀양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회고에 잠기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할머니들은 경찰들이 올 때마다 카메라가 없으면 불안해했다.”

 

김우창 활동가는 카메라를 통해 행위자들이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카메라가 그것을 기록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박배일 감독이 처음 밀양에 갔던 이유도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현장의 사람들 곁에서 카메라만 들고 있자 라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실제로 카메라의 등장 이후 경찰들의 폭력 수위는 낮아졌고, 반대로 경찰들의 불법 체증에 대해서는 활동가들이 법률적으로 대응했다. 박배일 감독은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가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현장에 들어가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 뒤로 저 멀리 농사를 짓고 있는 또 다른 할머니의 모습이 겹칠 때면 무엇을 찍어야 할지 혼선을 빚었다면서, 카메라의 역할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박배일 감독은 미디어 활동가와 감독의 역할을 구분하기보다, 때와 상황에 맞게 카메라의 역할에 집중하자고 정리를 내렸다. 그렇게 현장에 머무르며 언론에서 드러나는 이미지가 아닌 주민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3년 동안 기록했다.

<김우창 활동가(좌), 박배일 감독(우)>

<밀양 아리랑>이 나오기 전에 공개되었던 <밀양전>을 야외에 설치한 스크린으로 주민들과 함께 보았던 경험담도 흥미로웠다. 할머니들이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 “언제 영화를 만들었느냐, 이게 우리가 사는 모습인데, 언제 찍었느냐”며 자신들이 승리했던 경험들을 되새겨 보며 감격을 표했다는 이야기.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에서 일상을 보내던 노인들이 폭력적인 공권력과 맞닥뜨리면서 변해가고, 그 변해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한 편의 영화로 체험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안됐다. 김우창 활동가도 처음 밀양에 내려왔을 때, 평범한 할머니들이 평범하지 않은 말들을 하는 모습을 보고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했다. 그런 할머니들과 삼시세끼를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화투를 치면서 함께 싸웠던 시간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비극적이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연대자들이 끼니를 거르는 법이 없게 하였고, 중간중간 간식 섭취도 필수였다. <밀양 아리랑>에서 싸우는 장면보다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건 그것이 현장의 본질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밀양 아리랑>

밀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오가와 신스케 감독의 <일본해방전선, 산리즈카의 여름> 이미지가 연상되었다. 이 작품은 일본 지바 현 나리타 시의 산리즈카 마을에서 일어났던 나리타 국제공항 건립 계획 반대 투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로 7편 시리즈 중 첫 번째에 해당한다. 1967년부터 10여 년 동안 공권력에 맞서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던 오가와 신스케 감독은 농민의 시선에서 카메라를 들고 강압적 국가권력과 대치했다. 그는 촬영 스태프가 공무집행방해로 체포되는 과격한 과정 속에서도 농민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 나아가 즐거워 보이기까지 하는 장면들을 오롯이 담아냈다.

투쟁의 현장에서도 유지되는 농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은 카메라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보면 단순히 삶의 미덕을 좇는 시선이라기보다 투쟁의 근원적인 힘을 거기서 본 듯 했다. 감독들은 농기구가 아닌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투쟁 동지를 넘어 식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촬영이 장기화될수록 기록자와 행위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카메라의 경계. 박배일 감독도 탈핵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기획하였고, <밀양 아리랑>이 그중 하나라고 하니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가 됐다.

 

“밀양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이전과 이후가 많이 바뀐 것 같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부분은 밀양이 자신들에게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박배일 감독은 “이성적, 물리적인 면보다는 감각적으로 바뀐 것 같다.”면서 현장에서 고민하고, 경험했던 것들이 몸 안에 어떤 방식으로든 남아 계속 안고 가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무엇보다 현장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문제가 있는 잘못된 시스템을 인지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그 반대가 된 것이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시스템의 영향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곧 각각의 사람들이 어떤 감각을 가지고 그 시스템을 살아가고 있는지, 사람과 시스템 사이의 교집합은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현장에 대한 해석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현장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어 오면서 변화되지 않는 현실 앞에 의욕이 떨어졌고, 만약 현장에 나갈 이유를 찾지 못할 경우 영화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밀양 전에는 카메라 앞만 보았다면, 이제는 카메라 뒤의 나 자신도 봐야겠다는 그의 말에서 고민이 묻어났다.

매개를 통한 방식이 아닌 직접 몸으로 현장을 체감했던 김우창 활동가는 밀양에서의 시간을 통해 질문을 얻었다고 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밀양에 내려왔는데, 이후에는 의지가 담긴 선택들로 이어졌고 그 과정 안에서 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내용들을 알게 되면서 전에 없던 질문들이 생겨난 것이다. 질문은 자연스레 대학원 공부로 이어졌고, 에너지 정책에 대한 관심으로 뻗어나갔다. 언론인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에서 밀양을 만나 삶의 방향성이 달라졌듯, 지금의 공부가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는 그의 말에서 신중함이 느껴졌다.

 

“당장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기록은 유의미하다.”

 

미디어를 통해서만 밀양을 접했던 사람들은 모르는 사실이 있다. 바로 투쟁 현장에서는 드물게 밀양의 연대자들은 모두가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들만의 공간 안에서 즐거울 때가 많았다는 점이다. 기실 함께 밥 먹기 바빠서 비극적이라고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고 말할 정도다. 앞서 언급했던 산리즈카 투쟁의 경우,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투쟁 동맹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사회당, 공산당 등이 반대 운동에서 이탈했던 사례가 있다. 이는 여느 투쟁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내부 분열 없이 1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함께 투쟁할 수 있었던 동력을 지닌 곳, 밀양은 그런 곳이었다.

<밀양아리랑>

박배일 감독은 말한다. 대부분의 투쟁들이 공권력에 무너지고, 실패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역사는 그 현장의 인물들을 기억할 것이고, 함께 했던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미지로 기록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그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한 순간에 세상이 확 바뀌지는 않더라도 흐름을 바꾸는 데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밀양 아리랑>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모두가 둥글게 둘러앉아 비빔밥을 먹고 있는 모습 뒤로 거친 욕설과 찢어질 듯한 현장음들이 보이스 오버되는 장면. 어쩌면 영화는 그들이 그들을 서로 기억하기 위한 훌륭한 감각의 매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우리가 사는 모습인데, 언제 찍었느냐”던 할머니들의 감상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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