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사적 다큐멘터리들

2017.07.09

한국 다큐멘터리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
진화하는 사적(私的) 다큐멘터리들

김소희 영화평론가

영화진흥위원회 발간 ‘Korean Cinema Today’ 통권 28호 칸 국제영화제 특집호

한국의 다큐멘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거대 서사의 지배하에 있었다. 개인의 목소리가 카메라를 뚫고 터져 나온 것은 2000년 이후의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워낭소리>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상업적 성공이라는 상징적 사건과 함께 오늘날 사적 다큐멘터리는 여러 갈래로 분화하며 또한 진화하고 있다. 에세이 다큐멘터리는 물론, 개인에서 출발해 마침내 사회와 시대, 역사까지 껴안은 그 진화의 모습과 그 최전선에 있는 한국 다큐멘터리 신진 작가들을 소개한다. 지난 4월 27일 ~ 5월 6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주요 작품들의 리스트 또한 한국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오늘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다큐멘터리가 정치적인 성격을 띤 객관적인 시사 교양물처럼 여겨지던 적이 있었다. 80년대라는 암울한 시대가 다큐멘터리에게 진실을 다룰 책무를 떠맡긴 것이다. 액티비즘 다큐멘터리가 여전히 주류를 지키고 있던 90년대, 자기서술형 다큐멘터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로 여성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적 다큐멘터리’는 ‘정통’ 다큐멘터리와 비교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로 인식되기도 했다.

지금도 사적 다큐멘터리가 주류를 이룬다고 말하기 어렵고 사적 다큐멘터리에 관한 인식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일례로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최근 8년간 선정한 ‘올해의 독립영화’ 목록에서 사적 다큐멘터리가 선정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 다큐멘터리는 그 정의나 인식, 그리고 실제 제작된 작품의 성격 등에서 조금씩 변화해왔다. 2000년 이후 사적 다큐멘터리는 더는 비주류가 아니라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를 묻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홍재희의 <아버지의 이메일>(2012), 박문칠의 <마이 플레이스>(2013) 등은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에서 출발해 결국은 한국 현대사라는 거대서사를 끌어안은 뒤 다시 개인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역사와 떨어질 수 없는 개인과 그것의 대물림을 그린다. 정수은의 <그 날>(2016)은 이런 경향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현대사의 맥락을 반전처럼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적 맥락과 가족사적 맥락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의 다큐멘터리들은 개인의 사적 역사에 한국 현대사의 보편성이 담겨있음을 인식시키기보다는 현대사로 인해 고통받는 특수한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 것에 가깝다. 이를 통해 결국 공적 역사의 힘에 기대어 사적 역사를 설득한다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다.

<그 날>

개인과 사회, 시대의 경계를 허물다

개인의 일상이 오롯이 담긴 사적 다큐멘터리 역시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할머니의 먼 집>(2015)은 할머니의 자살 시도 사건을 계기로 할머니의 모습을 담기로 한 감독의 이야기다. <워낭소리>(2008),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등 노년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와 차이점은 다큐멘터리 창작가 개인과 대상인 할머니의 관계가 중심이 된다는 거다. 이 작품은 노년의 삶과 죽음 문제를 다루면서도 삶의 밝은 에너지를 담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관객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소꿉놀이>(2014)는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20대 초반의 나이에 결혼, 육아, 살림, 시집살이를 경험하게 된 감독 자신의 이야기이다. 육아와 다큐멘터리 제작 사이의 고군분투를 보여준 류미례 감독의 <아이들>(2010), 예기치 않은 임신과 동거 문제를 다룬 지민 감독의 <두 개의 선>(2010) 등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적극적인 자기 연출 등의 형식상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자기 연출의 측면은 최근의 경향이라 할만하다. 사적 다큐멘터리에서 ‘리얼리티’나 ‘진정성’이 우선시 되던 것과는 달리 ‘연기적 리얼리티’가 진정성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니까 최근의 사적 다큐멘터리는 기존에 요구되던 ‘리얼리티’나 ‘진정성’의 개념을 확장하거나 변화시킨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2015)는 아마도 이러한 경향의 최전방에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감독이 자신의 몸을 탐구 제재로 삼은 것이 최근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김진아의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2001), 유소라의 <D-?>(2003), 김경묵의 <나와 인형놀이>(2005) 등 2000년대 초반 비디오카메라, 혹은 막 보급되기 시작한 디지털 기기를 통해 촬영한 영상일기 형식의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출처 : 네이버영화)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아파트 재개발, 4대강 등 사회적인 이슈를 기록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자기 서술형 기록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셀프다이어리 형식의 작품이다. 자신의 몸이 제재가 되는 점은 <김진아의 비디오일기>와 가장 비슷하나, 김진아가 철저히 고독한 개인으로서의 나를 탐구한 것과는 달리 박강아름은 혼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나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 점에서는 <D-?>와 가장 유사하나, <D-?>가 ‘고3 수험생으로서의 나’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박강아름은 나의 외모와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등을 소재로 삼으면서 카메라 앞에 자신을 더욱 낱낱이 까발린다.

카메라 앞에서 감독이 한 명의 연행자로 기능하는 방식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실험영화 등 기존의 장르 경계를 허무는 데 기여했다. 먼저 다큐멘터리와 극을 오가는 실험의 뿌리를 찾아보면 장희선의 <고추말리기>(1999)가 있다. <고추말리기>는 모녀 3대의 이야기로 주인공을 제외하고 자신의 실제 가족을 출연시킨 다큐 픽션이다. 김숙현은 <죽은 개를 찾아서>(2010)에서 연기적 내레이션 톤을 사용해 자기 이야기에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낯설게 하기’의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속 이야기를 낯설게 만드는 방식의 퍼포먼스는 개인적인 소재에 머물지 않고 때로는 사회적인 공간을 통해 확장된다. 최진성은 인디뮤지션과 함께 4대강 공사가 진행 중인 남한강, 낙동강 등을 찾아가 퍼포먼스를 벌이는 방식의 <저수지의 개들> 시리즈(2010, 2011)를 만들었다. 박소현의 <야근 대신 뜨개질>(2015)은 한 공정 여행 회사의 직원들이 모여 뜨개질을 하고 이것을 버스 정류장 등에 설치하는 방식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야근 대신 뜨개질>(출처 : 네이버영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이어 어떤 것으로 만드는 것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현재적 경향이기도 하다. 임철민은 <프리즈마>(2013)에서 주변인들의 개인소장 촬영 영상 등 조악한 화질을 영상들을 한데 모으는 시도를 한다. 그는 카메라 앞에 선 퍼포먼스가 아니라, 영상편집 과정에 있어서의 하나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 같다. 구대희는 <그녀들의 점심시간>(2015)에서 어떤 경로로 모이게 되었는지 불분명한 다양한 직업, 연령대의 여성들이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각각 보여준다. 그 의도와 연결의 모호성을 통해 관객의 개입 여지를 마련한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로도 확장된다. <미디어로 행동하라> 시리즈를 통해 모인 젊은 세대의 감독들은 활동가이자 감독으로 자신을 위치시키고, 패기로 밀어붙인 조악한 영상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이러한 시도 역시 영상의 연결 자체에서 존재 이유를 발견하는 경향의 연장선에 있다. 이제 다큐멘터리는 매끈함과 조악함이 뒤섞인 가운데 자신의 향방을 모색하게 될 것 같다.

 

일상부터 실험까지:
새롭게 떠오르는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

 

원태웅
<장보러가는 날>(2011)
<아들의 시간>(2014)

<아들의 시간>

원태웅의 첫 영화 <장보러가는 날>은 퇴촌에서 장을 보기 위해 주기적으로 서울을 오가시는 부모님과 동행한 여정을 담는다. 그의 영화를 끌어가는 힘은 대화가 아니라 그저 조용한 이미지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가족 사적 다큐멘터리가 대화를 통해 갈등이나 화해를 드러내는 것과는 달리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도통 입을 열지 않는다. 그는 종종 벽을 사이에 두고 맞붙은 두 개의 방을 동시에 카메라 앵글에 담곤 하는데 이 때문에 일상적인 공간에 낯선 기운이 불려온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기이한 정감이 깃든다.

<아들의 시간>에서 감독은 실험 쪽으로 한 발 더 내디딘다. 조카의 성장을 담은 사적 푸티지, 베트남 참전 용사 출신인 아버지에 관한 기록, 이제는 공사장으로 변한 퇴촌 근처를 배경으로 감독 자신이 등장하는 퍼포먼스 등 언뜻 연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의 연속체는 마치 수수께끼 같아 보일 정도다. 감독의 다음 작품을 힌트삼아 그가 내는 수수께끼를 계속 풀어보고 싶다.

 

백종관
<순환하는 밤>(2016)
<이빨, 깃발, 다리, 폭탄>(2012)

<순환하는 밤>(출처 : 네이버영화)

백종관 감독은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한다. ‘인용’은 그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하나의 방식이다. 제목 자체가 하나의 인용인 <이빨, 깃발, 다리, 폭탄>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송출된 음악과 음성, 노이즈 등을 짜깁기한 사운드 몽타주 작업이다. 감독 스스로 밝혔듯 그의 작업은 ‘파운드푸티지’를 사운드의 개념으로 확장한 ‘파운드사운드’다. 이는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발산되는 소리의 일회성을 박제하여 그것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행위로도 보인다. 라디오 청취 행위는 어딘가로 이동하는 등 다른 행위와 동시에 이뤄지곤 하므로, 영화가 보여주는 이미지들도 부유하는 것 같다.

<순환하는 밤>에서는 파운드 푸티지와 파운드 텍스트 간의 교통이 이뤄진다. 1960년부터 2015년까지 4개로 분절된 한국의 역사적 시기를 담은 영상에서 발췌한 얼굴들을 4편의 텍스트의 문구 또는 낭독과 뒤섞으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인용과 자기 인용을 뒤섞으며 이 세대의 새로움과 자신의 본연의 것에 관해 질문하는 그의 다음 실험이 기다려진다.

 

장윤미
<늙은 연꽃>(2016)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2014)

<늙은 연꽃>(출처 : 네이버영화)

장윤미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자신의 어머니를 찍은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와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를 찍은 <늙은 연꽃> 등 주로 자신의 가족을 담은 단편을 만들어왔다. 장윤미의 작품은 언뜻 보이기에는 기존에 보아오던 사적 다큐멘터리와 별다르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작품의 진가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감독의 욕망이 카메라 안에 담긴 대상보다 크지 않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서 대상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대상에 대한 애정은 단순히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 바깥에서 대상이 남긴 흔적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극대화된다. 근작인 <늙은 연꽃>에서는 인터뷰를 최소화하고 인물의 행위와 움직임만을 따른다. 삶에 대한 존중의 태도다. 그녀의 카메라 안에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공간이나 사물 역시 존중을 받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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