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기획상영회

2017.07.09

9DMZ국제다큐영화제 기획상영회
다큐로 만나는 북한‘ <평양연서> 상영 및 대담

일시: 6월 24일(토) 14:00
장소: 북한대학원대학교 정산홀
대담: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SSK남북한마음통합연구단장


이우영 단장(좌), 김누리 교수(우)

 

독일과 우리의 분단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김누리 : 한두 가지 말씀드리면 독일과 우리의 통일 많이 비교하는데, 우선은 두 나라 조건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할 것 같아요. 우린 사실은 굉장히 하드한 분단입니다. 전쟁을 겪고 했기 때문에, 우리의 분단은 끔찍한 분단임에 반해서 독일의 경우에는 그렇지는 않았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게 가장 큰 차이죠.

한 사람의 예를 들면, 볼프 비어만 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보통 ‘장벽위의 시인’이라고 많이 얘기하는데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독일의 김민기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독일에서 대표적 음유시인이라고 해야할까요? 자기가 시를 쓴 걸 노래로 만들어서 부르고 하는 볼프 디어만이라는 시인이 있는데, 이 시인의 삶이라는 게 독일 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이력입니다. 부모가 둘 다 유태인, 공산주의자. 그러면 나치시대를 어떻게 보냈을까? 둘 중 하나, 유태인이거나 공산주의거나 하면, 강제수용소에 잡아다가 죽였죠. 이 부모도 마찬가지. 둘 다 아우슈비츠까지 갔는데, 아버지는 거기서, 말하자면 가스에 의해 독살 당했습니다. 어머니는 탈출해서 볼프 비어만을 키웠죠. 유태인계열의 독일인. 그런데 서독 함부르크에서 쭉 자라다가, 고등학교때 “나는 사회주의자다, 그러니 사회주의 동독으로 넘어가겠다” 해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라이프치히 대학에 다니게 됐고요. 나이 드신 분들은 알겠지만 우리의 경우도 남북 간에 일종의 체제대결을 했기 때문에 소위 귀순, 귀순용사, 귀순자 등 요새는 이런 말 잘 안하지만 옛날엔 많이 했죠. 동독으로 넘어가게 되니까 동독에서 이 볼프 비어만을 굉장히 대대적으로,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활용하는 건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유명한 청년이 되었죠. 라이프치히 대학에는 로베르트 하베만이라는 화학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말하자면 동독의 사하로프. 당시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 가장 대표적인 반정부 지식인이었죠. 이 하베만이라는 사람이 동독체제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 지식인이었는데, 둘이 죽이 잘 맞아서 동독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됐습니다. 볼프 비어만이. 그러니까 자기가 선택해서 넘어갔는데, 동독에 가서 보니까, 이건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 이게 무슨 사회주의냐, 독재체제지. 그러면서 동독체제 비판 시를 계속 썼습니다. 시만 쓰면 괜찮은데, 노래도 만들어서 공연하고 돌아다니니까, 동독체제 최고의 골칫거리가 됐죠. 그렇게 된 게 고작 4년입니다. 곡이나 시 모두 금지됐습니다. 그의 곡들을 다 금지해놓으니까, 불법으로 대량 복사해서 동독전역에 돌아다녀서, 동독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어버렸죠. 그런데도 직접적으로 압력을 가하긴 어려웠고, 그러던 차에 1976년에 전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노조가 독일에 있는 금속노조, IG메탈이라고 하는곳에서 비어만을 초청했습니다. 1976년, 초청콘서트를 서독에서 하게 되는데, 공연 끝나고 돌아가려하는데 국경에서 딱 막는 거예요. 못 들어온다. 동독정부가 시민권을 박탈해버린거죠. 그렇게 해서 그냥 서독에서 살게 됐습니다. 이 볼프 비어만 사건은 독일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동독 내 비판적 문인들이 최초의 반정부 성명 내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동독문학이 변화하게 된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후 서독에서 가장 성공했던 노래가 ‘그래도 내 조국은 동독.’ “아무리 동독이 문제가 있지만 서독 자본주의는 올바른 사회가 아니다, 나는 동독이 올바른 사회주의를 하라고 비판한거지 서독이 좋다는 건 절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노래는 서독에서 유행했죠. 그러다보니 서독 정부에서 너무 머리 아프기 시작한거죠. 동독의 독재를 비판했으면 좋겠는데, 이젠 여기서 서독을 비판하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을 장벽위의 시인이라 부루는 거예요. 동서독 장벽 위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런 시인이라는 뜻이죠. 아무튼 이 비어만이 베를린장벽이 11월 4일날 개방될 때, 바로 그 다음 날 동독으로 내려가서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야외콘서트 했어요. 몇십만이 모이는. 그게 아주 역사적으로 인상적인 사건이었어요. 제가 이렇게 길게 비어만 얘기 한 것은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거죠. 이들의 분단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분단과는 질적으로 너무 다르다. 우리 같으면 그런 정도의 자유가 허용되기 어려우니까요.

개인적인 말씀을 드리면, 독문학 하는 사람이 어쩌다 보니까 통일관련 주제로 몇 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는데, 지금 제 삶을 복기해보면 제 개인적인 어떤 욕구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 부모가 둘 다 함경도에요. 제 아버님은 아오지 제일 꼭대기, 러시아와 국경에 가까운 그곳을 경흥이라 하는데, 경흥출신이었죠. 어머니는 함경북도 경성 출신. 함경도라는 게 함흥과 경성 합쳐서 나온 말이에요. 저도 이산가족인거죠. 그런 생각 크게 많이 하진 않았었는데, 저는 서울에서 났지만. 저희 어머니가 86세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어머니 얘기를 거의 안하셨던 분이 돌아가실 때 제가 옆을 지켰는데 맨 마지막 하신 말이, 엄마에요. 나는 ‘아빠’할 줄 알았어요. 근데 ‘엄마’ 이러고 돌아가시는데, 평소에 왜 엄마 얘기를 안했을까. 제가 여쭙고 싶은 부분이긴 한데. 저희 어머니처럼 분단을 비극적으로 체험한 사람 없는듯해요. 스무 살에 남으로 공부하러 내려와서 딱 갈린 거죠. 66년동안 사돈의 팔촌도 하나 못 만난거죠. 대체로 내려온 사람들이 가족들이랑 같이 온다거나, 먼 친척이 누군가 있는 반면에 어머니는 하나도 없었어요. 오늘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회한이 어느 정도 풀릴지, 대한민국 분단이 너무나 끔찍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고. 이제 제가 이야기하는 것 보단 대화하면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 정도로 제 감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단의 상처는 세대를 걸쳐 전수된다

이우영 : 저도 느낌만 좀 말씀드리면 분단을 얘기할 때, 한반도 분단이라는 것이 여러 조건이 그래서 그랬겠지만 분단 때문에 영화에 나오셨던 분들이 분단의 또 다른 희생자가 되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분단이란 것이 여러 군데 민폐를 끼치고 있구나. 분단이라는 것이 우리 내부의, 한반도 수준의, 남북수준이지만 이것도 어찌됐든 전지구적 문제라고 생각해야 해요. 분단 과정의 차이점도 느끼고 있고, 김교수님도 우리나라가 훨씬 하드하다고 했는데, 저도 예전에는 독일의 분단은 소프트했기 때문에 관심이 덜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하드한 분단이라고 보는 북아일랜드라든지, 이런 경우들. 그리고 분단 국가는 아니지만 사회적 분단으로 그 케이스를 봤었는데, 소프트한 분단도 굉장히 문제가 많은데, 하드한 분단은 얼마나 더 문제 많겠느냐 생각이 들었죠. 이 이슈는 분단하고 직접 연결 안 된다 하더라도 세대를 넘어선 이슈가 되고, 전달의 문제의 측면에서도 봐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컨대, 이산가족 상봉이 시급하다고 합니다. 이산가족들이 계속 돌아가시고 계시니까요. 이산가족 1세대가 돌아가시면 2세대는 문제가 끝나겠느냐, 그건 아닐 것이고요. 분단 이슈, 이건 이산가족과 직접적으로 분단으로 파괴된 가족 이야기니까. 결은 다르지만 오늘 본 영화도 분단문제 때문에, 단순히 북한 때문이 아니라 분단으로 인해 파괴된 가족 얘긴데. 이런 것들은 결국 직접 경험했든 안했든, 경험 없는 경우에도 전수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는 것이죠. 들어오기 전에 김 교수님과 잠깐 얘기 나눈 것 중에 하나가, 우리가 과거 연구의 일환으로 독일에 가서 면접 조사를 했었는데, 그 때 만난 분들이 은퇴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고. 구동독 출신의. 일부러 별로 통일의 피해 안 보신 분들. 바로 통일된 다음에 직장 잘 얻으신, 피해 없이 살았던 사람들을 일부러 택해서 얘기했었는데, 그 분들 크게 불만 없었습니다. 통일로 인해 피해가 잠깐 있긴 했지만. 라이프치히에서는, 대학교수 되시고 잘 사시는 분인데. 일은 같이 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지만, 역시 놀 땐 따로 논다고 합니다. 라이프치히에서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데도. 일할 땐 문제없는데, 놀 땐 따로 논다 하더라구요. 다음세대에 대한 질문인데, 베를린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물었죠, 자식 때는 분단 이전에 태어났더라도 성장기는 다 통일 되서 자란 사람들이니까. 자식에 대해 물어봤어요. 베를린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는 자기 딸이 시집간다면 노는 건 서독 출신하고 하겠지만 결혼은 동독출신으로 하겠다 했습니다. 성장기를 보면 유치원 때부터 같이 자란 애들이죠. 구별이 없는 애들인 것. 또 하나, 라이프치히에 있는 할아버지하고 얘기했더니, 자기 아들이 쾰른인가, 서독 쪽에서 스타가 됐는데 2주에 한 번 라이프치히에 온다고 했습니다. 아들이라도 와야 심리적 안정을 찾으신다고 하셨어요. 서독지역에서 사는 것이 힘들다. 자기는 바빠도 숨 좀 돌리고 가겠다 하셨죠. 아마 이런 것들은 세대전수의 문제죠. 시간이 지난다 해서 치유가 될 것인가. 분단 시절의 갈등이나 장벽이라고 저는 표현하는데, 장벽들이 좀 없어질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 영화에서 봤을 때. 덜 배타적이라는 것. 서독의 젊은 처녀들이 이국적이긴 하지만 생기긴 잘생겼어요. 문제아들이 책임도 못 지면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그랬으니까. 그것과 연결시켜서 태도에 대한 것. 구동독 혹은 독일, 기본으로 배타적이라는 생각 많으니까요. 그것에 대한 차이라든지, 다른 인종, 문화에 대한. 세대전수문제도.

 

“한반도에 사는 이는 모두 괴물이다”

김누리 : 우선 독일의 분단, 한반도 분단이라는 건 사실 같은 것이예요. 우린 6․25하면 1950년을 떠올리지만 독일은 1948년 6․25를 떠올림. 한반도끼리의 갈등으로 터진 것이 아니라, 45년 종전이후 생겨난 새로운 미소간의 냉전체제, 또는 이데올로기 대립이라 부르든, 강대국 블록사이 대결이라 부르든. 전세계적인 체제가 어느 쪽에서 터지느냐의 문제는 사실은 시간문제의 어떤 것이고, 3차세계대전이 48년 6․25를 전후로 해서 독일에서 터질 가능성이 높았다는 게 당시 전반적 상황이었죠. 48년 6․25는 베를린 봉쇄였어요. 베를린은 동독 안에 있는, 서베를린은 동독 안에 있는 일종의 작은 서독이었죠. 거길 봉쇄했죠. 육로와 수로를. 그 봉쇄가 11개월간 지속됐구요. 처음 봉쇄한 날이 6월 25일. 그 상황에서, 베를린 봉쇄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베를린이 3차세계대전의 발원지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우려들이 있었고, 하루하루 그야말로 살얼음을 걷는 상황이었습니다. 국제적 긴장이 베를린을 중심으로 이미 있었죠. 베를린에서 터졌으면 한반도에서 안 터졌을 거예요. 역사에 정의의 신이 있지는 않아요. 정의의 신이 있다면 베를린에서 터지는 게 옳았죠. 독일인들이 저지른 끔찍한 인류에 대한 죄. 죄 씻음의 하나의 의식도 될 수 있는 거죠. 사실은 우리는 그렇게 뭐 역사 안에서 잘못한 짓이 많은 건 아닌데, 역사는 정의가 아닌 힘에 의해 좌우돼요. 결국은 제일 약한 고리에서 터진 것이죠. 긴장이 계속 됐고, 일종의 풍선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긴장이 계속 올라가는데, 유럽에서 긴장 고조화됐고, 근데 여기서 터지지는 않았고, 제일 약한 고리에서 터진거죠. 냉전체제 자체는 국지적체제가 아니라 세계적체제, 지구적 체제였다라는 것. 1945년 체제고. 그게 정확하게 45년 지속되다가 1990년에 결국은 해체된 것. 그 때 해체되지 않고 여기만 남아있어요. 아직도 그대로 남아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사람을 괴물로 만들었으니까요. 북이든 남이든, 한반도 사는 사람들 과연 이게 정상적 인간으로 사는 건가. 이렇게 센 질문할 필요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단이라는 이상한 시스템이 전세계적으로 다 해체된 이후에도 여전히 여기서 살아남아서 나를 괴물로 만드냐는 거예요. 나는 한국인들이 상당 정도 괴물이라 생각합니다. 그 요인은 분단이라는 시스템이 우리 안에 각인시켜놓은 무엇일 것입니다. 그래서 분단 체제 얘기할 때는 세계적 체제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에서 봐야 되고, 그게 한반도에서 터져가지고, 국제분쟁이 한반도에서 해소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그 가운데 400만, 한국인들이 죽어가는 이런 상황들이 됐던 것이죠. 그것을 치유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동독은 사라진 적이 없다. 동독은 이제야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마음의 통일의 문제. 저희가 2년 동안 프로젝트 한 게 세 권의 책인데, 그 중 한 권 가져왔습니다. 통일 이후 15년. 애초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것은 크게 두 덩어리로 나눠서 생각하면 1. 시스템 통합(정치경제적 통합), 2. 사회문화적 통합(심리, 정서적 통합), 이 두 개를 나눠서 봤을 때 일반적 예측은 정치경제 통합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고 정서적, 심리적 통합이란 건 시간 지나면 서서히 완화될 것이다라는 게 일반적 예측이었음. 그런데 독일의 사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에요. 의외로 정치경제시스템 통합이란 것은 한 10년 정도 지나면서 거의 문제없이 이루어졌고, 경제적 격차는 있었지만 그것도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대체로 80 내지 85프로 수준으로 회복됐죠. 서독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란데, 동독이 그 정도까지 올라온거죠. 예상보다 빨리 해소되거나 완화됐음에 반해서, 심리적, 정서적 통합은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됐어요. 나아진 게 아니라. 대체로 통일 15년 정도 지난 후 나온 통합 관련 지표 보면 거의 대부분 더 더 나빠졌죠. 그러니까 ‘다니엘라 단’이라고 하는 유명한 동독 작가는, 통일 되고 나서 7, 8년 지난 후에 이렇게 얘기했어요. “동독은 이제야 비로소 탄생했다.” 1990년 통일되면서 동독은 국가로서 완전히 사라진 거잖아요. 지도상에 더 이상 동독이란 나라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양반은 동독은 이제서야 탄생했다고 하잖아요. 동독인들은 구동독시절에 한번도 동독인으로서의 강한 정체성을 가진 적 없다는 거죠. 그런데 통일되고 나니까 ‘아, 내가 동독인이구나. 내가 동독인이기 때문에 통일 독일에서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여러 가지 부당한 일을 당하는구나. 그리고 이 서독이라는 나라는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공동체구나’ 이런 걸 비로소 느꼈다는 것이죠. 그리고 과거의 체제가 불만이 있었지만 돌아보니까 괜찮은 체제였구나. 이런 걸 느끼기 시작한거예요. 놀라운 지표는, ‘동독사회주의는 비록 실행에 있어 문제가 있긴 했으나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하는 시도였다라는 물음에 동의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95프로의 동독인이 동의를 했다는거죠. 그 정도로 동독인의 정체성이 부활하고, 과거 동독을 새롭게, 심지어 아주 이상화하는 경향까지도 나타나기 시작해요. 이건 예상하지 못한 거죠. 그렇게 오히려 사회문화적 갈등은 심화되는데, 그래서 제가 그 다음에 생각한 게, 한 세대가 지나면 아이들은 통일 독일을 모르지 않을까. 아이들은 통일독일 속에서 사회화된 젊은이들이니까요. 걔들의 경험은 그런 게 없지 않을까 했는데, 저도 이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독일 가서 많이 느꼈습니다. 동독지역에서. 동독에 관한 체험 없는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독에 대한 어떤 이질감을 여전히 내면화하고 있어요. 휴가가 되면 서독에서 놀면 뭔가 불편하고, 단순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동서독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질감, 갈등을 내면화해서 한 세대로 전이된다는 것 놀라운 일이에요. 그걸 어떻게 학문적으로 분석해야 할지. 그것도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저희가 두 번째 프로젝트로 연구한 건 통일독일의 문화변동. 통일된 나라에서 문화변동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동독문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 혹시 동독문화가 서독문화의 변화를 견인한 부분 있는지, 가치관 변화나 이런 것들을 보고자 했습니다. 저희가 처음 시작했을 때 가설은, 당연히 동독의 문화가 서독의 문화로 수렴될 것이다. 동독인들의 가치관이 서독인 가치관, 문화로 수렴될 것이다라는 가설하에 시작했으나 결론은 정반대였습니다. 이것도 우리 경우에 어떤 형태로 암시하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앞에 부제를 동독의 귀환이라고 했죠. 신독일의 출범. 통일이라는 게 동독이 사라지게 하는 것 아니라, 오히려 죽은 동독을 돌아오게 한거죠. 그래서 통일된 독일은 예상했던 서독중심 독일 아니라 완전 새로운 독일로 출범하고 있다. 이게 저희가 내린 큰 틀에서의 결론입니다. 이 동독 귀환이라는 것은 사실 그렇게 낯선 건 아닙니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가 정치변화로 구현됐어요. 지금 독일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 지금 12년째 하고 있어요. 9월 독일 총선 있는데, 하나마나라는 것이죠. 무조건 또 돼요. 16년째 독일 역사상 최장수 총리될 것 분명. 이 메르켈이 어디 출신? 동독출신이거든요. 요 전에 대통령했던 가우크도 동독출신. 통일 이후 최장수 국회의장 한 게 볼프강 티어제, 사민당 쪽. 이 사람도 동독출신. 그러니까 이건 완전 예상 뒤엎은 것이죠. 통일되고 나서 동독출신 정치가들이 독일 정치를 주도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어요. 그것은 정치적 공학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 아니고, 그 배후에는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다는 거에요. 서독인들이 오히려 동독인들에 수렴되는 그런 가치관. 그런 변화들이 있었다는 것. 오히려 통일독일은 동독가치관 쪽으로 많이 수렴됐다는 것. 영화 보면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통일되기 전에 동독 간다는 건 동독이 아닌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동베를린만 갈 수 있었어요. 동베를린도 7시면 무조건 나가야 함. 워낙 멋있는 데가 많으니까 관광하고 7시면 나가야 했죠. 통일되기 전에 작센이란 지방을 2주 동안 들여다볼 기회 있었어요. 저는 그 당시에 현대문학 수업 했으니까, 그 문학 수업 중에 환경문학이란 수업 있었는데, 동독의 환경파괴가 심각해서 그걸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아서 일종의 수학여행 간거죠. 독일인들에 제가 껴서, 작센이나 라이프치히 이런 지역 돌아본 적 있었는데, 느낌이 오더라구요. 동독은 곧 망하겠구나, 이건 유지될 체제 아니다 예상했죠. 그러다 곧 무너진 거죠. 그건 뭐 대단한 연구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저희 팀 15명 갔는데, 7, 8명 나눠서. 점심 먹어야 하는데, 점심 먹을 수가 없었어요. 한두 명 가면 줬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들어가면 너무 놀라는 거에요. 갑자기 리저브라고 해요. 누가 봐도 예약이 아닌데, 손님 많이 오니까 귀찮았던 거죠. 내내 가장 큰 고민이 점심 먹는 것. 점심을 안 줘요. 돈 얼마를 줘도 상관없어요. 그래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서, 시골 가니까 주더라구요. 시골 가서 먹었죠. 벌써 우리, 이 사회 자본주의 질서와는 생각하는 게 달라요. 그것은 물론 음식점이니까, 서비스업에 해당하는 영역이지만 제조업이라고 다르겠어요? 그래서 이 체제는 오래가긴 어렵겠다 생각했고, 금방 무너졌죠. 두 번째, 이게 더 중요한 건데,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어떻게 이런 선의의 공동체가 있을까. 너무 좋은 사람들. 예외가 없어요. 거기서 만난 동독 사람들은. 얼굴에 긴장과 악의가 없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돕고자해요. 거기서 만난 사람들 표정보고 너무 놀랐어요. 아, 사람들 얼굴이라는 게 원래 저렇게 생긴 거구나. 그런 선의의 공동체 처음 봤죠. 그러니까 우리 얼굴에 그런 게 다 써있는 거죠. 사실 제가 독일에 있다 한국에 오면 보는 한국 사람들 얼굴 다 너무 무서워요. 지금 제가 그렇게 되어있죠. 우린 서로 무서움 느낄 이유가 없어요, 다 똑같으니까. 그런데 동독아이들만 해도 표정이 다름. 제가 보기엔 긴장이 없어요. 그야말로 얼빠져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당시 같이 갔던 서독아이들이 말하더라구요. “쟤들 얼굴 좀 봐라. 어떻게 애들이 저렇게 태평한 얼굴일 수 있냐, 아무런 긴장이 없고. 저런 애들이 뭘하겠냐.”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게 무슨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 든 사람같은 거죠. 물론 동독이라는 사회주의 체제는 사실상 대단히 불합리한 체제, 소위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그렇죠. 한편 다른 측면에서는 인간을 선의에 의해서 작동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 세상에 진짜 유토피아는 없다라는 느낌을 받았죠. 생산적이면서 효율적으로 작동하면서 동시에 선의가 유지되는 그런 세상말예요. 그야말로 사물화되지 않은 상태의 얼굴. 원래 인간이 자본주의 이전 상태에서 사물화되지 않았을 때 가졌던 그런 얼굴들인데, 우리도 모르게 이미 잃어버렸죠. 그런 비슷한 인상을 금강산 가서 느꼈던 기억이 나요. 북한 주민들 보면서. 너무 곱잖아요. 그건 남한에서 볼 수 없는 얼굴. 제가 보기에. 북한사회는 거의 비슷한거죠, 동독이랑. 경제적으로 대단히 불합리하고, 또 여러 가지 북한 정치체제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독재라든가 이런 문제가 있는 걸 우리가 다 알지만. 동시에 그들의 얼굴에서 비치는 얼굴은 우리가 잃어버린 그 얼굴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과거에 저 얼굴이었는데. 우리가 얼마나 사물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거죠. 북한이라는 거울에 비추면 보일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마음의 통일 관련된 부분은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병참국가 대한민국

우리 남한 사회가 왜 이렇게 이상한 사회가 됐을까, 그건 여러 가지 이유 있을 수 있는데. 한편에선 우리가 가진 많은 가능성들 있잖아요.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지옥과 같은 일상 살고 있다고 느껴요. 풍요롭긴 한데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 있는거죠. 인간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 있는 그런 공동체 안에 우리가 있는 것 아닐까요. 원인은 역시 분단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 아닌가 싶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내면자체가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는지, 그걸 좀 생각해볼 필요 있어요. 이 분단이란 상황은 누구에게나 적용됩니다. 이 이야기 할 때마다 한단어, 한단어, 내 속으로 자기 검열 작동하고 있죠. 늘 그걸 하다보니까 이제 익숙해져서 자동으로 자기검열하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기검열하는 학자는 학자일 수 없지 않을까요? 학자는 급진적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학자지. 이미 검열을 시작하면 이미 그건 학문하는 자가 아니죠. 정치를 하거나 장사를 하는 게 마땅하죠.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수많은 심리적 메카니즘을 여러분들이 자기성찰하며 생각 해 보세요. 그게 어디서 온 건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흑백논리, 레드 콤플렉스, 권위주의, 자기검열, 폭력성. 어디서 왔어요? 분단이 만들어 놓은 이 병영사회에서 온거죠. 저는 제 또래 여성들, 50대, 60대 여성분들 참 불쌍하다 생각해요. 초등학교 다닐 때, 고무줄 놀이. 무슨 노래 불렀어요? 전후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그런 노래 불렀어요. 어떤 적대, 어떤 적의, 그런 노래 부르면서 자란 인간이 정상적 인간으로 클 수 있을까. 우리 안에 그 흔적들이 어딘가에 있다고 봐요. 어린 아이들까지 이 병영국가에서 동원돼서 태극기 들고 노래부르죠. 우린 완전히 병영국가 신민으로 자라난 사람들이고, 특히 군대 갖다온 남자들은 더 심각하죠. 군대사회는 민주시민 될 가능성을 제압하다시피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죠. 지금 한국사회가 광장 민주주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 민주주의는 없는 사회인 이유는 거기 있다고 봐요. 일상, 집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전혀 민주적이지 못합니다. 그런 원인을 궁극적으로 뒤로 쭉 추적해보면 분단이 있죠.

 

한국에 진보는 없다

좀 더 심각한 문제.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 쟁취했지만, 한국 민주주의 역사라는 게 대단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는 허깨비 민주주의죠. 이것을 실체화해야합니다.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하고 인간적인 삶이 가능하게 하는 그런 구조로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여야 합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 등장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 가장 큰 문제는 극단적인 정치지형의 우경화입니다. 한국은 지금 전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지형을 가졌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번 정권은 진보가 잡지 않았느냐고 반문할겁니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죠. 한국은 지금 진보와 보수가 경쟁하는 시스템 아니니까요. 수구와 보수가 과두지배하는 시스템. 한국 현대사 70년은, 수구와 보수가 70년 내내 과두지배해 온 체제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진보라고 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만든 신화에 다름 없어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 복지, 노동 정책. 이건 세계적 기준에서 보면 아주 온건한 보수죠. 이걸 진보라 보긴 힘들어요. 그 정도로 우경화 되어 있기 때문에 좌파라고는 볼 수는 있겠지만, 진보라 볼 수 없다는 말이죠. 정확하게 보면 우리 정치가 전체적으로 너무 오른쪽으로 와 있어요. 아까 메르켈 이야기 했지만, 독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당이 기독교민주당이고 그 수상이 메르켈인데, 메르켈이 한국오면 빨갱이, 그냥 좌파도 아니고 극좌파 취급당할 꺼예요. 독일의 가장 보수적인 정당이 한국에 오면 극좌파라는 거죠. 그 정도로 한국 정치 지형이 우경화 되었죠. 왜? 냉전 때문이죠. 그러니까 일체의 보편적 진보적 의제는 전부 그야말로 친공적인 것으로 악마화되고, 낙인찍혔습니다. 그게 70년 동안 이뤄진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현실, 전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된 건 필연입니다.

우리가 통일을 해야된다고 한다면 한민족이라서 통일될 필요는 없어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크게 보면 다 게르만 민족이잖아요. 그럼에도 개성적 국가들로 살아가는 것이죠. 우리가 통일해야 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좀 정상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에요. 내가 정상적 인간되기 위해, 더 이상 자기검열 안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좀 더 인간적 사회가 되기 위해, 이 사회의 가장 약자들도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 그걸 만들 정도의 진보적 정당도 있어야 될 것 아니에요.

 

질문 토론

Q. 대한민국을 풍요로운 나라로 수식하셨는데, 앞에 수식어를 붙이면 좀 나을 것 같아요. 불평등하게 풍요로운 나라. 또 앞에 하나 더 붙여야죠. 약탈적으로 불평등하게 풍요로운 나라. 그렇지만 결국 진보라는 게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거고, 나아가서 개인의 자유나 성장을 바라본다면. 상당히 우리나라가 우경화되어있는 건 동감해요.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시장형 보수 정도로 보고 있지만 앞으로 3년 뒤 총선 때 깨어있는 많은 국민들이 제대로 선택한다면 진보 쪽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좀 적당히 균형되어 있는 나라로 되지 않을까 희망해 봅니다.
Q. 김누리 교수께서 마지막에 우리가 통일해야 되는 것은 바로 우리 남쪽에 사는 우리들이 사람답게 살기위해 통일해야 된다는 것에 백번 동감. 독일에는 여러 번 다녀오신 것 같은데, 북에는 금강산 잠깐 다녀오신 걸로 이해합니다. 그 때 경험 좀 더 말해주시면 좋겠어요. 앞으로 남과 북 언제 하나 될 지 모르겠지만 교수님 전망 듣고 싶고. 통일 이후에 구동독이 돌아오고 있다라는 말씀하셨는데, 저는 비슷한 상황이 충분히 남과 북 하나 된 이후에 전개될 거라 봄. 그 점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Q. 소련에도 한국전쟁 이후 유학생 파견한 것으로 되어 있어요. 몇 백명 파견되어 있었다 하는데, 핵관련 공장시설과 과학자들이 거기 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분들 가운데서는 소련 여성들과 결혼한 사례가 없었을까 궁금했어요.
Q. 통일영화보면, 북한을 떠나 차별받으면서 느껴지는 벅찬 감정들, 애틋함이나 그리움이나 그런 것들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이산가족의 자녀들은 그런 감정이 굉장히 사라져 버렸잖아요. 분단체제에서 오히려 반공이나 북한을 그리는 마음이 자체검열 되다 보니까. 그렇다고 하면 그리움, 애틋한 정서가 사라지는 마당에 어떻게 통일에 대해 상상하고, 통일이 필요하긴 하나 오히려 사람들 마음 속에서 그런 정서들이 다 휘발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을 다시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을지. 그런 이야기 듣고 싶어요.
Q. 영화보면서, 혈육을 찾아가는 거라고 봤습니다. 혈육과 민족 어떻게 구분하고 어떻게 봐야될까요.

 

이우영 : 북한은 굉장히 우리 못지않게 폐쇄적인, 실질적으론 인종적 민족주의를 강조하지 않나 생각해요. 우리도 굉장히 배타적인데, 우리보다도 더 심하죠. 독일에서도 혼혈 차별. 어느 사회나 다 그래요. 타인종, 혼혈에 대해 배타적이지만, 우리는 더 세죠. 우리는 단일인종신화 갖고 있는 체제에서 세고. 남북을 보면 북한이 더 세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그 이슈에 대해선 따로 검토해봐야 되지 않나 합니다.

 

민의가 100%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기다리며

김누리 : 문재인 3년 후 쯤 어떻게 될 것인가, 중요한 말씀이고. 핵심은 이거에요. 제가 아까 수구보수 과두 지배라는 말을 썼는데, 정치학에선 ‘올리가르키’라고 하죠. 좀 세게 말하면 지금 민주당이라고 하는 현정권, 오랫동안 야당해 온 이 세력은 한 번도 야당인 적 없었어요. 항상 여당이었죠. 4:6으로 분점하는 여당인지 6:4로 분점하는 여당인지의 차이일 뿐이죠. 지금 6:4로 분점하는 여당이고, 요 지난 번에는 4:6으로 분점하는 여당이고. 그 차이 있을 뿐이지. 해방 후 70년 동안 계속 이들은 여당이었지 한반도 야당인 적 없었어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선거제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계속 민주당 사람들 만나면 선거제도 이야기해요. “당신들이 정말 개혁세력이고, 한국 사회 민주화되기 바란다면 진정성을 보여라. 그것은 하나다, 선거제도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간단하다. 내 표가 사표가 되지 않게 해주면 된다.” 모든 사람들이 던지는 표가 사표가 안 되어야죠. 지금 민주당은 잘못된 선거제도 최대 수혜자입니다. 그래서 70년 동안 지배해 온 것이고요. 한국은 4분의 1 대의제도라고 제가 말을 만들어 봤어요. 40프로 당선되고 선거율 60프로면 24프로밖에 안되잖아요.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밖에 대의 못하는데 1등했다는 것이 어폐죠. 자기가 백을 대의하자, 나머지 모든 표는 다 사표에요. 그건 안된다는 거죠. 그래서 한국사회가 새로운 사회문제 발생했을 때 정치적으로 해결이 안 돼요. 독일의 경우, 체르노빌이라는 끔찍한 일로 환경문제가 불거지니까 바로 다음 의회에 녹색당이 딱 원내입성을 하게 돼요. 그 다음에 통일이 됐을 때 동서 간 갈등 심화되니까 동독사람들 불만 대변하는 정당이 들어가서 정치적으로 그 문제를 논의 하니까 의회에서 다 해결되는 것이죠. 우리는 의회에 지금 아무도 없잖아요. 환경문제 이렇게 심각해도 녹색당 들어갈 가능성 있나요? 없어요. 녹색당 지지하는 사람도 녹색당 못 찍잖아요. 홍준표 때문에 또 득 볼 거예요. 홍준표 두려워하는 사람 너무 많잖아요, 그 사람들 또 문재인 쪽 찍어주겠죠. 끔찍한 거악이 있기 때문에 항상 차악을 찍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제일 한국 정치의 핵심적 문제에요. 그래서 내 표가 사표가 안 되게 하는 선거제도로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경화된 정치제도 바꿀 수 없어요. 한국이 어느 정도 우경화되어 있느냐면, 그리고 왜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가 됐느냐면, 한국은 정치 집단 거의 95프로가 전부 자유시장경제 지지하는 사람들이죠. 여의도 300명 중 최소한 295명이 자유시장경제 지지자들이니까요. 그러니까 자유시장경제 질서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이 계속 일상적으로 발생해요. 그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문제죠.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가 될 수밖에 없어요. 왜 그런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 필요해요. 이렇게 우경화된 정치구도가 된 데는 바로 냉전이라고 하는, 레드콤플렉스라고 하는, 자기검열이라고 하는, 이런 문화가 작동하고 있다는 거죠.

 

Q. 조금 전에 통일비용이 안 들거라 말씀하셨는데, 남과 북 혹은 북과 남의 통일을 남쪽에 의한, 남쪽이 주도하는 흡수통일을 전제로 말씀하신건지.

김누리 : 사실 흡수통일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독일은 사실 흡수통일이 아니었어요. 독일통일은 철저하게 동독주민들이 스탈린 정권 무너뜨리고 그것으로 쟁취한 민주적 권리에 의한 투표로 통일을 선택한 것이죠. 그 다음에 통일비용에 대한 부분들은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통일비용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흡수통일을 전제하고 있는 부분이 분명 있죠. 그걸 하여간 그들의 논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고요. 그러나 생각하는 그런 어마어마한 통일비용이 든다는 것 자체가 사실 우스운 겁니다. 제가 통일비용을 독일학자들 만나면 물어봐요, 우리 지금 통일비용 엄청 든다는데 너희들 같으면 어떠냐 이러면 첫마디가 다 똑같아요.“야, 너희들 통일을 얘기하는데 돈 얘기부터 하냐?”이게 독일 학자들의 거의 대부분의 반응이어서 좀 창피했어요. 그런데 이 통일비용 담론. 어떻게 생산되고 확산됐는지 우리 학생들이 연구하고 있어요. 요체는 이 담론 자체가 일본의 교도통신에서 아주 조직적으로 만들어 낸 담론이란 것이에요. 일본인들이 통일되는 걸 가장 반대하기 때문에 그런 담론 만들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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