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공식 트레일러 제작기

2017.05.18
탄약고 전경

DMZ는 평화와 소통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소통이란 것이 적대국가와의 소통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안보를 군비증강에만 직결시키는 것만큼이나 편협한 시각일 것이다. 이미 DMZ는 예술가들의 소통과 교감의 공간이 된지 오래다. 그 중심인 캠프그리브스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51년 동안 주둔하고 2007년에야 반환된 장소다. 현재는 ‘기억과 기다림’이라는 표지 아래 모인 9명의 작가가 이곳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작가 강형구와 연출자 이광기

지난 5월 15일(월) DMZ국제다큐영화제도 이 곳에서 하나의 예술적 가교를 성사시켰다. 극사실주의 초상화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강형구 화가와 이제 배우를 넘어 사진, 조형을 넘나들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이광기가 그들이다. 이광기는 강형구의 작품을 활용하여 제9회 DMZ국제다큐영화제의 트레일러를 연출, 또 주연으로도 활약했다. 장소는 캠프그리브스의 버려진 탄약고. 항공폭격을 견디게 할 요량으로 두꺼운 벽과 거대한 철문으로 마감한 외관에 흘러간 시간의 인장처럼 얽혀있는 식물의 넝쿨이 퍽 조화롭다. 촬영은 강형구의 초상화 여섯 점을 이 탄약고 안에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날 특별히 현장을 방문해 메이킹 필름을 촬영해준 가수 현진영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촬영현장

올해 9회를 맞이하는 DMZ국제다큐영화제는 매년 영화제의 주제를 상징하는 트레일러를 선보여왔다. 이번 영화제 특별전 주제의 키워드는 ‘광장’, ‘시민혁명’. 거대한 광원(光源)으로써의 광장과 폐쇄공간의 칠흑은 어딘가 DMZ의 양가성과 맞닿는 지점이 있었다. 캠프그리브스 문화재생사업을 주도하면서 DMZ 곳곳의 공간을 예술적 소통의 공간으로 승화하는 데 관심을 경주하고 있던 이광기는 이러한 테마를 구현하는 데 안성맞춤인 인물이다. 특히 그는 이 장소들에 깃든 어둠에 주목했고, 어둠 속에서의 작업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 첫 시작이었다는 답을 주었다. 물론, 어둠은 빛이 있기에 어둠인 것이다. 이 점에서 강형구의 작품들은 빛과 어둠, 그 명도의 대차를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잘 알려져있듯 강형구가 그린 초상화의 핵심은 눈이다. 강형구 작가는 그 시선의 광채를 그린다고 했다. 이광기가 마련한 어둠의 공간에 강형구가 빛을 도입한 형상. 우연일지 모르나 렌즈에 쏟아지는 빛과 어둠을 통제해 실재를 시각화하는 영화의 본성과 많이 닮았다.

탄약고 내부

트레일러에 등장할 초상화 6점은 각각 링컨, 처칠, 노무현, 박정희, 율 브리너, 강형구 작가 본인을 담았다. 이 인물들을 관류하는 공통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이었고, 누군가는 하나의 정신으로 고양되었으며, 현재에도 끊임없이 귀환하는 이름들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또 하나의 특이점이 있었다. 몇몇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의 얼굴과 사뭇 다르다. 특히 ‘인간’ 박정희의 얼굴은 다소 생경하다. 스스로도 충무공의 정체성과 일치시키려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도상은 언제나 아래를 굽어보거나 먼 곳을 응시하는 영웅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촬영현장

트레일러의 내용을 지금 공개하기엔 이르다. 다만 연출자 이광기는 이번 트레일러가 역사와 시대정신, 다큐멘터리의 세계가 풍요롭게 만나는 작품을 만들 것이라 예고했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DMZ국제다큐영화제도 매년 트레일러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는 비엔나국제영화제의 전통을 뒤따를 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긴다. 이날 촬영된 트레일러는 6월 중에 최초 선보이며 현진영이 촬영한 메이킹 필름도 곧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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