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특별행사의 하나로 영화전문가인 프로그래머, 비평가, 학자들이 꼽은 영화들로 이루어진 기존의 영화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명사 10인의 전문성과 취향이 반영된 영화들을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음악, 미술, 건축, 무용, 정치, 음식,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인 강수진, 리처드 용재 오닐, 승효상, 심상정, 윤재갑, 이이남, 장강명, 진중권, 토니 레인즈, 황교익 10인이 참여하는 내 생애 최고의 다큐 10 특별상영전은 영화의 재미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특유의 확장성과 깊이를 경험할 둘도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강수진 추천작
라 당스
La Danse: The Paris Opera Ballet

프레드릭 와이즈먼 Frederick WISEMAN
France, USA | 2009 | 159min | HD | Color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거장 감독이자 다이렉트 리얼리티 시네마로 유명한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이 350년 전통을 자랑하는 파리국립오페라 발레단의 내부를 최초로 공개한 다큐멘터리. 낭만의 도시 파리를 완성하는 예술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국립오페라 발레단을 꼽지 않을 수가 없다. 파리 시내의 전경을 비추는 카메라는 파리국립오페라 발레단의 내부로 들어가 지하 배수로부터 창살, 벽에 남겨진 낙서, 조명 그림자까지 오랫동안 비추면서 시작된다. 와이즈먼은 발레단의 무용수들만큼이나 이 오래된 건물도 발레단의 공연을 완성하는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1년 내내 무대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공연을 위해 차가운 연습실의 마룻바닥에서 흘리는 무용수들의 땀과 고군분투는 완벽을 향한 치열한 삶을 그대로 전달한다. 후원회 유치를 위한 회의, 단원들의 고충을 듣는 예술감독의 표정까지 놓치지 않는 와이즈먼의 관찰 속에서 발레단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리처드 용재 오닐 추천작
테이크 미 홈
Take Me Home

이창준 LEE Changjun
Korea | 2018 | 90min | DCP | Color | World Premiere

엄마의 나라가 콩고인 흑인 소년 다니엘. 한국에서 태어나 15년 동안 한국에서만 살았지만 다니엘과 엄마는 난민 신청도 거절당하고 한국 국적 신청도 거절당한 채 안산에서 살고 있다. 다니엘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속해 있는 안산의 다문화 청소년 앙상블 ‘원컨트리’의 아이들은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태국, 일본, 중국, 러시아, 콩고 등 엄마의 나라가 제각각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난 아델리아는 6년 전 엄마의 나라 한국에 왔지만 늘 고향이 그리웠다. 리처드 용재 오닐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중앙아시아 음악여행은 꿈만 같은 일. 고려인 바울도 이번 여행에서 할머니를 만나기 고대한다. 각자 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아이들이 떠난 여행길에서 고향을 잃은 고려인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연다. 상처를 딛고 선 아이들이 고단한 어른들을 위해 들려주는 위로의 자장가.



승효상 추천작
위대한 침묵
Into Great Silence

필립 그로닝 Philip GRÖNING
France, Germany, Switzerland | 2005 | 162min | DCP | Color

프랑스 알프스산의 첩첩산중 샤르트뢰즈 산맥 정상. 그 곳에 세상과 고립되어 기도와 묵상 속에서 신을 만나고 있는 그랑드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있다. 2005년, 감독 필립 그로닝은 촬영허가를 위해 19년이라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이 비밀스럽고 신성한 수도원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공개했다. 2002년 3월부터 6개월 동안 어떤 외부인의 출입도 금지하고 오직 필립 그로닝 감독에게만 허락된 수도원에서의 촬영은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위대한 침묵’으로 완성되었다. 인공조명이나 음향효과, 내레이션 대신 채워지는 수도사들의 묵언 수행을 168분간 지켜보며 온갖 소음과 눈을 뗄 수 없는 영상 속에서 침묵 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을 떠올려본다. 마치 정지된 듯 미세하지만 큰 움직임을 보이는 시간과 자연의 존재를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심상정 추천작
헬렌의 도전
My Year with Helen

게일린 프레스톤 Gaylene PRESTON
New Zealand | 2017 | 93min | DCP | Color | Korean Premiere

“이 영화는 여전히 남아있는 유리천장을 부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줍니다. 이것이 미래 세대의 여성들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파워 있는 여성 25인에 이름을 올린 헬렌 클라크(Helen Clark)는 뉴질랜드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2009년부터 2016년까지 UNDP의 행정관을 지냈다. 개발도상국들을 위한 원조를 승인하고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개별기관으로 조직을 이끈 그녀의 도전은 2016년 4월 UN 사무총장 출마 선언까지 이어진다. 이 영화는 UNDP의 행정관으로 업무를 수행하면서 UN사무총장의 치열한 선거현장에 뛰어든 헬렌을 따라가며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사회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윤재갑 추천작
구름 뒤편의 태양
The Sun Behind the Clouds

리투 사린, 텐징 소남 Ritu SARIN, Tenzing SONAM
India, UK | 2009 | 79min | HD Cam | Color

1951년, 중국의 무자비한 티벳 점령 이후 현재 지구상에는 티벳이라는 국가는 없다. 도망치듯 티벳에서 쫓겨난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운지 반세기가 흘렀다. 소년은 어느 새 노인이 되었지만 티벳 독립의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중국인들이 여전히 가장 싫어하는 말은 ‘프리 티벳(Free Tibet)’, 즉 티벳의 독립. 달라이 라마는 독립 대신 중국과의 평화적 협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만 국민들은 지쳐만 간다. 2008년 3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티벳인들은 1959년 중국에 귀속 된 이후 가장 큰 시위를 벌인다. 전 세계에 티벳 독립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었지만 중국의 탄압도 극에 달한다. 자주 독립을 원하는 티벳인들의 무력 시위와 불교적 믿음에 기초한 비폭력 협상을 원하는 달라이 라마가 마주하는 딜레마.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구름 뒤편의 태양〉은 달라이 라마를 찬양하는 노래의 가사다. 노래를 부르는 티벳 여인의 애달픈 목소리가 그들 민족의 앞을 모르는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이이남 추천작
코야니스카시
Koyaanisqatsi

고드프리 레지오 Godfrey REGGIO
France | 1982 | 86min | DCP | Color

호피 족 인디언의 언어로 ‘균형 깨진 삶을 의미하는’ 〈코야니스카시〉라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기술문명의 위선이 몰고 온 위험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통제불능상태. 그 옛날의 자연이 지녔던 평정심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내러티브나 대사 없이 음악과 영상으로만 되어 있는 이 작품은 고대 인디언들이 그린 벽화에서 시작된다. 경이롭고도 광활한 자연 그 자체의 모습, 그리고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손길.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발전하면서 인간들이 자연을 등지고 스스로 무언가를 ‘생산’하는 모습과 인간들이 살아가는 생활 모습들이 정신없이 빠르게 나타난다. 20년지기 친구였던 고드프리 레지오 감독이 현대 음악의 거장 필립 글래스에게 음악을 부탁해서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혁명적인 작품이다. 자연- 파괴- 도시와 인간 – 소외의 흐름에 따라 흐르는 영상과 함께 필립 글래스의 아름답고 영적인 음악이 어떻게 서로 조응을 이루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영화 감상의 키포인트다.



장강명 추천작
프랑스 영화학교 입시전쟁
The Graduation

클레르 시몽 Claire SIMON
France | 2016 | 115min | DCP | Color

〈프랑스 영화학교 입시전쟁〉은 제목 그대로 ‘라 페미스’의 입학 전형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상은 시종일관 심사단과 응시자가 3차에 걸쳐 치르는 면접현장을 비춘다. 일단 이렇게 입학이 허가되면 ‘라 페미스’에는 수업도 없고 선생도 없다는 아이러니. 심사위원들이 던지는 질문에 장 콕토와 장 그레미용을 언급하며 자신의 삶과 영화, 그리고 정치·사회로 확장되는 프랑스 학생들의 수준 높은 답변도 놀랍지만 더욱 인상적인 것은 바로 심사위원들이다. 심사위원 각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입학 후보생에게 좋은 점수를 주기 위해 과격한 논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치 스스로가 응시자가 된 듯, 혹은 응시자의 대변인이 된 듯하다. ‘라 페미스’의 입시현장에서 응시자들과 심사위원들은 모두 이렇게 스스로 질문한다. “예술의 탁월함은 누가 평가하는 것인가. 예술가의 후계자는 누가 선택하는가” 물론 답은 없다. 하지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해서 3년간의 공부를 마친 후 칸느, 아카데미, 베를린, 베니스를 누비는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는 이 보장된 엘리트 코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이다. 다만 이처럼 화려한 문을 여는 행운의 키는 하나다. 바로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여지는 학생들과 심사위원들의 반복되는 문답은 바로 이를 찾기 위한 격전의 장에서 일어난다. ‘모두가 평등하지만 최고만이 들어올 수 있다’라는 프랑스의 공화주의적 이상을 교육을 통해 실현시키고 있는 ‘라 페미스’의 문을 연다.


진중권 추천작
디어 평양
Dear Pyongyang

양영희 YANG Yonghi
Japan | 2005 | 107min | HD | Color

재일 조선인 2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평양 연작 가운데 1편이다. 감독은 ‘재일 교포의 메카’로 불리는 오사카에서 오빠 셋을 둔 귀여운 막내 여동생으로 자라난다. 제주 출신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와 해방을 맞은 후 북한국적을 선택하고, 1959년 시작된 북한의 ‘귀국사업’을 지지하기 위해 조총련 간부가 된다. 1970년대 초반 당시 10대 청소년이던 세 아들을 북한으로 떠나보낸 부모님을 감독은 오랫동안 이해 할 수 없었다. 북한의 혹독한 실정을 알게 된 감독의 어머니는 어린 손자들이 동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겨울마다 일회용 손난로와 학용품을 가득 실은 커다란 상자를 보내는 일이 연례행사다. 오빠들과 달리 자유로운 삶을 꿈꾸던 감독은 오랫동안 ‘왜 아버지가 자식들을 평양으로 보내서 가족들을 헤어져 살게 만들었는지’ 원망했지만 10년간 아버지의 삶을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미움은 그리움으로, 갈등은 사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고 있다.



토니 레인즈 추천작
태양 없이
Sans soleil

크리스 마커 Chris MARKER
France | 1983 | 104min | DCP | Color/B&W

한 여성이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일하는 카메라맨 친구로부터 온 편지를 읽는다. 감독은 편지, 논평, 이미지들을 뒤섞어 허구적 기억을 탄생시킨다. 192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2012년 세상을 떠난 크리스 마커 감독은 1960년대 전후로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태동한 시네마베리테(cinéma vérité) 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특히 그는 여행 기록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에세이 다큐멘터리들을 많이 남겼다. 1982년에 만들어진 〈태양 없이〉도 방대한 분량의 이미지를 취합하고 정리하고 편집해서 현대 세계의 “생존의 양극단”을 여행한다. 그 극단 중 하나는 전쟁을 치른 뒤 1970년대 소비주의의 첨단을 내달렸던 일본이고 다른 한 쪽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여전히 혼란 속에 있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기니비사우다. 마커는 여러 경로를 통해 축적한 이미지들을 재가공하거나 새롭게 엮어냄으로써 기억과 역사가 구성되는 방식을 명상한다.


황교익 추천작
스시장인: 지로의 꿈
Jiro Dreams of Sushi

데이빗 겔브 David GELB
USA | 2011 | 81min | DCP | Color

도쿄 번화가의 중심인 긴자의 오피스촌 지하에 있는 스시 레스토랑 “스키야바시 지로”. 미슐랭 가이드 역사상 최고령 쓰리 스타 셰프, 85세의 스시 장인 지로는 피곤함도 잊은 채 완벽한 스시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비록 단 10명의 손님만이 앉을 수 있는 작고 소박한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지로의 스시를 맛보기란 하늘의 별따기. 예약은 이미 몇 달전부터 마감이다. 이 집의 단골인 음식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15분 동안 식사하고 3만 엔을 지불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다.” 스물다섯 살에 스시 계에 입문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선을 다루는 것이 지겹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장인의 판에 박힌 성공스토리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 지로의 직업 정신 보다 드라마틱한 감동은 없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과 함께 흐르는 지로의 코스 요리는 미각을 위한 치밀한 계산으로 기승전결을 완성한다. 밥을 짓고 참치를 고르는 일 하나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노장에게서 거룩함까지 느껴진다.